|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출20:21-24 |
---|---|
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1. 들어가는 이야기 /
신앙인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결정적 차이점을 드러내는 영적, 현실적 차이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우리가 단적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은 < 예배 >입니다. 구약 시대로부터 신약시대 그리고 그 이후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볼 때 개인이나 공동체가 새로운 힘을 얻고, 능력을 받고,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은 < 예배 >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사야, 에스겔, 마가의 다락방이 그 증거입니다.
교회의 네가지 사명 Kerygma, Koinona, Didache, Diakonia 즉 복음 전파, 성도의 교제, 교육, 봉사와 같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그 귀한 사명을 활성화 시키고 생명력을 주는 것은 < 예배 >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 예배 >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2. 본문이 말씀하는 예배란 무엇입니까?
첫째,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도 못하고 움직이도 못하는 금이나 은이나 돌 혹은 나무로 우상의 형태나 어떤 상징물을 만들어놓고 이것을 하나님이라 비겨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예배는 영이시고, 사랑이시고, 능력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는 토단을 쌓고 귀한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정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라야 합니다.
셋째, 예배는 다듬은 돌로 쌓은 제단에서 드릴 수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형식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꾸미지 말고 거짓 없이 나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정으로 쪼면 부정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돌 쪼으다가 그 돌을 왜 쪼으는지 그 본질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가대 연습이 늦어져 예배를 제 시간에 드리지 못한다든지, 예배는 뒷전이고 행사가 중점인 경우가 그렇습니다.
넷째, 예배 드릴 때 층계로 하나님 앞에 올라 갈 수 없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예배 드리는 자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누미노제의 경건함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의 유창한 자기 자랑이나,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성가대의 현란한 쑈나, 누가 무슨 큰 돈을 냈다 하는 등의 사람 냄새가 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하체가 드러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표현으로 하체는 부끄러운 곳이며, 하체는 더러운 냄새나는 곳입니다.
3. 본문에서 예배는 어디에서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가?
본문을 보면 <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 >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이름이 기념되는 곳이 어디입니까? 물론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 드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의미는 족장 시대에는 토단이며, 출애굽 광야 시대에는 성막이며, 왕국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이며, 신약시대 이후에는 교회의 성전입니다. 곧 주님의 이름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4. 이렇게 예배 드리는 자들이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받습니다. 신앙인은 예배를 통하여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영적 기쁨을 맛봅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깊고 신령한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받은 그 놀라운 내적 평화와 든든함을 맛보았을 줄 압니다. 찬송가 499장의 저 신령한 노래말 <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하신 그 기쁨의 복 말입니다.
둘째, 나의 모든 존재론적이며 실존적인 죄를 사함 받는 복을 받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비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나의 모든 허물과 부끄러운 잘못과 숨겨진 죄를 용서 하십니다. 모든 죄의 죄책감과 불안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복을 받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께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합니까? 나의 실수와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았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그보다 더 큰 용서의 복을 받습니다. 용서 받았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이 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곧 구원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습니다.
셋째, 나의 삶에 의미를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인생은 허무합니다. 돌이켜보면 해 아래 새것이 없고 모든 게 무의미합니다. 잠시 잠깐 의미 있고 보람찬 것 같다가도 좀 지나고 나면 그 대단해 보이던 것들도 모두 별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모든 무의미한 것들 속에 깊은 영감과 내적 통찰을 주시므로 의미 있게 하시고 보람 있게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곧 이사야 58:11 말씀과 같이 < 나 여호와가 너를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 하는 그 복을 주십니다. 이 복을 저 五福 정도에다 비기겠습니까!
5. 마치는 이야기 /
그러므로 < 신앙인의 힘은 예배에서 나온다! >고 하였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내 영혼이 죽습니다. 다른 사람 쳐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내 영혼이 살아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어서 속히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 보십시오.예배는 내가 드리는 것이지 남이 내 대신 드려 줄 수 없습니다. 깨어나십시오! 늦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 하여 예배 드리시기 바랍니다.
진정 신앙인의 힘은 오직 예배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결정적 차이점을 드러내는 영적, 현실적 차이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우리가 단적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은 < 예배 >입니다. 구약 시대로부터 신약시대 그리고 그 이후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볼 때 개인이나 공동체가 새로운 힘을 얻고, 능력을 받고,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은 < 예배 >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사야, 에스겔, 마가의 다락방이 그 증거입니다.
교회의 네가지 사명 Kerygma, Koinona, Didache, Diakonia 즉 복음 전파, 성도의 교제, 교육, 봉사와 같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그 귀한 사명을 활성화 시키고 생명력을 주는 것은 < 예배 >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 예배 >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2. 본문이 말씀하는 예배란 무엇입니까?
첫째,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도 못하고 움직이도 못하는 금이나 은이나 돌 혹은 나무로 우상의 형태나 어떤 상징물을 만들어놓고 이것을 하나님이라 비겨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예배는 영이시고, 사랑이시고, 능력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는 토단을 쌓고 귀한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정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라야 합니다.
셋째, 예배는 다듬은 돌로 쌓은 제단에서 드릴 수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형식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꾸미지 말고 거짓 없이 나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정으로 쪼면 부정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돌 쪼으다가 그 돌을 왜 쪼으는지 그 본질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가대 연습이 늦어져 예배를 제 시간에 드리지 못한다든지, 예배는 뒷전이고 행사가 중점인 경우가 그렇습니다.
넷째, 예배 드릴 때 층계로 하나님 앞에 올라 갈 수 없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예배 드리는 자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누미노제의 경건함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의 유창한 자기 자랑이나,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성가대의 현란한 쑈나, 누가 무슨 큰 돈을 냈다 하는 등의 사람 냄새가 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하체가 드러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표현으로 하체는 부끄러운 곳이며, 하체는 더러운 냄새나는 곳입니다.
3. 본문에서 예배는 어디에서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가?
본문을 보면 <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 >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이름이 기념되는 곳이 어디입니까? 물론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 드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의미는 족장 시대에는 토단이며, 출애굽 광야 시대에는 성막이며, 왕국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이며, 신약시대 이후에는 교회의 성전입니다. 곧 주님의 이름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4. 이렇게 예배 드리는 자들이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받습니다. 신앙인은 예배를 통하여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영적 기쁨을 맛봅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깊고 신령한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받은 그 놀라운 내적 평화와 든든함을 맛보았을 줄 압니다. 찬송가 499장의 저 신령한 노래말 <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하신 그 기쁨의 복 말입니다.
둘째, 나의 모든 존재론적이며 실존적인 죄를 사함 받는 복을 받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비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나의 모든 허물과 부끄러운 잘못과 숨겨진 죄를 용서 하십니다. 모든 죄의 죄책감과 불안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복을 받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께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합니까? 나의 실수와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았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그보다 더 큰 용서의 복을 받습니다. 용서 받았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이 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곧 구원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습니다.
셋째, 나의 삶에 의미를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인생은 허무합니다. 돌이켜보면 해 아래 새것이 없고 모든 게 무의미합니다. 잠시 잠깐 의미 있고 보람찬 것 같다가도 좀 지나고 나면 그 대단해 보이던 것들도 모두 별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모든 무의미한 것들 속에 깊은 영감과 내적 통찰을 주시므로 의미 있게 하시고 보람 있게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곧 이사야 58:11 말씀과 같이 < 나 여호와가 너를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 하는 그 복을 주십니다. 이 복을 저 五福 정도에다 비기겠습니까!
5. 마치는 이야기 /
그러므로 < 신앙인의 힘은 예배에서 나온다! >고 하였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내 영혼이 죽습니다. 다른 사람 쳐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내 영혼이 살아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어서 속히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 보십시오.예배는 내가 드리는 것이지 남이 내 대신 드려 줄 수 없습니다. 깨어나십시오! 늦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 하여 예배 드리시기 바랍니다.
진정 신앙인의 힘은 오직 예배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