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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3: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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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06·24
요즘 성형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유명한 여자 연예들 중에서는 성형을 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이제는 남자들도 주저하지 않고 성형을 합니다. 옛날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타고난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든 보완해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형수술을 한다고 해도 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그것을 무효로 하고 다시 태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흉악한 죄인들만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니고데모처럼 존경받는 선생도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는 일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이 때 우리가 마음을 열고 믿기로 결단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분이 있다면 오늘 마음을 열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
니고데모는 여전히 거듭남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일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니고데모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듭남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구약성경을 잘 아는 선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즉시 인류를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인간이 타락한 직후인 창3:15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의 관심사는 인간이 새롭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관심과 교훈과 새롭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르치는 니고데모가 이 문제에 대해서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이 거듭남에 대해서는 니고데모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중에는 이미 거듭난 분들이 대부분일 줄 압니다. 그러나 아직 거듭나지 못한 형제가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교하고 있는 이 기회에 거듭남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마음을 여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이 거듭남의 축복,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땅의 일
거듭남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12절) 거듭나는 것이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이 땅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하늘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믿지 못하는데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땅의 일’은 무엇이고 ‘하늘의 일’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거듭나면 그 증거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하늘에서의 일이 관련되어 있고, 동시에 땅에서 분명하고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듭나는 것을 가리켜 땅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은 하늘에서 시작하여 땅에서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이 땅에서 그 증거가 확실히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니고데모는 성경을 많이 알고 있었으며, 백성들에게 평생 가르쳐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듭남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믿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그리고 그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거듭날 수 있음을 믿습니까? 우리 중에 아직 거듭나지 못한 형제도 얼마든지 거듭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거듭났다는 것보다 더 불가사의하고 놀라운 일은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거듭났다면, 그 누가 거듭날 수 없겠습니까? 누군가에게 실망하여 이제는 기도하는 일조차 중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우리는 모두 별 차이가 없는 죄인들에 불과합니다. 다시 그 사람을 위하여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힘써 기도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완전히 거듭나게 하시고 변화시켜주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거듭나고 변화되는 일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땅의 일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늘의 일
그러면 하늘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하신 일들입니다. 태초에 삼위 하나님 안에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의논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평화의 의논이라고 부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슥6:12-13) 스가랴가 예언한 순은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삼위 하나님 안에 있었던 평화의 의논에 대해서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우리를 아셨고 예정하셨으며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하늘의 일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만 아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3절) 하늘의 일, 즉 삼위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일의 핵심 내용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자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시기로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4절에서 바로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 말씀 역시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
하늘에서 삼위 하나님 안에 있었던 회의에서 내려진 결론은 바로 인자를 드는 것이었습니다. 인자를 든다는 말은 인자가 저주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사람이 죽어 나무에 매달리는 것은 저주 받은 것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저주를 받으실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성자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새로운 성품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14절 말씀의 배경은 민수기 21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이적으로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향하여 전진해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향하여 광야를 지나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며 불순종했습니다. 민21장에는 그중의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길이 험하고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다고 하면서 원망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민21:5)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고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나를 ‘이 박한 식물’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데리고 나와 죽이려 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얼마나 악하고 어이없는 말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이 뱀은 강한 독을 가진 뱀인데, 물리면 심한 열이 나면서 죽기 때문에 불뱀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뱀에 물려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뱀들이 떠나가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21:8-9)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라고 말했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 중에서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식한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구원은 인간의 힘과 노력과 지식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교만과 자아를 꺾지 않는 한 구원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구원 얻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겸손하게 그 길을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길이 무엇입니까?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길은 바로 14-15절에 나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에서 있었던 그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구원의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지킨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람은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세례문답을 할 때 반드시 확인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직은 천국에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면 아직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최소한 술이나 담배도 다 끊고,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오며, 헌금도 제대로 드려야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그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구원에 대해서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다 지키거나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행위와 노력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구원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자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진노와 저주를 한 몸에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바로 저주를 받으신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인류의 죄를 해결하신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사람이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지만, 이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구원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구원의 길은 이제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14-15절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광야에서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누구나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죽으신 성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왜 믿지 않는가?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놋뱀을 쳐다보지 않았을까요? 마음이 강퍅하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면서도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습니다. 약을 쓰고 해독을 해도 살까 말까 하는데, 그까짓 것 쳐다본다고 살 수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단순하게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사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이제 누구나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주셨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강퍅하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또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 번 해보겠는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니 싫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와 무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죄인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죄와 무능을 인정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으십시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겸손히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오늘 당신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은총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거듭난 자의 분명한 증거를 나타내야 합니다. 오늘 교회가 이렇게 무기력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무능한 존재가 된 이유는 거듭난 증거, 즉 변화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의 삶을 버리고 변화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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