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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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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06·05·13
당신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만나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거나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가슴 뜨겁게 느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당신은 이 시간 하나님의 임재와 부어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맛보고 있습니까? 우리를 불러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은 우리와 매우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사랑과 헌신과 감사를 드릴 때 기쁘게 받아주시고 풍성한 복을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도는 마땅히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보다 더 복된 삶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게 된 것은 예수님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죄인들로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아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온갖 필요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나다나엘뿐만 아니라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안드레와 요한, 그리고 베드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예수님의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세례 요한이 다시 예수님을 소개했을 때 그의 두 제자였던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로 가서 그분의 영광을 보았고, 생명을 주시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안드레는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가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하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시몬이 안드레에게 이끌려 오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처음부터 잘 알고 계셨는데, 그의 장래에 대해서까지 온전히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초대교회의 반석과 같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세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빌립
다음날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만나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43절) 그런데 이 빌립은 앞에서 예수님을 좇은 안드레, 베드로와 같은 동네인 벳세다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리 벳세다 사람이라”(44절) 그들은 한 동네 사람들이었고, 지금 멀리 유대지방까지 함께 와 있었습니다. 아마도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람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였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간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으러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드레와 베드로는 예수님을 좇았는데 왜 빌립은 예수님을 좇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빌립은 매우 계산적이며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계산에 빠른 사람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고향 벳세다 들녘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때 확인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시려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요6:5하) 그때 빌립은 재빨리 계산해보고 즉시 대답했습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6:7)
빌립은 그날도 여러 가지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저 사람이 메시아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으며, 과연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좇아도 될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망설이며 주저하는 사람도 불러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 역시 빌립과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에는 자원해서 하나님 믿기로 작정하고 나온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 주님을 외면하고 도망치고 주저하며 망설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에 억지로 끌려 나온 성도들도 많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스스로 결단하고 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늘 실패하며 범죄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우리 스스로가 실망하며 환멸을 느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다나엘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좇게 된 빌립은 그가 잘 아는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45절)
빌립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단단히 준비하고 나다나엘을 설득하러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은 모세 오경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예언되어 있으며, 선지자들은 어떻게 예언했는지를 나름대로 정리해가지고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이 까다로운 친구를 성경지식으로 한 번 설득해보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빌립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빌립이 하는 말을 듣고는 틀린 부분을 금방 찾아냈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46절) “뭐, 나사렛 예수? 성경 어디에 메시아가 나사렛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냐? 말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나 해!” 성경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으로 나다나엘을 설득하려고 벼르고 갔던 빌립은 오히려 나다나엘에게 창피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다나엘은 빌립에게 이끌려 예수님께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빌립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보기 좋게 한방 먹였던 나다나엘이 왜 빌립을 따라서 예수님께로 오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나다나엘이 빌립에게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논쟁에서는 졌지만, 빌립의 눈빛과 표정과 태도는 너무나도 진지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이 전에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다나엘은 빌립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전도는 단순히 말로만 해서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예수 믿은 지 10년, 20년이 되는데도 자기 남편을 구원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가장 친한 친구나 직장에서 날마다 함께 지내는 동료 하나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제대로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말로만이 아니라 변화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며 능력있게 전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이끌려 오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절)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의 진정을 알아주셨습니다.
간사한 것이 없다는 말씀은 그가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죄를 전혀 안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내놓는다는 뜻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정직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를 그대로 내놓질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정직하고 진실하게 주님 앞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나를 보시고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오늘 성도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왕따를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기가 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아실뿐만 아니라 큰 축복과 은혜로 갚아주십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주여 진실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 원하네
주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
빌립에게 이끌려 예수님께로 나온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진정을 알아주시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48절)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가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하기 전부터 그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무화과나무는 그 지방의 어디에나 많이 있었고 잎이 무성하여 그늘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율법을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나다나엘 역시 암담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어서 오시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의 고민과 아픔과 주님을 향한 소망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모르는 그의 은밀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며 고백했습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절)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깊은 상처와 고민과 아픔과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우리를 주시하십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말씀을 붙들며, 당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내놓으십시오.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은혜를 풍성하게 힘입게 될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 특히 은밀한 마음 속 비밀을 다 아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이 나다나엘에게 주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50-51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보다 큰일’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야곱이 형의 낯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하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창28:12)
하나님의 사자들은 무엇 때문에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와 감사와 봉사와 헌신과 기도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과 축복과 응답을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 복되고 놀라운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51절을 다시 보십시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이제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주님께서는 오늘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아가 당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내놓으십시오. 상처와 아픔과 죄와 고민과 문제가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내놓으십시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받으시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곳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모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친히 임재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 시간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 당신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리고 이제 주님만 섬기며 살아가기로 새롭게 다짐하십시오.
개인적으로는 늘 무화과나무 아래로 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을 쉬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우리를 특별히 주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 비밀과 은밀한 것을 알아주십니다.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신뢰와 소망을 알아주십니다. 늘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맘껏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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