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요3:16 |
---|---|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22)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요 3:16)
<기독교는 주는 종교입니다 >
일전에 다음과 같은 블랙유머가 담긴 만화가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프러포즈하는데 여자가 거절하며 말합니다. “우리는 종교가 달라서 안돼요. 저는 돈을 믿는데 당신은 빈털터리잖아요.” 이 여자의 모습은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무서운 질병은 암이나 에이즈가 아니라 물질주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마 6:19).” 이 말씀은 돈이 없이 가난하게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이 영성의 지표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거룩한 인물들 중에 큰 부자들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딤전 6:17). 누리는 삶은 죄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빌 4:12).
이런 글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고, 책은 살 수 있지만 지혜는 살 수 없고, 음식은 살 수 있지만 구미는 살 수 없고,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고,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고, 화려함은 살 수 있지만 성숙함은 살 수 없고, 쾌락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고, 종교는 살 수 있지만 구원은 살 수 없고, 외국은 갈 수 있지만 천국은 갈 수 없습니다.”
돈을 우상으로 삼지 말고 주는 삶을 실천하십시오. 기독교는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을 요구하는 차원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받는 종교라기보다는 주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간증도 “기적적으로 받았다!”는 간증보다 “기쁘게 주었다!”는 간증이 더 많아야 합니다. ‘주는 삶’은 ‘가장 주를 닮은 삶’입니다.
<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큰 사랑을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으니까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처럼 사랑했다.”는 말씀은 “독생자를 주셨으니”란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사실상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저의 매형이 진돗개를 좋아했습니다. 힘이 있고, 충성스럽고, 게다가 똑똑하니까 아주 반했습니다. 그 진돗개 이름이 '백구'였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매형에게 흰색 푸들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그 푸들 이름이 ‘린다’였습니다. 개를 좋아했던 매형은 실내에서 키우는 린다도 마당에서 키우는 백구만큼 사랑하며 키웠습니다.
인천에서 목회할 때 매형 집에 자주 들렸기에 린다의 성장과정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많이 예뻐해 주었지만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점차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자기를 끔찍하게 위해주는 매형에게 딱 달라붙어 안하무인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개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인데 저렇게 주인 믿고 까불면 언젠가는 다치지!”
어느 날, 매형의 딸아이가 아프게 되었습니다.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며 딸을 위해서 시간을 더 내야 했고 가정환경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개털도 날라 다니지 말아야 했습니다. 결국 끔찍하게 예뻐해 주던 린다가 곧 그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린다가 큰 착각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를 예뻐해 주어도 사랑하는 자녀와 비교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개를 위해 사랑하는 딸을 희생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심으로 그런 상상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나눔을 도전합니다. 나누면서 살면 가난하게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때 신기하게 나눌 수 있는 능력을 더 주십니다. 나눔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바로 ‘나눔’입니다. 사실상 나눔의 기쁨만큼 큰 기쁨은 없습니다. 그 기쁨을 위해 자신의 안전을 과감히 거십시오. 나눔을 위해 자신의 안전을 내걸 때 신기하게도 더 채워주시는 하나님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