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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4: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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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07·23 참사랑교회 주일 설교
지난 주에 서명하신 ‘참좋은가족서약서’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지난 주에 들은 말씀에 서명을 하셨습니까? 결단하고 서명한 말씀을 지키고 있습니까? 말씀을 주실 때 힘을 다해, 생명을 다해 지켜 순종하겠다는 결심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격과 생활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도 신앙과 인격이 변화되지 못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들은 말씀에 서명을 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지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니고데모와 수가성 여인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앞장에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습니다. 거물급 인사였던 것입니다.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예수님 찾아간 사실이 알려지면 자기에게 큰 손해와 어려움이 있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크게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조금도 특별대우를 하신 것이 없었고, 오히려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선생이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던 니고데모를 대하신 예수님의 태도였습니다. 이 사람은 그날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을 장사지냈다는 사실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유대인도 아니고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제6시쯤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제6시는 지금의 12시에 해당됩니다. 사막지대인 그 지방에서는 그 시간대가 가장 더워서 활동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낮에는 집에서 쉬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왔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의 우물이라고 불리는 이 우물은 수가성에서 2km 이상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한낮에 왕복 4km 이상을 걷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도 물을 길어서 돌아갈 때는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운반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고역이었겠습니까?
그래서 보통 여인들은 아침이나 저녁 서늘한 시간에 물을 길렀습니다. 30-4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우물로 물을 길으러 다녔고, 마을의 모든 소식은 우물가에서 전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일들이 다 그곳에서 퍼졌던 것입니다. 특히 그런 곳에서는 좋은 일보다 좋지 못한 일들이 주로 많이 거론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마리아 여인은 그 시간에 물을 길으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시집을 다섯 번이나 갔었고, 지금도 어떤 남자와 비정상적인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 여자가 우물가에 나타났다면 동네 여인네들이 얼마나 수군거렸겠습니까? 그래서 이 여자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하여 뜨거운 한낮에 물을 길으러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인을 특별히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그녀를 찾아가셨고, 그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습니다. 그 여인은 마침내 메시아를 만났고, 동네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중에서 누가 더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까? 주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쟁과 갈등이 있을 때
3장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각각 세례를 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바리새인은 세례 요한의 제자에게 와서 결례에 대해 논쟁을 하던 중, ‘예수라는 사람에게 세례를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당신네 선생에게로 가는 사람들보다 더 많다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는 이 말을 듣고 시기가 나서 자기 선생을 충동질했습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이 어떻게 했습니까?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삼고 세례 주는 사람들이 세례 요한보다 많다는 소문이 바리새인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1절)
바리새인들이 이 사실을 들은 줄을 주님께서 아셨다는 말은, 주님께서 그들의 생각과 음모를 아셨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경계하더니, 점점 반대하고, 더 나아가서 대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사탄은 경쟁이나 갈등을 이용하여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공격하는 일이 많습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한다 해도,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서로 비판하며 경쟁하고 갈등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예수님께서는 본의 아니게 경쟁과 갈등이 유발되고, 그로 인하여 사탄이 틈타려는 것을 아시고는 조용히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부터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갈등과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사탄은 그것을 이용하여 교회를 방해하고 성도들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주님처럼 조용히 물러나야 합니다. 나의 입장과 주장과 기분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조용히 물러나야 합니다. 교회의 화목과 평안이 가장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마리아로 가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유대지방을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셨습니다.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3-4절) 당시 팔레스틴은 북쪽이 갈릴리였고 남쪽이 유대였으며, 그 가운데 사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남쪽 유다 지방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는 길은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었고, 또 하나는 요단강을 건너 빙 둘러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운데를 질러서 곧장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세 번째 길은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길이었습니다. 물론 세 번째 길이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사이가 매우 나빴기 때문에 세 번째 길로는 잘 다니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반목은 뿌리 깊은 것으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전 727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빈천한 사람들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민족들을 그곳에 이주시켰습니다. 그 결과 남아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민족들과 혼혈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70년 후에 돌아왔는데, 와서 보니 사마리아 지방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혼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이라 부르는데, 유대인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상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인들 역시 유대인들을 증오하고 상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유대와 갈릴리를 오갈 때 사마리아를 지나지 않고 우회해서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지나서 가셨습니다. 그 길이 편하고 가깝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러한 예수님의 의지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의도적인 만남
예수님께서 꼭 사마리아로 통행하고자 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거기서 한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을 맞추어 뜨거운 광야를 지나 걸어오셨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걸어서 오시느라고 매우 지치고 피곤하셔서 수가성 근처의 우물곁에 앉으셨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리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5-6절)
그 때 마침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7절) 이렇게 해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람들의 낮을 피하여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 여자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여자가 그 시간에 그 장소에 나올 줄 아시고 시간을 맞춰서 그곳에 도착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자와 단둘이서 만나시기 위해서 일부러 제자들을 모두 동네로 보내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리로 들어갔음이러라”(8절) 생각해보십시오. 점심식사를 준비하러 가는데 무엇 때문에 12명의 제자가 다 갈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2-3명만 가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12제자가 모두 동네로 들어간 것은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만나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녀를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여자를 통하여 수가성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오셨고, 그 여자가 그 우물에 나오는 시간을 맞추어 그곳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모두 동네로 보내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사람들은 다 외면하고 손가락질하는 여자를 주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귀하게 사용해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만나주시고 구원하실 때도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우연히 어떻게 하다 보니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세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나를 부르시고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 사랑을 힘입어서 내가 이렇게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와 사랑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접촉점
이렇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대화가 통할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요 거룩하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죄인이었으며,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불신하고 기피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여자에게는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하여 마음을 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보시자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7절)
예수님은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피곤하시고 목이 마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지금 물을 길러 왔습니다. 둘 사이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접촉점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의 창조주시며 하나님이신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이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말문을 여셨고, 그녀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며,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전도할 때 반드시 배워야 할 중요한 기술입니다. 처음부터 예수 믿으라고 말하면 들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우선 그 사람과 가장 잘 통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열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믿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내가 받은 구원의 축복을 간증함으로써 주님을 영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그분께서 친히 우리처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들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문제와 연약함을 가지고 주님께로 가서 도우심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부분들은 오히려 주님을 만나게 하는 접촉점이 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은 오히려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들이 직면했던 문제들과 어려움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감으로써 오히려 더 크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이 주님 만나는 접촉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기 바랍니다.
정말 필요한 것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심으로 대화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과 지금 그녀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선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였습니다. 이것을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 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은 결국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내용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에게는 생수, 즉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수를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다. 이 생수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분을 믿으면 그분께서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지금까지 헛된 것을 찾아 헤맸습니다. 세상의 쾌락과 물질을 추구하면 만족을 얻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그 영혼의 갈함을 조금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남자들을 상대해왔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허무와 사람들의 비난과 상처와 굳어진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친히 찾아오셔서 영원한 생수를 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찾아 그토록 애쓰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얻은 것으로 진정한 만족을 맛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진정한 평안을 찾은 적이 있습니까?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수인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마음을 열고 겸손하고 간절하게 구하십시오. 불쌍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당신을 만나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가운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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