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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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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서양은 이제 더 이상 통일체적 세계가 아니라 다원론적 세계다. 기독교만이 서양을 대표하는 유일한 종교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얘기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동양적 사상이 날이 갈수록 서양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는 이단과 사이비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적인 사상과 운동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현장을 먼저 정확하게 분석하며 많은 반박과 질문 앞에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능력을 더욱 더 명료하게 그리고 힘있게 증거하여 짙어만 가는 흑암의 세력을 꺽어야 할 것이다. 흑암의 세 력을 물리치는데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 밖에는 없지 않는가: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8:12). 세상이 캄캄하면 캄캄할수록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은 더욱 빛나리라.
그렇다면 동양적 사상을 논하려면 먼저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 시작이 바로 힌두교다. 뉴에이지란 서양의 옷을 입고 감각적이고도 쎈스있는 현대언어로 과학화 생활화하며 미국과 온 세계의 문화의 모든 분야를 침투한 힌두교의 정체를 알아보자.
힌두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중의 하나다. 그 역사적 기원은 기원전 3천년경으로 추정된다. 힌두교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초월명상, 요가, 마인드콘트롤 등과 관련돼있다.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마하리쉬마헤쉬, 요가난다와 여러 도사(guru)들의 가르침이 다 힌두교 사상에서 비롯됐다. 어떤 인도사람이 말한대로 힌두교는 신념의 박물관이요, 의식의 혼성곡이다. 힌두철학의 학교도 너무나 다양하여 힌두교는 모든 종교적 실험의 창고라고 도 한다.
힌두교는 이론적 합리성과 수행방법이 제공하는 신비주의적 경험을 겸비하여 접하는 사람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합리성과 경험성만으로는 진리성이 성립이 안되는 것 을 알아야 한다.
'힌두'(Hindu)라는 용어는 페르시아 말로 '인디안'이라는 뜻이다. 인더스강에서 물을 공급받는 지역인 '신두'(Sindu)라는 말이 와전됐다고 한다. 이 강지역에는 아리안족 이전, 기원전 3천년경에 인더스 문명의 중심으로서 문다(Munda)과 드라비다족(Dravida) 등이 원주민으로 살았다고 한다. 이들의 문화는 아리안 계통의 문화와는 달리 메소포타미아와 수메르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가능성을 학자들은 주장한다.
모든 동양사상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힌두교는 뚜렷한 창시자가 없는 것처럼 그 시초는 인더스강 지역 원주민의 문화는 물론 다른 지역의 문화까지 흡수하는 절충적이고 혼합주의적이다. 그러므로 대중적인 힌두교는 3억3천만의 신을 자랑하는 만큼 다른 종교의 이념을 얼마나 많이 또 빨리 흡수했는지 짐작이 간다. 바로 이러한 속성 때문에 오늘날에도 힌두교 는 현대과학이나 학문의 여러 영역을 흡수 또는 동화시키는 그 속도가 정말 놀랍다. 여기에 걸맞는 한가지 우스개스런 얘기가 있는데 서양에서는 의문이 '신은 존재하는가?'라면 동양에서의 의문은 '어느 신을 믿을 것인가?' 다. 또 논리적 사고에 있어서도 현저하게 차이나는 것은 서양에서 'Either-Or(이것이냐 저것이냐)'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면 힌두교는 'Both-And(이것도 저것도 다)'를 주장하며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끌어 안는 것이다.
힌두교는 정령숭배, 다신론, 일신론, 철학체계 등을 다 포함하면서 동시에 '다르마'(Dharma) 라는 종교 및 사회적 규범으로서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엄격히 제한한다. 그러나 오늘날 인 도에서는 힌두교도들과 회교도들과의 피가 튀는 갈등과 또 힌두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면 그는 죽임을 당하든지 아니면 그의 가정과 마을과 사회에서 완전히 배척을 당한다. 이 얼마 나 큰 모순인가?
힌두교의 사상은 '스루티(Sruti)'와 '스므리티'(Smrti) 경전에 근거하며 여기서 시작한다. 스 루티는 '계시된 것'이라는 뜻으로 베다(Veda)가 여기에 속한다. 베다는 힌두교의 최고 경전 으로서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200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그 내용은 찬송, 기도, 의식등이다. 스므리티는 '전해지는 것'이라는 뜻이며 스루티에 비해서는 그 권위가 떨어진다. 라마야나(Ramayana)와 마하바라타(Mahabharata) 서사시, 마하라타의 일부인 힌두교도들에게 가장 친근한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 그리고 신화, 전설인 푸라나(Purana) 등이 스므 리티에 속한다.
힌두교의 세계관은 베다와 우파니샤드(Upanishad)에 잘 나타나 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한 부분으로서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600년 사이에 만들어졌는데, 여러 가지 철학적인 주제들을 포함한다. 베다에는 신들이나 영웅들의 서사시가 있으며 다신론적인 신화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우파니샤드에 오면 이러한 제신들의 배후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신이며 우주의 근원적 실재인 '브라만(Brahman)'이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아마도 이것은 제사나 의식을 독점하는 브라만 계급에 반발한 사람들에 의해서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추구되었음을 나타낸다.
사실 힌두교는 정형화된 교리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여러 가지 종파 및 학파에 따라 다양한 교리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근거를 두고 있는 모든 종교 및 철학, 사상을 힌두교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부터는 형이상학, 신, 진리, 인간, 윤리, 구원, 죄 등의 심각한 문제들을 놓고 힌두교가 복음과 어떻게 다른지 분석해 나가겠다.
과연 힌두교는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가? 힌두교는 문제를 어떻 게 보고 있으며 어떠한 답을 제시하는가 확실히 알아보자.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과정속에서 항상 '이들은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은 늘 자신의 정체를 숨겨왔으며 아주 교활한 수법으로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인도 해 왔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왜 수많은 사람들이 윤회사상을 믿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 사탄이 던지는 미끼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힌두교도 불교(석가모니는 힌두교의 문맥 속에서 그의 가르침을 발전시킴)와 같이 인생의 고통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며 따라서 그들의 목적은 고통의 제거는 물론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 탈출(자유)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싸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문제와 해답은 복음의 진리와 너무 상반된다. 사탄이 얼마나 꿀 바른 좋은 말로 인간을 부추겨 절대로 복음을 못 깨닫게 하 는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동시에 독자의 가슴 속에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세계복음화!' 라는 복음의 불길이 더욱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먼저 사탄의 두가지 장난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로 사탄이 지금 까지 수많은 종교와 사상들을 통해서 작업해온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해소라는 문제에만 관심을 쏟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고통을 해소하는 길을 보여준다면서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이 문제의 원인인 창세기3장(불신앙-죄/저주-사탄) 사건을 은폐시키기 위해(이렇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역사가 무의미하게 됨), 또 한술 더 떠서 아예 온 인류를 현실과 실존을 부정해 버리는 실제와 환상을 구분 못하는 정신 병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불교: 현실 세계와 고통은 모두 관념이 만들어 내는환상이다/ 힌두교: 현상세계 사물들의 이름과 현상은 아무런 의미도, 우열의 차 이도 없는 환상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한 강도가 자기의 머리에 총을 대거나 칼을 들이대면 "아, 나는 이제 죽는가보다"하고 현실을 인정해야 당연한데 힌두교도의 논리대로라면 이 절박한 상황도 어디까지나 환상이니 헛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강도나 힌
두교도나 우리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 선도 악도 어떤 모양의 구분도 없다는 것이다. 사탄이 어떻게 인간을 세뇌교육시켰으면 인간이 이렇게 동물보다 못한 미련한 존재로 전락하였을까? 마치 버스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 오는데도 이것을 환각으로 보고 길을 건너다 죽는 비참한 인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 안 미친 사람이 비정상이고 미친 사람은 지극히 정상이라 할 수도 있 겠다. 그러니 정신적인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것은 뻔한 것이 아닌가?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고통의 실재성을 부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인간의 고통을 깊이 인식하셨고 공감하셨다. 주님은 배고프기도 하셨고 슬퍼도 하셨고 민망해 하기도 하셨다. 주님은 인간(저주받은)의 고통을 몸소 체험도 하셨다. 또 성경은 이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창3:16-19) 그리고 언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인지(계21:4)까지 얘기해 준다. 그러나 이 고통을 해소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었거나 이 고통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은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이요 사탄의 음흉한 작전인 것이다.
성경적인 세계관으로는 인간의 최초 문제 의식은 고통의 문제에서 시작하지 않고 죄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마3:2, 4:17)라고 선포함으로써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고통은 불 신앙으로 하나님을 떠난 때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그 결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성을 가지게 됐고 죄 지을 수 밖에 없는 사탄의 노예가 되어 우상숭배에 빠져 저주와 고통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이 힌두교/ 불교와 기독교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다.
기독교안에서도 고통의 해소보다 그 원인인 (원)죄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기복신앙으로 흐르게 되었다. 그런 비성경적인 사고의 부산물이 바로 해방신학 이다. 힌두교는 창3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즉 행위와 지식과 헌신을 통해 업(인과 응보)을 해소하여 해탈하는 길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부인하며 자신의 방법과 노력으로 하나님처럼 되어(창3:5) 영생(창3:4)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놀라웁게도 인간은 스스로 신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영적혼란은 날이 갈수 록 심해져가고 있다.
우리는 현장에서 불교도나 힌두교도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당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피조물인 당신은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다(힌두교/불교/뉴에이지/기운동에서 가르치고 추구하는 갖가지 초능력의 현상…).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가. 왜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가 없는가. 사탄에게 속지마라. 당신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이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 그 해결방법이 있는데 아는가?…"라고.
사탄은 이 비진리를 세계 여러 종교와 사상안에서 가장 고상하고 심오한 철학으로 체계화하는 일을 지금까지 계속해 왔다. 우리는 사탄의 복음, "너도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는 이 거짓말을 폭로해야 한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 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흑암의 역사를 대적해야 한다.
힌두교와 불교 사상의 핵심적인 공통분모인 무지, 환상, 윤회, 업 등의 개념이 직결돼 있는, 인간의 근본 문제인 "고통"에 대해 정리해보자. 지난 호에서는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가 고 통의 문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초래된 죄(성)라는 사실과 인간 들로 하여금 이 고통을 해소하는 데에만 촛첨을 맞추게 하는 사탄의 전략과 그 위험성에 대 해 살펴봤다.
이제 사탄이 얼마나 교활하게 진리를 왜곡시키는지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사탄은 고통이 무지(원인)에서 왔으며 이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중의 방법은 먼저 현실 세계 의 존재와 고통의 실재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교묘히 속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부정케 한다. 그리고 결국 사도바울이 그렇게도 신랄하게 비판했던 다른 복 음인 행위(율법/자신의 의)를 통한 고통에서의 자유(윤회를 통한 영적 진화/열반/절대 자유/ 우주의 궁극적 실재와 합일...)를 사탄은 가르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사는 복음과 율법의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 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결국에는 복음이 승리하리라는 것이다(언약)다. 이 흑암 세력과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도와 복음과 전도로 맞서야 할 것이다.
힌두교(또는 불교)에는 기본적으로 "원죄"의 개념이 없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짓는 " 죄"는 단지 무지의 소산이며 나쁜 업을 쌓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쁜 업이 인간을 사망으로 이끌어 가는 치명적인 원인도 아니다. 힌두교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고통의 원인인 "무지"라면 기독교에서는 "죄"다. 그렇다면 우주 최초의 무지는 어디서 왔는가?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들은 모르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이들의 순환적 세계관에 의하면(우주와 역사의 시작과 끝을 전제로 하는 직선적인 성경적 세계관과는 달리) 시작도 끝도 없고 또 이에 대한 의문도 가지지 않는 것이 정상이 다.
이렇게 힌두교는 무지를 깨우치기 위하여 수행(요가, 탄트라...)을 강조한다. 인류의 수많은 종교와 사상과 철학을 검토해 보면 하나도 예외 없이 비복음인 "행위에 의한 구원"을 주장 한다. 심지어 기독교 안에서도 "행위"라는 인간의 의는 늘 복음의 능력을 희석시켜왔으며 지금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얼마나 많은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정말 인간의 두뇌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는 조건으 로 조금이라도 어떤 수행도 행위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인간은 구원받아 야 할 자격과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객관적으로 볼 때 모든 고통은 욕구의 좌절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욕구의 좌절은 부당한 욕구의 발생과 욕구의 충족을 좌절시키는 환경의 발생에서 온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이유를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먼저 고통의 발생에 대해 뭘 말하고 있는가. 성경에 의하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 거기에는 어떤 고통도 없었다. 죄와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인식이나 관념의 영역뿐 아니라 주위의 환경에서도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연은 풍족했고 인간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통은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부터 왔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마음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을 몰랐다. 끝내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였다(창 3:5). 인간은 하나님 대신 모든 것을 자기 의지대로 하고 싶어하며 자신을 내세우며 남을 무시하는 타락한 본성(미움, 살인, 다툼, 분쟁, 간음, 음욕, 시기...)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타락한 결과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았고 인간에게 고통을 증폭시켜주는 환경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이제 자연환경은 그 풍성함과 안락함을 상실하고 결핍과 위험을 인간에게 안겨주는 무서운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또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교만에서 출발된 고통의 원인인 원죄가 예수가 그리스도 가 되신 구속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써 죄인의 상태에서 타락 전의 아담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있을 온전한 구원에의 자격을 얻은 것이지 지금의 고통이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환경변화에 의한 궁극적 해소는 우주적 종말과 함께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고통의 궁극적인 해소는 이루어질 것이다. 결국 고통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 제한된 인식 능력, 연약한 육신, 열악한 주위환경 등이 총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구원과 마찬가지로이 고통의 완전 해소는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달려 있으며 인간의 노력으론 불가 능하다.
다음 면에는 힌두교도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 고통을 해소하는가(실재/환상은 이때 다룰 것임), 이들의 구원관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이제 서론적인 것보다는 실질적인 문제, 바로 인간의 최고 목표가 고통의 제거와 절대자유의 획득이라면 힌두교 사상은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길을 제시(구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힌두교 사상에 의하면 주로 세 가지 길이 있다. 도덕적 행위(카르마-윤회사상/영적 진화론), 수행을 통한 지식과 통찰력(즈나나-요가/초능력), 그리고 신들에 대한 헌신의 행위(박티-탄 트라...).
먼저 지금까지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윤회'(Samsara)라는 개념이다. 윤회 사상은 기원전 6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인도에서 유래돼 지금까지 인정되어 온 사상으로 이것을 전제로한 전생에 관한 이야기가 한국에도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에 부딪히면 아무 꺼림 없이 전생을 들먹거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불교, 초능력 현상, 심령술, 뉴에이지 운동 등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이 윤회와 환상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더러는 여기에 대하여 개인적인 특별한 체험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윤회설을 신봉하는 인도의 정통 힌두교도들에 의하면 이러한 경험의 대부분은 일종의 귀신들림 현상이라는 것이다. 또 윤회설은 너무나도 주관적인 최면에 의한 무의식으로의 퇴행 상태에서 경험된다는데이 얼마나 우스운 귀신장난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윤회사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윤회 사상은 불사(不死)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태양숭배 사상에 투영함으로써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은 태양의 순환(Cycle)과 회귀(Recurrence)의 관념을 통해서 인생의 순환과 회귀라는 사상을 창출한 것이다(환각제와 최면술에 의한 의식의 상실 상태나 사탄이 주는 자극적인 영적 체험으로 확인된다 함).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의 영혼은 카르마를 해소하여 점점 현계(물질세계)에서 유계(미세한물질세계)로, 유계에서 상념계(순수한 정신세계)로 진화하며 끝에 가서는 절대자유를 얻는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예수도 이 세 가지 차원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여 절대자유를 얻은 '우주령'과 합일(마지막 단계)한, 즉 우주령의 많은 아들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세주로서의 유일성 또 그가 이루신 구원의 완전성을 부 인하는 사탄의 세련된 거짓을, 어떻게 해서든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몸부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윤회 사상은 순환론적 우주관을 인간의 삶에 적용한 것이다. 윤회 사상의 메시지는 우주가 주기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것처럼 인간도 탄생과 죽음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순환론적 사상은 이 외에도 많다. 모두 사탄의 고차원적인 농간에 불과하다.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의 시원과 창조 그리고 종말,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며 이 사실 들을 은폐시키는 것이다.
사탄은 윤회사상의 카르마 법칙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라고 인간을 종용하고 있다. 카르마의 해소는 각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 누군가에 떠맡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누군가에 의해 대신될 수 있다 해도 꼭 이생에서 구원을 얻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윤회라는 개념의 매력 포인트는 첫째 자연의 질서와 일치한다는 것이요, 인생의 반복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인생의 기회에 대한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희망 앞에 '인간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경고는 오히려 마치 무슨 협박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할 구원에 대한 긴박성이 희석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이 윤회 사상이라는 사탄의 굴레에 묶여 있는 수억이나 되는 영혼들에게 진리를 말하여 구해낼 책임 이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사명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셨는가.
두 번째 구원의 길은 요가다. 업(Karma), 환상(Maya), 열반(Nirvana) 등의 개념과 같은 수준의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이다. 요가는 철학체계(범아일여사상)요 해탈(Moksa)을 얻고자 하는 수행방법이다.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로 철학 체계는 종교적 의식과 수행의 바탕이 된다. 오늘날 육체와 정신 건강에 그만이라는 요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아무 해가 되지 않는 것 같으나 이는 복음을 대적하는 사탄의 운동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미리 앞서 말하지만 요가 사상은 궁극적으로 물질 세계를 부정하는 일종 의 영지주의 사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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