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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3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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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1. 들어가는 이야기
복음서를 보면 예수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주님, 다윗의 지손, 랍비, 선생님 등으로 불렀습니다. 이 가운데 예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호칭은 선생님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마7:28-29,12:38, 17:24, 19:16,22:16. 눅5:5, 8:49, 10:25, 17:13, 18:18, 19:39, 20:21, 20:28, 22:11 등).
예수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예수는 어떤 선생님이셨는가? 본문만이 아니라 복음서에 나타난 선생님으로서의 예수 모습을 살펴봄으로 오늘 선생님의 자리에 있는 목사, 전도사, 교회 학교 교사들의 자리 매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2. 예수는 찾아가시는 선생님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차별성이 무엇일까? 생각할 때 느껴지는 것은 세례 요한이 광야 요단 강에 머무르면서 <광야 요단 강으로 찾아 오라!>고 하였다면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로, 여리고로, 가버나움으로 찾아가셨다!>는 점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은 광야 요단 강까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저들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시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찾아가기>보다는 <찾아 오라>고 합니다. 교회 학교 학생들의 삶의 현장과 교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집니다. 주일날 단 하루 한 두 시간 동안 행해지는 것이 교회 교육의 전부입니다. 그것도 지극히 불성실하게 말입니다.
찾아가시는 예수의 모습을 본받아 내가 맡은 학생들의 삶의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기, 전화, 편지, 기도로 찾아가는 선생님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3. 예수는 창조적 소수자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신 선생님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대량 생산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는 지극히 작은 자, 작은 공동체에 깊은 관심을 가지신 선생님입니다. 예수는 3 제자, 12 제자 그리고 70 제자를 양육 하셨습니다. 예수는 작은 공동체를 창조적 소수자로 알뜰히 키워내신 선생님이십니다.
마태복음19:28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종달새 알에서 종달새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는 이 작은 제자 공동체가 장차 온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내리라는 것을 미리 보고 계신 선생님이셨습니다.
4. 예수는 독창적이신 선생님입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놀랍도록 독창적인 가르침입니다. 산상수훈을 들은 사람들이 내린 평가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가르치심에 놀랐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고, 저희 보통 선생들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가르치심의 내용과 방법과 시각이 완전히 독창적이고 새로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뚜렷한 시각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선생님들은 어떻습니까? 그저 공과 책을 읽어 주는 정도는 아닌지요? 공과 책에 미리 제시된 문제 풀이나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독창적인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공과 책을 만든 사람들보다 더 창조적인 물음과 참신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5. 예수는 겉과 속이 같은 선생님입니다
본문을 보면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께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와 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떤 위대한 사람도 그 아내나 가까운 시종들에게는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위대하다는 인물의 겉과 속이 얼마나 다른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와 보라!>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살면서 나를 보라. 나의 겉과 속을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겉과 속이 같은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과 속이 같은 선생님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6. 마치는 이야기
畵龍點睛(화룡점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화가가 용을 그렸는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용이었으나 눈알이 없는 눈 먼 용이었습니다. 왜 용의 눈알이 없느냐? 하니, 용의 눈알을 그려 넣으면 이 용이 살아서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눈 먼 용이 무슨 용이냐 눈알을 그려 달라 하여 그 화가가 먹물을 듬뿍 찍어 용의 눈알을 척 그려 넣은 순간 우르르릉 콰콰쾅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용이 날아갔다는 것입니다. 용의 눈알이 용을 용되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그처럼 위대하신 선생님이실 수 있었던 용의 눈알과 같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빈들에서, 바닷가에서, 산에서, 동산에서, 골방에서, 새벽 미명에, 한 밤중에 <하늘 아버지께 드리는 끊임없는 기도> 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선생님이여! 선생님의 그 모든 탈란트가 살아날 수 있도록 화룡점정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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