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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47:27-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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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01·15
지난 금요일 아침에 새벽기도를 나오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이미 어떤 사람들이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벽부터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열렸습니다. 그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제 막 염을 끝낸 듯한 시체를 가지고 거기에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아마도 안 믿는 사람들 같으면 새벽부터 재수 없다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교회로 가면서 “인생이 무엇이냐?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가게 될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천국의 소망 주신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이냐?”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유언을 써봤더니, 아이들이 믿음으로 굳게 서 있기만 하다면 아무 염려 없이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더랍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믿음으로 바로 서 있기만 하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돌보시고 축복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든든하고 확실한 대책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이 가장 마음에 걸리겠습니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자녀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정초부터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기분이 상하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임종을 앞둔 야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아왔던 야곱, 수많은 역경을 헤쳐 온 투사 야곱, 심지어는 천사와 씨름하여 이기기까지 했던 이 위대한 족장 야곱이 이제는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대하는 야곱의 태도에서 큰 교훈과 도전을 받게 됩니다.
야곱의 말년
야곱은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에 온 후에도 17년을 더 살았습니다. “야곱이 애굽 땅에서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이백사십칠세라”(28절) 묘하게도 그는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낳은 후 17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제 그의 생애 마지막 17년을 사랑하는 그 아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요셉을 잃어버리고 이제 곧 죽어가는 사람처럼 쇠약해졌던 야곱은 요셉의 지극한 효도와 봉양을 받으면서 말년을 이렇게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야곱은 그의 생애를 2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는 나그네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야곱은 파란만장했던 147세의 생애를 마감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정리하는 야곱이 마지막 붙잡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유언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야곱
우리가 보기에 이제 죽음을 앞둔 야곱에게는 걸릴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자손들은 애굽에 와서 염려 없이 7년의 흉년을 넘긴 후 엄청나게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안심하고 눈을 감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특별히 요셉을 불러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죽은 후의 장사문제였습니다. 사실 장사지내는 일이라면 당시 애굽이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미이라로 만들어 수천 년이 지나도 부패하지 않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죽으면 당연히 최고 수준으로 장례를 치를 것이 분명했습니다. 만일 원하기만 한다면 야곱을 위해 피라미드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자신의 장사 문제에 대해서도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특별히 요셉을 불러 자신이 죽거든 가나안 땅 조상의 무덤에 장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29-30절) 그것은 가나안 땅이 단순히 야곱의 고향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자신을 반드시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당부한 이유는 그곳이 바로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굳게 믿어왔는데, 이제 이곳 애굽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을 반드시 가나안 땅에 장사하도록 하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그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자신을 반드시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당부한 것은 그가 자기의 죽음을 통하여 그의 후손들에게 분명한 증거를 남기기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을 통해서 자신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히 붙잡고 있었음을 그의 후손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증거를 통하여 그의 후손들 역시 자신처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갖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자신의 장사를 명분으로 삼아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을 한 번 가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언젠가는 바로 그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더욱 생생하게 믿고 기억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야곱은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고, 후손들에게 믿음을 더욱 심어주기를 원했습니다.
경배하는 야곱
야곱은 이 일을 요셉에게 당부한 후 맹세하게 했습니다. 특히 손을 환도뼈 아래 넣고 맹세하는 것은 맹세의 당사자가 죽은 후에라도 그 약속은 자손대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맹세를 하자 야곱은 안도하며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31절)
야곱은 하나님의 권능과 그 선하신 인도하심을 찬양하며 경배했습니다. 그는 지난날에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를 드렸습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셨던 일, 자기의 믿음이 약해졌을 때 깨우쳐주시던 일,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이 이렇게 영화를 얻어 그와 가족을 돌보게 된 일, 이 사랑하는 아들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극진한 효성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 앞에서 이 위대한 족장이 한 일이었습니다. 야곱은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서 일생토록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경배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죽을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조금도 고통스럽거나 애석해하지 않고, 마치 여행을 떠나는 설렘을 가지고 기다리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죽음은 가슴 설레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보배로운지 생각할 때 우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잘 준비하자.
야곱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정말 믿음 있는 성도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고한 증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갖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미련도, 어떤 불안감이나 두려움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잘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죽음에 대해서 준비되어 있습니까? 죽음이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준비를 잘 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죽음이 갑자기 찾아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서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도 세상에만 깊이 빠져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면 모든 것을 다 얻을 것 같습니까? 우리는이제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했습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다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인생이 다 잘 풀릴 것 같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헛된 것만을 붙잡고 정신없이 살다가 인생이 끝나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또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을 올바르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은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의 인생은 헛되고 곤고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힘입으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 오직 믿음으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평안하며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과 건강과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섬기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인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가치 있고 진정으로 복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이 나의 믿음과 소망을 분명히 증거하는 기회가 되게 해주시라고 늘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자녀들과 지켜보는 성도들이 당신의 죽음을 보면서 은혜를 받고 신앙의 도전을 받게 만드십시오. 당신의 죽음을 보고 자녀들이 정말 믿음으로 살기를 새롭게 결단하게 되도록 기도하며 준비하십시오.
나는 우리 어머니의 임종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치료도 받지 못하시고 고통을 당하시다가 임종하셨습니다. 임종 직전에는 혼수상태에 빠지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임종하실 때는 너무나도 평안하고 차분해지면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임종하실 때의 모습은 마치 천사의 얼굴과도 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임종하실 때 남기신 유언은 간단한 한 마디였습니다. 큰 형님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큰 형님은 믿음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큰 형님은 하나님께 돌아와 믿음생활에 힘쓰게 되었고, 지금은 장로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유언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당신도 성도의 죽음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자녀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믿음을 더욱 심어주는 죽음이 되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생애
이렇게 요셉을 불러 자신의 장사에 대하여 당부하고 맹세를 시켰던 야곱이 병이 들었습니다. 요셉은 그 소식을 듣고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로 갔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이제 죽게 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왔다는 말을 듣고 힘을 내어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최초로 나타나셔서 축복하셨던 일을 회상하며 말합니다. 그것은 그가 형을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을 만났던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2-4절)
야곱에게 그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야곱은 백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 그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세월과 수많은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어오셨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더욱 뜨거운 감격과 감사로 충만해졌을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생애였습니다. 비록 그가 수많은 고난과 연단을 겪었지만, 비록 야곱이라는 인물이 문제가 많고 허물투성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약속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어주셨습니다.
한 때 그는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어버린 아픔을 당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소망을 잃어버렸고, 침체와 슬픔과 절망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낙심과 침체 가운데서 슬퍼하고 있을 때에도 쉬지 않고 그를 위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그로 인하여 야곱의 온 가족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으며 크게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말년에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영화를 보면서, 그의 지극한 효도와 돌봄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말년은 그야말로 해피엔딩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을 만끽하면서 인생을 마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인생에도 이러한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을 감격적으로 만난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습니까?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믿음으로 살기를 더욱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찾아와 붙드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도록 하십시오. 그러한 경험만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반드시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사는 동안에 고통과 슬픔과 문제가 많았다 하더라도, 실패와 부끄러운 일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자녀들의 문제로 고통을 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선하게 주관하셔서 마침내 선을 이루시고 형통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믿음에 굳게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두 아들을 입양하는 야곱
임종 직전에 야곱은 이상한 일을 합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 것입니다. “내가 애굽에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5-6절)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 것은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째, 그것은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을 준 것이었습니다. 장자는 두 몫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이스라엘에서 두 지파를 이루게 함으로써 요셉을 명실공히 장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훗날 성경은 야곱의 장자권이 요셉에게 돌아갔음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역대상5:2)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 것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의 비전을 반영한 믿음의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총리가 되어 살아온 과거를 타락으로 보지 않고 선교라는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타락과 선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타락은 세상 죄에 영향을 받아 거기 빠져 동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는 세상에서 믿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이 애굽에서 살았던 세월은 선교였으며, 요셉의 두 아들은 선교의 열매였습니다. 야곱은 그들을 정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겼으며, 자신의 아들들로 입양하여 갑절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의 열두 아들은 열세 지파를 이루었고, 레위 지파가 별도로 구별되어 그 수에서 빠진 후에도 열두 지파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들로 입양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의 열매를 가장 기뻐하시며, 그 어느 민족이든지 하나님께도 돌아오면 기꺼이 친 백성으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의 비전과 열정을 함께 품고 이 일을 헌신적으로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중단 없이 전진했던 믿음
야곱은 또 자기 아내 라헬에 관한 이야기를 요셉에게 들려줍니다.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라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7절)
여기서 야곱이 요셉의 어머니 라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에 그들은 하란에서 살았었습니다. 야곱은 거기서 많은 재산을 모았고, 네 명의 아내들과 열한 명의 아들들을 얻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가나안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의 아내들과 함께 이 일을 의논했습니다. 아내들은 기꺼이 하나님 명령에 따르기로 동의했습니다. 그 때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만삭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으로 결단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는 도중에 애석하게도 라헬이 막내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아마도 만삭이 된 몸으로 무리한 여행을 하다가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가장 사랑하던 아내를 그렇게 잃고 말았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그렇게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여기서 굳이 이 일을 말한 이유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감수하면서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믿음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셉의 어머니였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만삭의 몸으로 기꺼이 믿음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당하면서도 믿음의 길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믿음의 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언제든지, 그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이 애굽 땅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얼마나 비장한 유언입니까? 과연 야곱은 믿음의 투사요 용사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길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때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난관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믿음의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보다 더 큰 문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믿음의 길을 멈출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해도, 사업이 실패했다 해도, 그 어떤 어려움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우리는 결코 뒤로 물러갈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서서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때가지 쉬지 않고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젠가, 아마도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깨어서 그 날을 잘 준비합시다.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믿음의 길을 멈추지 마십시오. 당신이 인생을 마치는 순간은 자녀들과 많은 성도들에게 감동적이고 확신 있는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당신의 삶과 죽음이 믿음을 증거하고 승리하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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