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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3: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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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21)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 (요 3:9-15)
요새 학력을 대단히 중시합니다. 학력도 어느 정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학력을 글자 그대로 ‘배워서 생긴 지적인 능력’이라고 하면 학력 유무는 명문대를 졸업한 것만으로는 판명되지 않습니다. 명문대를 나왔지만 실제로는 지적인 능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고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지적인 능력은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대학 타이틀과 실제 학력은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자 당시 최고의 학력을 가진 니고데모는 “어떻게 사람이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습니까?”고 물었습니다(4절). 그때 예수님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원리를 말씀하자 니고데모는 다시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무식해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는 호칭을 들을 정도로 유식한 사람이었습니다(10절). 이 장면은 지식보다 믿음이 더 중요함을 잘 말해줍니다.
남이 발견하고 축적한 지식을 믿지 않으면 새로운 지식을 더할 수 없기에 결국 배움과 지식도 그 밑바탕에는 믿음이 깔려있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삶에서도 믿음이 그 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이나 사먹지 못하고 더 나아가 한 시도 살 수 없습니다. 그토록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처럼 중요한 믿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믿음의 최고봉’은 바로 ‘영생의 믿음’입니다. 영생의 믿음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자임을 믿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13-15절).
<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 >
하나님은 광야에서 불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놋 뱀을 바라보면 산다고 하시며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말씀에 아멘 하고 그대로 순종한 백성들은 살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을 영접할 때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아도 그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을 때 영생을 얻습니다. 결국 믿음은 순종입니다. 참된 믿음은 누가 확실한 증명을 해줄 때 주님께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몰라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이유를 따지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지만 믿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과 축복을 굳게 믿는 것이지 ‘맹목적인 의뢰’는 아닙니다. 바로 거기에서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이 차이가 납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이지만 가짜 믿음은 ‘자기 요구가 관철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것도 마치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줍니다.” 이것이 가짜 믿음의 산물입니다. 이런 가짜 믿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황된 마음을 가지고 좇아갑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시는 분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시는 분입니다.
참된 믿음은 성경과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 없이 무작정 믿는 것은 허황된 가짜 믿음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요새 뉴 에이지 사상이 바로 그 믿음을 전파합니다. 뉴 에이지 사상도 믿음을 강조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의 뜻도 없으며, 하나님의 약속도 없습니다. 그냥 믿으면 이뤄진다고 합니다. 그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약속에는 관심도 없이 무조건 “믿으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충고입니다. 그런 믿음은 더욱 큰 고난과 시험과 문제를 야기합니다. 믿음이란 낙관도 아니고, 최선을 희망하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인 사고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 11:1-2). ‘실상’의 원어적인 의미는 ‘견고한 터전’입니다. 즉 믿음은 ‘두부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반석 위를 걷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과감히 영적 모험의 길로 나서는 것이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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