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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6:3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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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11·11 참사랑교회 주일 설교
예수님께서 밧세다 들녘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은 주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시고 우리가 구하기 전에 풍성하게 채워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적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신 것은 또한 광야의 성찬식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었던 기적이 비교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신 것을 보여줍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이 보여준 것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 그처럼 엄청난 이적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이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적을 보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이심을 얼마든지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예수님께로 와서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30절) 그들은 오병이어와 같은 놀라운 이적을 보고도 아직 믿지 못했습니다. 뭔가 더 큰 이적을 보여주면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더 큰 이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하늘로부터 만나가 내렸던 것과 같은 이적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31절)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마치 모세가 만나를 준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일 예수님께서 모세보다 큰 자라면 모세가 하늘로서 만나를 내린 것보다 더 큰 표적을 행해야 한다고 말 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게 한 것과 같은 이적을 또 행하신다면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주시나니”(32절)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만나가 내릴 것과 그것을 모으는 방법에 대해서 백성들에게 말했을 뿐이었고, 만나를 내리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예수님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런 이적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육신의 떡
광야에서 내렸던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데에는 유대인들도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떡은 생명을 주는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3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육신의 떡을 구했습니다.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와 같은 이적을 늘 행하셔서 자기들에게 먹을 것을 항상 공급해주실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는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성 여자의 요구와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말씀하시자, 사마리아 여자는 그런 물이 있으면 자기에게 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4:15) 그들은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두웠고 육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떡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 육신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더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구원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버려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그것은 곧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람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6-28) 주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만나는 단순한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것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 역시 주님은 생명의 떡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할 때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로 인하여 내가 구원받게 된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오. 더 나아가서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함으로써 주님께서 내 안에서 온전히 살아 나를 주관하시며 함께 하시는 축복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며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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