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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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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15) 기쁨이 있을 때 기적도 있습니다 (요 2:1-5)
<풍성하신 하나님 >
한 동물농장에 위대한 수탉이 있었습니다. 그 수탉은 태양을 뜨게 하는 수탉이었습니다. 아침마다 그 수탉이 “꼬끼오!”하면 태양이 떴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 위대한 기적의 사도 수탉을 존경했습니다. 동물농장 가족들은 근처 동물들에게 열심히 선전했습니다. “우리 수탉님은 태양을 뜨게 해요!” 그 수탉의 힘으로 동물농장은 크게 부흥했습니다.
동물농장이 커지면서 가축들은 걱정했습니다. “저 수탉님이 병들면 어떻게 하나!” 수탉 자신도 생각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해가 뜨지 않아서 다 죽을 텐데. 그런데 아들 수탉이 쓸만하니까 내가 죽으면 아들 수탉에게 해 뜨게 하는 일을 맡기자.” 걱정도 팔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 수탉이 병들게 되었습니다. 수탉은 자기사명을 생각하며 걱정했습니다. “내일 아침은 어떻게 하나?” 다른 가축들도 “이젠 망했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해는 여전히 떠올랐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서야 동물농장 가축들은 수탉에게 속은 줄 알고 동물농장을 떠나 지금 그 동물동장이 큰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동물농장의 가축들처럼 누가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지만 하나님만 계시면 희망의 해는 여전히 떠오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가끔 수탉처럼 행동하며 자기 없으면 큰일 날 줄 압니다. 그러나 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잘 나갈 때 너무 높아지지 말고 일이 안될 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쁜 일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있어야 합니다. 페널티킥 실축도 게임의 일부이듯이 고난도 인생의 일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고난은 있어도 불행은 없습니다.
< 기쁨이 있는 곳에 기적도 있습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좋아하지만 사실 매일의 삶이 기적입니다. 기적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지는 잘 모르고 삶을 낭비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삶에 기적이 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본문에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나옵니다. 이 기적을 보면 예수님이 인생의 세세한 필요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했습니다. 누구의 혼인잔치였을까요? 아마 신부가 예수님의 친척이었을 가능성이 많고, 예수님의 여동생 중 하나의 결혼식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 결혼식에서 갑자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3절).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데 포도주가 떨어진 사소한 것까지 와서 얘기해야 됩니까? 그러나 예수님께 사소한 문제도 말씀드리십시오.
예수님은 위대한 분이니까 위대한 일에만 관심이 있고 거룩한 분이니까 거룩한 일에만 관심이 있는 줄 오해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필요에 관심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감옥에 있는 사람과도 함께 하지만 파티에 참석한 사람과도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도가 즐겁게 지내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순교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순교 콤플렉스’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자주 파티에 갔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은 즐겁게 사셨기에 비판자들은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습니다(마 11:19). 그러나 예수님은 음울하고, 엄격하고, 감정이 질식할 것 같은 종교의 창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그곳에 사람 사는 맛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런 기쁨이 있는 곳에 기적도 일어납니다. 기쁨이 질식하면 기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삶에 기쁨이 없으면 성공도 오다가 달아나버립니다. 반면에 기쁨이 있으면 아무리 큰 고난도 곧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는 사람, 기쁨을 주는 사람, 만나면 편하고 즐거운 사람,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또 만나고 싶은 사람,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십시오. 그런 사람이 사실상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애써 부인하며 갈등과 상처와 순교 콤플렉스 가운데 살지 마십시오. 순교가 신앙의 한 과정은 될 수 있지만 순교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안에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요 15:11).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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