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계1:17-20 |
---|---|
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로마 시대 때 기독교인들은 10번에 걸쳐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박해를 한 황제는 네로 황제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불태워 황제의 정원을 밝혔다고 할 정도로 잔인하게 신앙인을 처형하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 사도도 바울 사도도 순교를 하였습니다. 네로에 이어 두 번째 기독교인들은 잔인하게 박해한 황제는 90년부터 96년까지 핍박을 한 도미티안 황제입니다. 그는 정권 말기에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신을 "주와 신"(Dominus et Deus)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의로운 신앙인은 황제 숭배를 반대하였고 황제 숭배를 하지 않는 신앙인을 잔인하게 처형하였습니다. 이 때 로마의 클레멘트가 순교하였고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이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어두운 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잠 못 이루는 맹수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공포심을 자아내 감옥은 마치 지옥을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친형인 야고보는 제자 중 제일 먼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과거 자신은 예수님께서 왕국을 건설하면 적어도 국무총리나 내무부 장관 정도는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형은 가장 먼저 순교를 하였고 같이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끔찍한 순교의 장면을 보기도 하고 들어 알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권력욕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출세하여 잘 살고 싶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도 치맛바람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혁명을 일으켜 왕이 되면 자신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가 좌의정 우의정을 했으면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형은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순교를 당하였고 제자들도 다 순교를 당하고 이제 마지막 자신만 살아 남았습니다.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이 티투스에 의해 멸망당했고 매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로 섬긴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끔찍한 일이 눈 앞에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몹시 괴롭고 인간적인 번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진 고난과 아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하게 목격했고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데 수많은 신앙인이 신음하며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에 달려 화형을 당하는데 예수님은 오시지도 않고 기적은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콜롯세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피흘리며 쓰러지는 잔인한 장면을 즐기기 위해 모였습니다. 팡파레가 울리자 관중들이 조용해지면서 도미티안 황제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군중들은 환호를 보냈고 도미티안 황제는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자기 자리에 앉습니다. 잔인한 격투기가 벌어지고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감금되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채로 경기장에 밀려 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데 뭉쳐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그것도 잠시일 뿐 곧이어 쇠문이 열리면서 여러 마리의 굶주린 사자들이 뛰쳐 나와 사냥감을 발견하고 공격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순식간에 뿔뿔히 흩어지고 비명소리, 살려달라는 아우성 소리와 함께 하나 둘씩 사라져 갑니다. 감옥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신앙인들을 종일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땅이 갈라지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이면 신앙인들이 통쾌할텐데 아무런 징조도 없습니다.
이 때 같이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요한은 그들을 격려하며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에 많도다”라고 했습니다. “두려워 맙시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이 있습니다.” 밤에는 화형식이 이루어졌습니다. 경기장 안에 횃불을 밝혀 놓고 곳곳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아래 장작을 쌓 놓았습니다. 형리들은 그리스도인들 수십 명을 십자가에 묶은 뒤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로마인들은 조롱합니다. "너희들이 세상의 빛이냐? 더 빛나게 해주랴?"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그곳에서 순교를 당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도미티안은 요한을 밧모섬에 유배시켰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장자 더미의 불에도 펄펄 꿇는 가마솥에도 죽지 않자 유배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오늘 성경을 보면 도미티안에 의해 밧모섬에 유배된 것은 확실합니다. 언제 다시 불려가 화형을 당하거나 사자의 밥이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도미티안의 박해가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집을 빼앗기고 가족과 이별하고 유리하다가 붙들려 화형을 당하는 것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요한은 밧모섬에서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 때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요한에게 나타났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요한에게 나타났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초라한 모습이 아닙니다. 도미티안의 권력 앞에 떨고 있는 주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가 본 주님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①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제사장의 주님을 보았습니다(계 1:13). ② 가슴에 금띠를 띠신 왕이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13). ③ 그 머리털의 희기가 양털 같으신 영존하신 성결의 주님을 보았습니다(계 1:14). ④ 그 눈이 불꽃같으신 전지전능의 주님을 보았습니다(계 1:14). ⑤ 그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으신 심판의 주님을 보았습니다(계 1:15). ⑥ 그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으신 불가항력적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15). ⑦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는(계 1:16) 교회 가운데 그의 사자들을 붙잡고 계시는 교회의 왕인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20). ⑧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16). ⑨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으신 영광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16).
이 모습을 순식간에 목격하고 요한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초자연적인 환상을 보고 두려움과 떨림에 압도되었습니다. 이는 계시를 받을 때 흔히 일어나는 모습으로(수5:14; 겔1:28; 단8:17; 10:15; 마176; 행26:14) 인간의 연약성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일반적인 공포와 전율의 감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엄청난 장관 앞에서 사도 요한은 순간적으로 죽은 자 같이 되어 그 발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이 때 죽은 자 같이 된 그를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해 주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오른 손을 얹어 모든 두려움을 제거해 주십니다. 그 오른 손은 권능의 손입니다.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못자국 난 손입니다. 힘있는 손, 일하시는 손, 일곱별을 붙잡은 손, 병든 자를 고쳐 주신 손, 어린아이 붙들고 기도하던 손, 부활하여 도마에게 보여주신 손, 증거와 권능과 능력의 손입니다. 그 손을 요한에게 얹으셨습니다. 이는 절망 가운데 있는 그를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고독한 그에게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이 날이 무슨 날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주의 날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모든 것과 단절된 상태에서 고독하게 지내야만 했을 때입니다. 가야할 교회가 없고 같이 예배드릴 형제가 없는 때입니다. 만나야할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무인도와 같은 밧모섬에 홀로 유배되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이 있는 때였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는 때입니다. 이 때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주일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을 주었습니다(10; 4:2).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처럼 하늘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심히 두려운 자에게 손을 얹으시곤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요한이 변화산에서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도 우리 주님께서는 그에게 손을 얹으시며 두려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 같이 된 자에게 다니엘처럼 근심이 더하고 힘이 없이 없어지고 호흡이 남지 않은 자같은 자에게 손을 얹어 주십니다(단10:15-18)
손을 얹으실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①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마 17 : 7, 계1 : 17, 단 10 : 19), ② 평
안하게 됩니다(단 10 : 19), ③ 강건하게 됩니다(단 10 : 18, 19), ④ 힘이
나게 됩니다(단 10: 19).
오늘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 주일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여하면서 밧모섬에 갇힌 요한처럼 앞 뒤가 막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같은 상황을 만난 분 있습니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고독한 무인도에 갇혀 있는 요한처럼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죽음을 앞에 놓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 속에서 고민하는 요한처럼 사업 문제로 질병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성령에 감동을 받은 것처럼 성령의 감동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음성, 두려운 사람의 소리를 듣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들려주시는 나팔 소리같이 큰 하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더럽고 추하고 고민스러운 땅의 세계만 바라보지 마시고 신비한 하늘의 세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능력의 오른 손을 얹으시는 예수님을 만나 ①두려움에서 해방되고 ② 평안을 누리고 ③ 강건하게 일어서 ④ 힘을 얻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왜 이렇게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힘을 얻어 일어설 수가 있습니까?
요한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고 말씀합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역사를 시작하시고 역사를 끝마치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약하게 십자가에 돌아가고 끝이 난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침묵하는 것같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곧 예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개인의 역사나 인류의 역사나 교회의 역사의 시작과 끝이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돌아가신 분이 아닙니다.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저 종교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셔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단지 종교적 교훈을 하신 4대 성인 정도의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종교적 모델을 보여 주신 분이 아니십니다. 부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닦쳐와도 우리 주님과 함께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환난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롬 8:37)”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오늘날 우리에게 도미티안 같은 정치적 탄압은 없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영상 문화가 우리를 죽은 자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시대를 지배하는 재물이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어가는 과학문명이 부활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번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해가는 지식이 부활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시대에 뒤쳐진 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곳이 어디 일지라도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그곳에 함께 있는 줄 믿습니다. 철저히 단절되어 외로움과 절망감에 빠진 현장일지라도 살아 계신 주님은 그곳에 함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 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여 살아계신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환란 가운데 침묵하시는 것같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 가운데 외면한 것같지만 그 가운데도 우리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요셉의 고난의 17년 동안에도 함께 하신 하나님, 다윗의 고난의 17년, 모세의 40년 광야 생활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부활하시어 살아 계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이제 요한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 희망과 용기를 주신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무엇을 요구하였습니까?
19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기록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본 것, 이제 있는 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본 것은 바로 1장의 내용이고 이제 있는 일을 바로 2-3장의 내용이고 장차 될 일은 4장 이후 마지막까지의 내용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두려워 떨며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독하게 밧모섬에 유배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같지만 지금 아무것도 없다고 포기하며 절망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나이가 90이 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지 60여년이 지난 때입니다. 어쩌면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밧모섬에 유배되어 그저 기도하며 바다를 보다가 인생을 마감할 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은 다른 사도들은 다 순교를 하였는데 자신만 늙기까지 홀로 남아 있는 죄스러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면서 친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는데 잘 돌보아 드리지 못한 죄스러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정작 너에게 중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요한에게 주어진 마지막 사명이 있었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여 오는 세대에게 세세토록 전달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요한을 순교시키지 않고 노년에 이 외로운 밧모섬에 유배하게 한 하나님의 뜻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여 무엇하라는 말씀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고난받는 핍박받는 아시아 7교회에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핍박가운데 쓰러질 교회가 아닙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계시록을 기록하여 요한처럼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케 하여 용기를 주고 소망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20절에 나온 것처럼 교회와 교회의 사자를 붙들고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교회가 박해를 받고 지도자는 쫓겨나고 교회의 교인들이 다소간 흩어지고 위축될 수 있지만 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최후 승리를 합니다. 새하늘과 새땅에 우뚝서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반석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16:18)"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부활의 증인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하였습니다. 자기를 증거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삶이 아닙니다. 자기 피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체험한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증거하였습니다.
역사 속에 일어날 일곱 인 재앙, 일곱 나팔 재앙, 일곱 대접 재앙을 증거합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건강으로 인하여, 나이로 인하여,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해야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준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지금 죽을 때가 아닙니다. 절망하고 낙심하며 누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일어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난 주 신문에서 “美 105세 CEO 승승장구”라는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록마운트 랜치 웨어사의 최고 경영자 잭 웨일에 대한 기사입니다. 그는 지금 105세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출근하며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서 뛰고 있답니다. 기자가 그렇게 유명한 영화배우나 정치인들에게 옷이 인기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웨일씨는 "경쟁자들이 이제는 모두 무덤 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답니다. 라면 창시자 닛신식품 회장의 글도 보았습니다. 지금 97세입니다. 년간 2조 5000억원 매출의 일본1위 라면업체의 현역 CEO로입니다. 지금도 회사에서 맨 먼저 출근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오사카 본사에 가장 먼저 출근해 신제품 개발까지 직접 챙긴다고 합니다. 세계라면협회(IRMA)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그야말로 라면 전도사였습니다. 파산하고 빈털터리가 되자 자기 집에 3평 남짓한 실험실을 차려놓고 48세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한 끼씩은 나면을 먹으며 "죽는 날까지 라면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을 기사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런데 우리는 부활을 믿는 영원한 천국을 믿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야 합니다. 나이들었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윈스턴 처칠은 76세 때 수상에 다시 올랐고, 78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씨바이쩌는 77세에도 자신의 이념을 성취하기 위해 집념을 불태우다가 77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찰즈 맥코이 목사는 71세에 중국 선교사로 새출발하여 86세에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15년 간을 중국의 아편 중독자들을 위하여 사랑을 쏟았습니다. 타티안은 98세에 그의 거작 "르판트의 전쟁"을 그렸으며 미켈란젤로는 80이 넘어서 그의 대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브라함은 90세에 가나안을 찾아갔으며 모세는 80세 때에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80세가 넘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85세가 된 갈렙은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며 평안히 안주하기보다는 아낙 자손이 진을 치고 있는 땅을 정복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여호와께 의지하며 나아가 승리하였습니다.(수14:7-12)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명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골드스미스는 8년만에 거의 무일푼에서 백만 파운드의 자산을 보유한 사업가로 변모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미다스 메소드”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강조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가능성도 없다고 합니다. 불신과 의심이 인생의 성공을 가로 막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행복과 성공 비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며 믿음을 가진 자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공의 비밀을 아주 간단한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2) 자신이 그것을 가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기 (3) 자신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4) 실행에 옮기기 ”
그는 말하기를 성공 비결의 75%는 믿음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성공도 이렇게 믿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라면 믿음을 가지고 하여야 합니다.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사명감을 가지고 열정으로 하여야 합니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젊을 때 방직공, 증기기관차 화부, 우편배달원 등 많은 직업을 거쳤습니다. 믿음의 사람 카네기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장애물은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일수록 장애물이 많은 것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PGA에서 우승한 프로 골프 선수 신앙인 최경주는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운 그가 골프를 시작했을 때 모두가 비웃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타석이 비는 틈을 이용해 골프 연습을 했고, 무리한 연습으로 손이 갈라져도 일어서 PGA에 진출해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고통은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가나안 땅을 가려면 홍해도 건너고 요단강도 여리고도 넘어야 할 것들입니다.
단편소설의 거장 오 헨리는 300여 편의 위대한 작품을 남긴 에너지의 원천이 3년간 감옥에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 찰스 디킨스은 너무나 가난하여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고, 열두 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무서운 빈곤과 비인도적인 노동, 비극적인 첫사랑의 아픔을 앓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름이 되어 뛰어난 작가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사명감을 깨워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20절 다시 보십시오. 결국 교회가 승리하게 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우리 주님이십니다. 도미티안은 이 말씀을 받은 후 1년 후에 죽었습니다. 앞으로 역사는 전혀 모르지만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우리 하나님이 사명을 이루도록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홍해가 어떻게 갈라질지, 요단강을 어떻게 건널지 모릅니다. 여리고 성이 어떻게 점령될지 모릅니다. 아이성이 어떤게 점령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붙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부활의 능력으로 홍해도 가르시고 요단강도 건너게 하시며 여리고와 아이도 무너뜨리게 하실 것입니다.
2006.4.16/열린교회/김필곤 목사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