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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9: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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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1. 들어가는 이야기 /
화룡점정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중국에 용을 그리는 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는데 그가 그린 용은 정말 龍蛇飛騰(용사비등)이라 구름을 부르고 여의주를 물고 이제라도 구만리 장천으로 날아 오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화가는 용을 그리되 언제나 두눈이 먼 용만 그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습니다. 아니 눈먼 용이 어디 있소 희번뜩한 용의 눈을 보니 영 기분이 좋지 않소이다. 그 화가의 말이 이 용에 두 눈을 넣어주면 하늘로 날아 오르기 때문이요 하였습니다. 사람들 말이 아무리 그럴 리가 있겠소 제발 두 눈 가진 용을 그려주오 하였습니다. 화가는 沐浴 齋戒하고 단정히 앉아 까만 먹물을 듬뿍 뭍여 용의 희번뜩한 두 눈에 꾹 하니 새까만 눈동자를 찍으니 갑짜기 천지가 우-르-르-콰-쾅- 하더니 용이 두 눈을 번쩍이며 여의주를 쥐고 오색 빛을 뿌리며 하늘로 승천 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화룡점정이란 모든 일의 마지막 결단, 가장 중요한 결론적 일 처리, 공장을 다 지은 후 마지막으로 전기를 넣어 주는 일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와같이 말씀의 샘물 제97호, 제98호에서 묵상한 바 있는 복음 전도의 기본 전략에 마지막 화룡점정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 전도 전략에 마지막 화룡점정이 되어야 복음 전도의 엔진이 윙 윙 윙 활기차게 돌아갈 것입니다.
2. 본문의 이야기 /
본문은 날 때부터 소경인 거지의 눈을 뜨게 해주신 사건으로 多角度에서 조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복음 전도 전략의 마지막 화룡점정과 같은 것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와 그 제자들이 길을 가실 때 날 때부터 소경인 거지를 만납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은 그의 눈에 진흙으로 바르시고 실로암으로 가서 씻으라 하시니 이에 그가 씻고 그 눈이 밝아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반 백성들에게 예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밝혀 예수는 거짓 선지자이며 가짜인 것을 증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예수가 죄인이며,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이런 기적을 일으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안식일을 범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의 부모로 하여금 예수가 거짓 선지자 임을 증언토록 유도 하였으나 실패합니다(18-23절). 이번에는 소경이었다가 지금은 눈을 떴다는 그 당사자를 불러다가 당사자의 입으로 예수가 죄인이며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하였다고 증언토록 강요 하였지만 결국 실패합니다(24-34절).
3. 소경이었다가 고침 받은 사람의 신앙 고백
바리새인들은 눈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네가 눈을 뜬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인 예수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눈을 뜨게 한 것임을 이 백성들 앞에서 증언 하라(24절)고 하였으나 눈 고침을 받은 사람은 자기 눈을 고쳐 주신 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그리고 바알세불을 힘입어 나를 고쳤는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셨는지는 알지 못하나 한 가지 분명히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은 눈을 떴다는 이 명백한 사실입니다(25절). 그리고 나는 창세 이래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으며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으리라고 믿습니다(30-33절)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신앙 고백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출교의 위협이나 율법의 그 어떤 정교한 이론도 그가 체험한 신앙 고백을 꺽을 수 없었습니다.
4. 복음 전도의 마지막 화룡점정은 자신의 신앙 고백입니다
복음 전도에서 논리적 해명이나 논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사람과 종교적 혹은 철학적 논쟁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해서 그 사람이 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감만 높일 뿐입니다. 복음 전도는 설득이나 논리가 아니라 그 마음 속에 복음이 참 좋구나! 과연 복음이 진리구나!하는 깨달음을 일으켜 그 사람 스스로 예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고의 방법은 나의 신앙 고백입니다.
만약 등산 권할 때 등산은 이러 저러해서 좋으니 등산 하라는 것은 동기 유발이 약합니다. 그런 건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자신의 경험 즉 내가 등산 하기 전에는 너도 알다시피 하체에 힘이 없고, 지구력도 약하고, 항상 피로 하였는데 등산을 계속한 이후 하체가 몰라보게 튼튼해졌고, 책을 읽거나 밤샘을 해도 까딱 없고, 도무지 피로를 모르고 살고 있네!하면 달라집니다.
자, 예수 믿기 전과 예수 영접한 이후 나의 삶이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나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를 증언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에 네가 알다시피 나는 우울과 한숨의 삶을 살았는데 지금 내가 얼마나 기쁨 속에서 사는지 보라! 전에 나의 가정이 파괴 직전 이었으나 오늘 나의 가정은 굳건히 서있는 것을 보라! 전에 나는 우유부단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았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물댄 동산같이 삶의 깊은 의미 속에 충만한 것을 보라! 하는 나의 증언, 나의 신앙 고백이 복음 전도의 화룡점정입니다.
5. 마치는 이야기 /
복음 전도의 결정적 힘은 내가 예수를 만나고 믿고 살아보니 예수를 모르던 그때와 예수를 영접한 이후 이렇게 달라졌다는 나의 육성 증언에 있습니다. 혹 우리 가운데 이런 자기 신앙 고백이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희미해졌거나 식어버린 분은 없습니까?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안수함으로 하나님의 그 은사를 < 다시 remind > 불일 듯 일어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자신의 신앙 고백을 < 다시 > 새롭게 하여 복음 전도의 확실한 열매를 맺는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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