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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후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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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화림 목사 |
참고 : | 광주 신안교회 원로목사 |
본문: 창 39:10-18, 딤후 4:6-8
우리는 보통 새해와 설날을 전후해 새해 인사를 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습관처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너무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사이 신문에는 새해 행복하세요. 새해 복 많이 누리세요 라는 인사말을 쓰는 것이 좋다는 제언을 했습디다.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인사 말속에는 물질의 풍요를 비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의사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했을 때 그 말속에는 금년에 병이 많이 발생해서 병원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해 달라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에게 새해인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했을 때 금년에 무질서와 폭력이 만연해서 범죄자가 많아서 변호사가 할 일이 많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장의사하는 사람에게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금년에 사람이 많이 죽어서 장례하는 일이 많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복을 좋아 합니다. 그래서 대문, 장롱, 밥상,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에도 복자를 베게에도 방석, 이불, 장판, 여자의 치마에도 비녀에도 복자를 새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도 복을 좋아하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벨기에의 극작가 마테를링크는 1908년 파랑새라는 동화극을 발표했습니다. 가난한 나무꾼의 아들 형제가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 형제는 이곳저곳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파랑새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파랑새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형제는 지켜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헤매고 찾아다니던 파랑새는 자기 집 새장 안에 있었습니다.
옛말은 길은 가까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행복도 가까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을 가까운 곳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먼 곳에서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행복은 내 나라에서 내 가정에서 내 생활에서 내 직장에서 내 교회에서 내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금년에 먼데서 행복을 찾지 말고 가까운데서 행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지각이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를 다 마치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한 평생을 다 마치는 날 후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딤후 4:6-8절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자기의 파란 많던 생애를 회고하면서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후회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고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준 사명을 마치려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던 바울 외에는 후회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존 렌돌프는 초창기 미국의 정치가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그가 마지막 임종시에 부르짖기를 후회 후회 후회 하노라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해 달라 성경 안에 있는 그 말씀을 보여 달라 아 후회 너희는 이 말의 의미를 모르리라 나를 주 예수의 자비하심에 맡기노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풍자가 였던 찰스처칠은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그의 모든 작품도 다 타락한 내용이었습니다. 1964년 그는 임종을 앞두고 최후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잃어버린 삶과 재능의 타락을 후회하면서 죽어갔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참으로 바보였다”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뼈아픈 후회입니다. 하루를 살고 후회하면 내일은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1년을 살고 후회하면 내년은 새롭게 살수 있으나 일생을 다 살고 후회하면 지난 삶을 되돌려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일에 후회하는 것보다 미리 후회 없이 살아가기를 힘쓰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어떤 건축기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건축업자가 오랫동안 자기회사에서 일한 건축기사에게 자네도 이제는 기술이 많이 향상되었으니 자력으로 집을 한 채 잘 지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건축기사는 정성을 들여 짓지 아니하고 눈가림으로 적당히 집을 한 채 건축했습니다. 사장에게 다지었다고 보고 했더니 와서 보고 그동안 수고 많이 했네 자네가 지은 이 집은 자네집이니 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평안히 살게 이 말을 듣고 이 건축기사는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내가 살 집인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날림 공사를 하지 아니하고 좋은 재료로 튼튼하게 지었을 텐데...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살면 후회를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를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일생동안 최선을 다해서 살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은 오늘 읽은 7절에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삶을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선한 군사로 일생을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살았습니다. 선한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입니다. 바울은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 자기 육체를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육신이 살아 일어서려고 하고 조금만 늦춰주면 육신의 정욕이 머리를 들고 일어납니다. 조금만 소홀히 하면 자기의 교만이 살아나고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자기의 자존심과 오기가 살아납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에게서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아니하고 나의 체면이 짓밟히고 나의 명예가 손상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자존심을 굴복시키고 나의 혈기를 굴복시키고 나를 철저히 매장시키면 그때에는 너무나 아프고 쓰린 고통이 있지만 두고 두고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신음 했습니다
롬 7:22-24절에서 고백하기를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노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고전 9:27절에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도리어 자신이 버림받지 않도록 자신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청춘과부로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딴 생각이 들면 바늘로 자신의 온 몸을 찌르고 또 찌르면서 자기를 쳐서 굴복시키면서 살았습니다. 그와 같이 바울도 자기의 몸을 쳐서 굴복시키면서 살았습니다. 정욕이 머리를 들려고 하면 쳐서 굴복시키고 허영과 교만이 머리를 들면 쳐서 굴복시켰습니다. 날마다 지기와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갈 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고 갈 6:14절에는 내가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도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때를 상상해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냥 반사작용으로 물리친 것이 아니고 요셉이 자기 자신과 지독하리 만큼 싸웠습니다. 요셉은 사춘기를 갓 지난 젊은이였고 이국만리에 팔려온 종으로 고독하게 혼자 사는 사람이었고 보디발의 아내는 미인이었고 창 39:10절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듣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함께 있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맡은 일을 보기 위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더니 보디발의 집 사람은 하나도 집에 없었습니다. 그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왔습니다. 요셉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리하여 단호히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후회하지 아니하려면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히 12:4절에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한다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웠기에 죽는 날 까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음에 달려갈 길을 잘 달리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읽은 말씀 7절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고 하였습니다. 달려갈 길이란 말은 영어 번역에 my course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사명을 가리켜 나의 코스라고 했습니다. 달려갈 길은 마라톤 경주에서 정해진 경주 코스를 일컫는 말입니다. 바울이 나의 코스를 다 달렸다고 말한 것처럼 여러분과 제가 달려야 할 코스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직업별로 말하면 군인은 군인이 달려야할 코스가 정해져 있고 경찰관이나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의사, 목사가 달려야 할 코스가 다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정상적인 코스를 이탈하면 그것이 바로 탈선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코스를 방향을 바로 정하고 달렸습니다.
고전 9:26절에 말하시기를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 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조건 달려간 것이 아니라 방향설정을 정확히 하고 달렸다는 것입니다. 빌 3: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7절에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는 말씀은 바울이 경주에서 승리했다는 것만이 아니고 이 길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달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따르고 곁에 있던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므로 복은 전선에서 이탈하여 데살로니가로 가버린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고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 신앙에서 이탈하여 율법주의로 돌아가 버림에 대하여 통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처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끝까지 달리지 못하고 도중하차 해 버리면 후회하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들을 감당할 때 충성을 다하지 못하거나 도중하차를 하면 장차 심판대 앞에서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바울은 어떤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신학자 길 리가 말하기를 바울의 경주는 장거리 장애물 경주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를 바든 후 순교할때까지 많은 위험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행 20:23-24절에서 바울이 고백하기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달려가는 코스에는 죽음의 장애물도 고난이나 핍박의 장애물도 사람의 장애물이나 짐승의 장애물도 가로 막을 수가 없었고 바다의 장애물이나 육지의 장애물 동족의 장애물이나 이방인의 장애물 가난의 장애물이 결코 가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읽은 7절 하반절에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도 중요하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가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과 더불어 싸운 것도 중요하고 자기가 맡은 사명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마 7:21-23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각종 신비를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고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은 것도 중요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 낫는 권능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께서 인정하시고 기억하시는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사와 이적을 베푸신 목적은 제자들과 우리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각종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가 믿음을 지키도록 기도하십니다.
눅 22:31-32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기도하였고 예수님의 기도에 힘입은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물의 기도를 드림으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고 모든 곳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이 니고니온에 갔을 때 유대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바울을 능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으나 그러한 위기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루스드라에 갔을 때 유대인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으로 끌어 내쳤으나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습니다. 또 빌립보에서 무리 앞에서 옷을 벗기우고 매로 얻어 맞고 거반 죽게된 몸으로 깊은 옥에 갇혀 있게 되었을 때 밤중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할 대 큰 지진이 일어나 석방되는 기적을 체험하였고 가이사랴 총독앞에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어디에서나 믿음을 비켰고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죽는 순간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도합시다. 질병에 의한 모진 고통이 와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고 환난과 핍박이 목을 조여오고 고문을 당하는 때에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당하고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히 11:36-38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회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한해 동안 할 수 있는대로 후회하지 않도록 삽시다.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후회가 전혀 없이 살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우리가 결심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후회를 최소화 할 수 는 있습니다. 바울은 평생토록 선한 싸움을 잘 싸웠기에 후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싸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싸움 자신을 쳐서 굴복시키기 위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바울이 선한 싸움마다 다 승리했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서 싸웠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금년에 모든 상황에서 진실로 최선을 다하여 하루 하루를 삽시다. 바울은 자기가 달려야 할 길을 끝까지 잘 달렸기 때문에 후회하지 아니했습니다. 가서는 안 될 길을 가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후회하지 아니 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정절을 끝까지 지켜서 후회함이 없는 한해를 삽시다. 하나님을 모시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천국은 아멘 할렐루야 소리로 충만하고 지옥은 껄 껄 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려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롭게 살걸, 이웃을 사랑할 걸, 긍휼을 베풀걸, 예수님 잘 믿을 걸, 지옥은 후회하는 사람의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화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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