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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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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본문/ 마6:14-15, 18:21-35
1. 들어가는 이야기
폴 틸리히는 <존재에의 용기, Courage to Be>라는 책에서 사람은 존재론적으로 <불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불안의 존재론적 근거로 운명과 죽음으로 인한 불안, 죄와 죄책감으로 인한 불안, 허무와 무의미로 인한 불안을 들었습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제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도 이 세 가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불안이 극복되지 않는 한 사람은 자유 할 수 없고, 행복 할 수 없고, 복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 존재론적 불안에서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2. 기독교는 이 존재론적 불안의 문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는가?
성경은 이 문제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영생을 얻었다, 거듭났다, 하나님과 화해되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 하는 등등의 이 모든 표현은 바로 이 존재론적 불안의 문제가 해결되어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참 자유를 얻고, 참 행복하고, 참 복을 누리면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을 힘입어 이 불안의 문제를 해결 받았기에 하나님을 일컬어 나의 반석, 피난처, 방패, 구원자, 돕는 자, 목자시라고 하였습니다.
3. 용서의 존재론적 의미
본문에 나타나는 <용서>라는 말도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지닌 이 존재론적 불안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용서란 <인정받음>을 의미합니다. 탕자의 비유가 바로 이것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아 온 탕자에게 반지를 끼운 것은 그 아들이 문자 그대로 <탕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죄를 용서하고 <아들>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불만으로 가득 찬 큰아들에게 내 것이 다 네 것 아니냐? 고 한 것은 의롭게 보이는 탕자 큰아들의 죄도 용서하고 <아들>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더러운 탕자나 의로운 탕자나 다 못된 놈들이지만 <아들>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4. 하나님의 용서에 나타나 있는 이중적 의미
첫째. 무엇보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받았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일입니다. 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욥의 말처럼 내옷도 나를 더럽다고 할만큼 더럽고, 비열하고, 음란하고, 방탕한 사람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입니다. 용서란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님의 감화로 나를 새롭게 하시어 나를 더럽다 아니하시고 나를 아들로 인정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용서받음이란 곧 존재론적으로 구원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일만 달란트 빚진 내가 용서받았듯이 너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은 사람인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본문에서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지 않은 것은 너도 나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받은 사람이란 것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용서받았다는 것은 운명과 죽음, 죄와 죄책감, 허무와 무의미로 존재론적 불안 속에 허덕이는 너와 내가 살아 계시고, 절대 지존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깊은 영적 깨달음이며, 절대 믿음이며, 절대 느낌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너도 나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5. 그러면 용서받은 결과는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첫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이 깨달음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잘 살고 못 살고가 아니고, 있고 없고가 아니고, 잘났다 못 났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 아, 그런 존재론적 기쁨으로 나타납니다(롬5:11). 순수 존재 그 자체의 환희, 놀라움, 황홀함이 어우러진 그런 기쁨 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느끼고, 체험하고, 감동과 감격이 넘치는 진정한 자유로 나타납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물이 흘러나는 그런 풍성함, 넉넉함, 거칠 것 없는 그런 자유 말입니다!
셋째. 견고한 존재론적 안정감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워 않는 그런 담대함과 안정감 말입니다!
6. 마치는 이야기
이 놀라운 용서의 사건을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5:1> 라고 힘차게 증거 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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