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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5:4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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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10·21 참사랑교회 주일 설교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제직회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집사님이 일어나서 이럴 수가 있느냐면서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 승합차를 구입했는데, 그 집사님이 애를 많이 써서 자동차를 싸게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한테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도 인사 한마디 하지 않았다면 서운할 만도 했겠지요. 그러나 당사자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교회의 제직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큰 함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칭찬이 신앙의 동기가 되고, 인정받는 것이 봉사의 동기가 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가 될 수 없고, 자신에게도 전혀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성도는 칭찬을 받지 못하거나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교회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태도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신앙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아도 오직 말씀만 붙잡고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하면 믿음도 약해지고 열심도 식어지지는 않습니까?
서로 영광을 취하는 사람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주위에 많은 교회들이 있어서 자기 맘에 드는 교회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한 교회를 정해서 다니다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교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의 눈치와 구미에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많은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관심을 받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끈끈한 연줄이 없으면 교회를 쉽게 떠나버립니다. 교회가 말씀을 충실하게 선포하지 않거나 말씀에 어긋나는 일들이 있어서 교회를 떠난다면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말씀만 굳게 붙잡고 신앙 생활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에 좌우되는 성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요즘 들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고 서로 영광을 취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44절) 유대인들은 서로를 칭찬하며 즐겼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했습니다. 기도도, 금식도, 구제도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 위해서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태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5)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16)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서 그 모든 일을 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태도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40절)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인정해주시고 칭찬해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더라면 유대인들에게 반대와 고난을 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위선과 불의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며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않으신 주님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41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실 분이 아니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모든 인류는 오직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서로를 높이며 칭찬하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런 잘못된 일에 동의하지 않으셨고, 그것을 비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에게 칭찬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 합니다. 물론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칭찬과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입니까? 죄인들입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죄와 온갖 부끄러운 것들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과연 나에게 칭찬과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바라겠습니까? 칭찬을 받지 못해서 시험에 들거나 섭섭해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지난 14일 노석현 집사님 장녀 경윤 양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정말 은혜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대개 이런 행사가 끝나면 신부가 어떻고 신랑이 어땠으며, 그 부모들이 어떻다는 등 뒷말이 무성합니다. 그런데 그 결혼식에 참석했던 우리 성도들은 목사가 주례를 잘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어찌나 칭찬을 해대던지 무안하고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우리 성도들이야 자기 목사가 가장 훌륭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광을 목사에게 돌려서야 되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진심으로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 가운데 사람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신랑과 신부를 세상에 보내시고 길러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맺어주시고 많은 사람들을 보내셔서 축하하게 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물론 사람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목회하면서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그것 때문에 목사를 대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변화되고 성숙한 성도가 되려하지 않고 칭찬과 영광부터 받으려고 합니까? 왜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를 원하지 않고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그토록 갈망합니까?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10:18)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
사람에게 칭찬과 영광 받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42절) 진정한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체험하고 확인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사람의 칭찬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살 수가 없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많은 성도들이 사람의 관심과 칭찬을 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좋아하고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내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듣고 배운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봉사하며 형제를 섬긴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43절)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오셨으며,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5:19)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기 때문에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칭찬과 인정받기만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미워하며 대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셨듯이 교회 역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세상 풍조와 사람들의 요구에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에 보내심을 받은 종입니다. 목사는 자기 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무엇보다 말씀을 철저히 바르게 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의 죄악된 본성이 드러나고 깊이 숨겨진 죄가 드러납니다. 그것을 드러내어 수술하고 도려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그런데 이런 일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이것이 싫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알아주지 않고 위로해주지 않고 정죄하고 무시한다고 화를 냅니다. 사랑이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 전에는 진정한 기쁨과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와 목사가 이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면 모두가 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말기의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갖다 주면 복을 빌어주었고 평강을 예언했습니다.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이스라엘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말씀 앞에 설 때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고 적나라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용서와 치유와 회복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됩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탄은 교회를 변질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선포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교회 안에는 벌써 이러한 조짐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사람의 인정과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룩한 직분이 사람을 붙잡아두고 비위를 맞추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발표하지 않으면 헌금도 제대로 드리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오늘 교회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라.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44절) 우리가 서로 영광을 취하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끼리 칭찬을 주고받으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41절)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으로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시고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께서는 끝까지 참으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지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성과 무능함을 철저히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의 은총을 간구하십시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십시오. 이렇게 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아름답고 성숙된 신앙과 인격을 허락해주십니다. 요셉과 다윗처럼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굳게 붙잡고 끝까지 걸어가십시오. 다른 것을 구하지 마십시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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