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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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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05·27
만일 당신이 시골에 있는 아버지 집에 가봤더니, 사람들이 아무나 들어와서 자기들 멋대로 사용하면서 쓰레기와 오물을 잔뜩 버려서 집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화가 치밀어서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집을 다시 깨끗이 치울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곳이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이며,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와 비슷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 성전에서는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성전에 소와 양들이 우글거리고 있었고, 비둘기를 새장에 거두어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상을 차리고 앉아서 영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마치 가축을 파는 시장처럼 더럽혀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셔서 소와 양들을 쫓아내시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며 사람들을 다 성전 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노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성전이 시장처럼 된 배경
본래 유대인 남자들은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초막절, 이렇게 세 차례 성전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특히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최대의 명절이었습니다. 이 유월절에는 팔레스틴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외국에 흩어져 살고 있던 교포들(디아스포라)까지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면 예루살렘에 이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북적댔습니다.
유대인 남자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세는 오직 성전에서 사용되는 화폐로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화폐나 헬라 화폐를 가져온 사람들은 성전에서 사용되는 화폐로 바꾸어서 성전세를 냈습니다. 성전에는 편의를 위해서 돈을 바꾸어주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점점 환전 수수료를 비싸게 받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성전세에 해당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으로 왔기 때문에 이 환전 사업은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또 명절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은 본래 흠 없는 짐승을 가져와서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짐승을 몰고 오는 일이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도중에 짐승이 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는 제물로 쓸 흠 없는 짐승을 파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생겼던 것이 갈수록 장사속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오직 성전에서 파는 짐승만 제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성전에서 파는 짐승은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팔렸습니다. 심지어는 16배나 비싸게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제물로 쓸 짐승을 파는 사람들이 얼마나 막대한 돈을 벌었겠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제사장들의 허가와 묵인아래 이루어졌습니다. 성전에서 가축을 팔거나 환전하는 사업에 프리미엄이 얼마나 붙었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돈 버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성전을 청결케 하심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보신 것은 바로 이러한 광경이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13-14절)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자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짐승들을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어 돈을 쏟으시고 이것들을 당장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15-16절)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는 일처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간혹 길거리에서 불법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속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금방 다시 돌아와서 장사를 합니다. 요즘은 노점상들도 노조를 만들고 민노총과 같은 대조직의 후원을 받아서 노골적으로 투쟁을 합니다.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투쟁합니다. 하물며 제사장들의 허가와 묵인 아래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던 이 사람들을 내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들을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보시자마자 이 사람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주님께서는 보신 즉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처럼 장사하는 자들을 내좇으시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제자들은 이렇게 분노하시며 단호하게 장사치들을 몰아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서 구약의 예언을 기억했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17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을 통하여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을 통하여 나타내신 첫 번째 일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하시면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의 권세로 이 일을 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거역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일을 통하여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고 당신이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3:1-3)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메시아가 오실 것인데, 그분의 사자가 먼저 와서 길을 예비할 것이며, 그 후에 바로 그 메시아가 오셔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시고 의로운 제물을 여호와께 드리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대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사자 세례 요한이 왔고, 이제 바로 그 하나님의 메시아께서 오셔서 성전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것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었으며, 당신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나타내신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을 통하여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표적을 보이라
유대인들은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분명한 증거를 보고서도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께 “네가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보니 스스로 선지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어디 그 증표를 한번 보여 봐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18절) 그들은 양심이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알면서도 자기주장과 욕심 때문에 말씀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자기 맘에 들고 자기에게 유리하면 아멘으로 받고, 불리하거나 불편하면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에게는 진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오히려 그 진리는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됩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온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까?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말씀은 내가 순종할 때라야 내 안에서, 내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새 성전
이렇게 마음이 강퍅하여 분명한 증거 앞에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성전은 절대로 파괴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성전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하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하여금 성전을 파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성전이 파괴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끝장나는 가장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매우 화려하고 웅장하며 견고했습니다. 그 성전은 헤롯이 46년 동안 건축했으며, 아직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웅장하고 견고한 성전을 헐고 어떻게 사흘 동안에 다시 세운다는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조롱하는 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20절)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1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육신이 성전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성전을 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새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진정한 성전청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직 그 주님만이 성전의 본질이시며 진정한 성전의 기초이십니다. 주님께서 계심으로 성전은 비로소 성전다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계심으로 성전은 구원을 선포하며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릴 수가 있게 됩니다.
성전은 주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우리가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우리 자신이 성전일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가 또 성전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새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전청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각자가 중심으로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하나님 안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성전이 되며, 성전된 우리가 거룩하고 정결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청결입니다. 오늘 당신은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감으로써 성전된 자신을 청결케 하고 있습니까?
진정한 성전청결은 또 교회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며, 그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서로 사랑하며 먼저 섬기는 종이 되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따라 영혼구원을 위해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까?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고 사명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며, 이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이야말로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구약의 예언을 상기했습니다. “제자들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17절)
오늘 우리는 주님처럼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있습니까? 당신은 주님의 몸된 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모하는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교회가 바로 되어야만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가꾸어가기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열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일주일에 단 한번 겨우 예배에 참석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사모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도 나오지 못하면서 어떻게 교회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이기를 힘쓸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 진리와 성령 안에서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 되는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 피 흘려 대속하신 형제를 그 누구든지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그는 주님께서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주님께서 피를 흘려 대속하신 형제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형제를 함부로 대하지 말며, 더 나아가서 진정으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예배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가 가장 열심을 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뜨거운 열정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나오십시오. 이곳에 나와 앉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나를 압도하도록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선포되는 말씀에 마음을 열고,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생명을 바쳐 순종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이렇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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