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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판매가 : 11,000원 → 9,900원 (10.0%, 1,100↓) 김남준 목사의 신앙과 은혜 경험 시리즈 제9탄참된 신앙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필독서참된 삶의 뿌리는 회심입니다우리에게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우리가 악할지라도 희망은 있습니다.왜냐하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돌아갈 기회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거듭나고 회심하게 될 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신세계를 경험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온 삶이 깨어져 나가고 형언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로 변화됨을 느낀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과 경건의 비밀에 대한 신비한 경험, 죄를 두려워하고 …[더보기▶] |
김남준 목사님의 책 <돌이킴>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밑줄 그은 다음 그것이 내 안에 자리 잡도록 일일히 타자하였습니다. 위의 책 표지를 클릭하면 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최용우
1. 하나님을 향한 돌이킴
신앙의 세계는 참 아름답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통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아름다운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향한 돌이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제껏 자신을 주인 삼고 살아온 날들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회개에는 구원하실 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절실한 신앙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믿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드러난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한 믿음, 이것으로써 아름다운 신앙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 회심이라 부릅니다.
2.신앙생활의 두 가지 방향
신자의 신앙생활은 결국 두 가지 방향으로 집약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던 악한 날들로부터의 돌이킴, 그리고 돌이킨 그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한 길을 가는 꾸준한 성화의 생활이 그것입니다.
오늘날 조국교회에서는 이러한 신앙의 핵심적인 교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신자로 취급당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거듭나고 돌이키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교회의 개혁을 말함에 있어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혼들의 변화, 돌이킴을 위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온 교회와 함께...
3. 병아리의 추억
초등학교 때 집 가까운 곳에, 많은 계란을 따뜻한 방에 두고 관리하면서 병아리로 태어나게 하는 작은 부화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그 집에 들러 병아리가 깨어나는 광경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방안에 많은 계란들이 있었고 그 중에 어떤 계란은 소리가 났습니다. "톡톡톡톡톡."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노른자에서 이미 다 만들어진 주둥이로 껍질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잠시 후 껍질에 금이 가고 흰자에 젖은 노란 솜털을 입은 작고 귀여운 병아리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몇 마리가 그렇게 깨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껍질을 깨고 나오자마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한참동안을 말입니다.
신자가 회심하고 거듭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그가 거듭나고 회심하기 전에도 사람이었고 그 후에도 역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거듭나기 전에 그가 알고 있던 세계는 거듭나고 회심함으로써 알 수 있는 세계에 비하면 아주 좁고 작은 계란 속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모두인 것처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거듭나고 회심하게 되었을 때 알 수 있는 은혜의 세계는 이전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매우 새롭고 특별한 세계입니다.
4. 거듭남과 회심의 비밀
하나님께 대한 솟아나는 사랑,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 하나님께 대한 떨리는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경건의 비밀에 대한 신비한 경험,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인간의 정동(情動),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거듭남과 회심을 통하여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듭남과 회심 안에 신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접붙여지는 비결과 공동체적인 삶, 유기체적인 생명, 통치, 그리고 지체로 살아가는 아름다움 연합 등의 비밀이 있습니다.
5. 조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성찬에 참여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종교개혁자들이 통렬히 반대하였던 가톨릭 교회의 견해입니다.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규정하는가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교회의 정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에 대한 지식만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기독교에 대하여 종교적인 감정만을 느끼는 사람도 아닙니다. 또한 단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도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그리스도인에 대한 성경의 규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은 사람이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 속에서 그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곧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에 지체로서 접붙여져 하나님의 영적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6.오늘날 교회가 범하는 커다란 잘못은
구원에 있어서 회심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교인들은 더욱, 구원의 중심 교리인 회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에 접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은 등록카드를 작성함으로써 가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에 접붙여지는 것은 거듭남과 회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7. 회심의 정의
구원에 이르는 회심(회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심은 거듭난 영혼이 인간의 의식 속에 활동하는 첫 번째 움직임으로서,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 회심하기 위해서 자기의 죄를 자각할 수 있도록 복음 진리를 제시받아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회심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므로 도덕적인 설득의 성격을 띱니다. 이것이 인격적인 설득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에 관한 교리, 그리스도의 대속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등의 복음 교리들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시되지 않았는데도 어떤 감정의 변화나 감동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회심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죄인이 복음의 내용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회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8. 회심과 거듭남의 구별
회심은 거듭남과 구별됩니다. 회심의 근거가 영혼의 거듭남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난 영혼이기 때문에 회심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거듭남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독립적인 사역입니다. 이러한 영혼의 거듭남은 영혼 자체가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있는 상태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 홀로 그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혼의 거듭남은 '중생'(重生)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회심은 거듭남과는 달리 인간의 의식 세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주도적인 작용에 반응하는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에 역사하사 회개와 믿음을 불러일으키시는데, 인간의 의지 없이 또 인간의 의지를 거슬러 일하시지 않고 인간의 의지 안에서, 의지와 함께 그 일을 하십니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회개하고자 하는 자에게 회개하도록, 믿고자 하는 자에게 믿도록 역사하십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심 없이는 거듭남도 없습니다.
9.거듭남과 회심
거듭남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회심은 의식 세계 안에서 경험됩니다. 그런 점에서 회심은 거듭난 영혼의 최초의 움직임입니다. 중생을 통하여 살아난 영적 생명으로 인하여 죄인의 전 본성은 새롭게 되며, 이로써 중생한 신자의 마음은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회심을 통하여 신자는 두 가지 변화를 의식세계 안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의 변화로서 영혼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그리하여 회심한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을 지각하게 되는데 그 아름다움을 자주, 많이 볼수록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0. 두 가지 의미의 회심
첫째로 좁은 의미의 회심은 구원에 이르는 회심으로서, 거듭남이나 죄인을 의롭다고 일컫는 '칭의'(칭의)와 같이 일회적입니다. 이것을 '고유한 의미의 회심'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신자의 일생에서 단 한 번 일어나며 결코 반복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원이 일회적인 것처럼 이런 의미의 회심도 일회적입니다.
둘째로 넓은 의미의 회심은 최초의 회심 경험의 반복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구원에 이르는 회심 이후에 경험됩니다. 이것 역시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지며 성화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의 회심 역시 정도와 크기, 방향과 양상 등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효과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최초의 회심과 동일합니다. 침체된 영혼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11.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교회에 출석할 뿐이지 엄밀히 말해서 사실상 불신자들입니다.
자신이 회심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오래된 교회생활 때문에 기독교문화에 익숙해져있을지도 모릅니다. 예배에 참석할 수도 있고 찬양을 할 수도 있고 또 기독교적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성경의 계시와 자연,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알아가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12. 회심치 않은 신자들의 특징
1.가치판단이 자기 중심적입니다.
2.신령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3.하나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4.의지가 하나님께 굴복치 않습니다.
5.삶에 있어서 무신론적입니다.
13. 회심치 않은 자들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이유
1.하나님께서 자기가 사랑하는 바를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2.그들의 정체가 자기 자신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4.회심치 못한 영혼을 품는 교회
회심하지 못한 영혼들에 대한 염려 없이 교회가 함께 먹고 마시고 사교적인 즐거움에 빠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더욱이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선행으로 소문나는 것을 교회의 자랑처럼 여기는 것은 복음으로부터 멀어진 판단입니다.
교회는 단지 사회적인 미담을 만들어내기 위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모든 사회적 기관들과 구별되는 점은 바로 경고의 음성을 지닌 두려운 진리의 공동체라고 하는 점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심판에 관한 진실을 교회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것은 바로 교회 자신이 복음의 가치를 충분히 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5.교회생활이 회심을 대신하지 못함
여러분이 아무리 복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교회에서 이런저런 봉사를 하고 기독교적인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 주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그 모든 겉모습은 모두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한 사람이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은 정직한 하나님의 복음, 그리고 회심치 못한 자들을 향해서 발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진실로 뉘우치고 회개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만 정말 복되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출석하는 생활이 회심할 필요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회심하지 않은 채 지속된 오랜 교회생활은 그에게 회심을 향한 초청을 거절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회심의 기회가 많았다면, 그럴수록 그가 회심하지 않은 책임은 더욱 클 것이며 심판도 무거울 것입니다.
16.가장 중요한 질문-구원받았습니까?
우리 인생 전체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고 죽는 것은 두 번째 문제입니다. 그리고 잠시 머무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번영을 누리는가는 더더욱 나중 문제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는 오래 다녔고 복음에 관해서 오래도록 들었지만, 자신이 죄인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이 바로 자신의 죄 때문이었다고 고백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많은 소유를 누리며 인정을 받고 장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 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 출석한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변명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만약에 자신의 영혼의 운명에 대하여 그렇게 정직한 복음을 들었더라면 회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경고의 나팔을 불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교회에서 이 복음을 듣고도 회개치 않은 여러분은 무엇으로 변명하시렵니까?
17.회심 없이 성장 없음
여러분의 영혼을 잘 살펴보십시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도무지 영적 성장이라고는 없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영혼의 침체를 겪기 때문에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적이 없기 때문에 자라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상상임신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너무나 갖고 싶은 열망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은 마치 실제로 자신이 임신한 것 같은 증상을 경험하게 하지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이 그런 교인은 아닙니까?
실제로 거듭나지 않았는데, 회심과 구원의 은혜에 관해서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 자신이 회심한 신자인 것처럼 느끼는 종교적 증후군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다수의 떠밀려온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믿고 회개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회심을 위한 경고의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모든 형식적인 교회생활의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이것이 참된 신앙의 출발입니다.
18.구원의 확신 속에서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그가 지속적으로 악을 행하며 불신자처럼 살아간다면, 영벌에 처해지는 파멸은 없겠지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어떠한 위로도 없이 마음과 삶에 끊임없는 혼란과 파멸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격리감과 고통을 동반할 것이며 영생의 위로를 누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 어찌 현실적인 멸망의 상태라고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구원을 확신하는 신자는 그 확신 때문에 죄에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거룩한 생활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구원의 확실성 때문에 죄에 미끄러지는 것을 합리화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것입니다.
19.구원 기준의 객관성
우리의 구원 여부는 스스로의 확신에 달린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하나님의 판단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확신한다 할지라도 실제로 거듭나고 회심한 사람이 아니면 구원받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신자의 믿음은 자기 안에 계신 인격적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 믿음을 바탕으로 솟아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주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그런 마음이 삶 전체를 지배하는 경향성이 되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20. 하나님의 징계
구원의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자들에게는 끊임없는 징계의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거듭났다 할지라도 오랫동안 죄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그러한 악한 삶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은혜의 특권들을 다시 누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는 지속적으로 영혼의 어둠 속에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 수 없는 무지, 죄악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진 삶, 하나님의 말씀의 빛도 없이 돌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생활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징벌 아래 있는 삶입니다.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고치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21.전 인격적인 돌이킴
첫째로, 이 돌이킴은 지식만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잘못으로 처하게 된 고통스러운 상태에 대한 서러움이나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이 돌이킴은 감정만도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잘못으로 처하게 된 고통스러운 상태에 대한 서러움이나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로, 이 돌이킴은 의지만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다다르게 된 잘못된 상태로부터 자기를 개선해 보려는 의지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와 그로 말미암아 다다르게 된 악한 처지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후회의 슬픔을 가지고 의지를 돌이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돌이킴'은 인간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모두 포함된 전인격적인 돌이킴이며, 전 삶에 걸친 방향전환을 의미합니다.
22.돌이키지 않는 이유
불순종에 있는 죄인들이 거기로부터 돌이키지 않는 이유는 지금 누리고 있는 죄의 낙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통과 연단 속에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 순종의 길로 부르사 당신과의 교제 속에서 살게 하시기 위하여 때로는 죄의 즐거움이 변하여 쓰디쓴 고통이 되게 하심으로써 돌이킬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잠5:4)
23.불순종에 있는 죄인들이
거기로부터 돌이키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사랑하던 죄를 버리고 나면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의 유일한 위로는 스스로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죄를 짓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자기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정죄의식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은 멀리 있어 느껴지지 않는데, 사랑하는 죄는 버려야 하니 이런 두려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돌이키도록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갔는데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불순종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갔는데, 결국 그분이 베풀어주시는 영혼의 복이 죄의 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까?
24. 죄인들의 회심 하나님의 소원
만일 여러분이 아직 구원에 이르도록 회심하지 아니하였다면, 즉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여러분의 당연한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그분에 의하여 지은 바 된 인생이면서도 그분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불순종과 반항으로 일관하며 살아가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죄 가운데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당신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하십니다.(딛3:5)
25. 회심치 않는 자의 변명
인간 앞에서도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변명과 핑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들은 항상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집니다.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회심하지 않은 수많은 이유와 핑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어느 것도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것은 없습니다.
불신자들이 예수 믿지 않는 이유도 많고, 구원받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죄인들의 변명도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무릎을 꿇고 "주님께서 옳으시고 제가 틀렸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저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라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26.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집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합니다. 마음에 사랑의 성향이 있을 때 모든 생각과 정서는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 한 분께로 모이게 됩니다. 이런 마음의 집중으로 신앙의 모든 실천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의 내면의 세계와 행동들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회심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집중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 안에서 그들은 사랑과 순전한 섬김을 드렸습니다.
27.핑계할 수 없는 날을 생각하라
잠시라도 좋으니, 인생의 마지막 때가 되어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섰을 그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차마 고개를 들어 마주 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하고 영광스런 광채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여러분에게 회심치 않은 이유를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나는 나의 종들을 보내어 복음을 수없이 전해 주었고, 회심하는 길을 보여 주었지만 너는 끊임없는 핑계와 구실로 내게 돌이키지 아니하였다.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라고 물으실 때에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네가 한때는 내게 돌이켰으나 이후로는 나를 사랑하며 살지도 않고 순종하며 살지도 아니하였구나. 너는 어찌하여 그 소중한 회심의 은혜를 우습게 여기고 첫 회심에 합당하지 않은 살았느냐?" 하고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에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답변하겠습니까?
28.우리는 언제나 나 자신의 편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릇 생각하고 행동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때로는 옳다고 믿었던 자신에 대한 평가를 모두 잊고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 한 분 앞에 홀로 서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세상도 잊고, 나도 잊고, 거짓과 가식, 허위 그리고 쓸데없는 이유와 핑계를 모두 벗어버리고 말씀의 빛 앞에서 고독한 성찰을 하여야 합니다. 신앙의 정수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능력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사랑한 것이고, 뛰어난 지식보다도 더 값진 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29.순종해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첩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때 성경의 참된 의미가 가장 잘 파악됩니다. 그리고 순종의 가장 올바른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불경건하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풍부한 진리의 말씀을 소유하거나 그것의 유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순 투성이로 보이게 마련입니다.
30.그대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남들은 여러분을 교회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 고집을 따라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이유 없는 단정한 삶을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 한번도 자기가 깨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회심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회심은 최초의 자기 깨어짐입니다. 그것으로써 죄인은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회심의 은혜는 자기 깨어짐의 반복적인 경험 속에서 유지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에 있어서 자기 깨어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순전하게 사랑할 때에 인간 지성은 가장 명징(明澄)하게 됩니다.
31. 회심 없는 죽음을 생각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감정적으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회심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번민하거나 찔림을 받는 것만으로도 그가 하나님께 구원을 얻도록 거듭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주신 보편적인 기능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에는 생명의 요소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 자신으로 말미암는 진정한 만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언제 그들의 영혼은 생명을 얻게 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계명을 따라 사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일이 언제 일어날까요? 그들이 회심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32. 죽음 이후의 심판을 두려워하라
아아, 오래도록 교회에 출석하였으면서도 구원에 이르도록 회심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더욱이 그들은 비록 회심치 못한 채이기는 하지만, 오래도록 복음의 진리, 삶과 죽음의 진실에 대하여 들었던 사람들이니 더욱 핑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제공받은 더 많은 복음의 기회는 더 많은 형벌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러한 심판을 피하도록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 날에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회심치 아니한 죄인들에게 죽음 이후에 또 다른 기회가 있음을 가르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향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회심할 기회는 오직 살아있는 동안에만 주어집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회심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33.계속되는 우상숭배
신자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둘 다 섬기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번도 하나님을 버린 적이 없는 사람도 되지만, 동시에 공경한 적이 없는 사람도 됩니다.
하나님을 버린 신자의 마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그분 안에서 복을 누리는 방법이 자신에게 너무나 고통스럽고 멀리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엄격한 도덕적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번영을 누리는 것은 자신들에게 복이 될 수 없고 갑갑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육체의 쾌락도 즐기면서 번역을 약속 받을 수 있는 쉬운 길, 타락한 본성과 어울리는 길을 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지만 회심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34. 돌이키지 않는 우리를 봄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열광적으로 박수치고 노래를 불러도 바알처럼 그것 때문에 흥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더욱이 그러한 흥분 상태에서 복을 주시는 분은 더더욱 아닙니다. 도덕적인 삶과 그 도덕적 삶의 뿌리가 되는 거룩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이 이미 타락으로 기운 자들에게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안에서의 복을 누리는 것은 자신들의 본성을 거스르는 갑갑하고 어렵기만 한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온 영혼과 마음이 총체적으로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성품에 부합하는 삶으로써 혼인관계에 충실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회심이 필요한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의 입술로는 이미 신앙을 고백하였으나 더 깊은 곳에서는 그리스도와의 혼인관계에 헌신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35.참으로 회심한 신자는
잠시 미끄러질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합니다. 마음과 뜻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고자 합니다. 여기에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다시 일어나는 굳센 마음이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구하고, 우리 좋으신 주님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으십니다.
거룩한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아내이자 몸의 일부임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신자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난 한 주간 세상에서 살아갈 때 주님을 향한 사랑을 지키려고 했는데, 오히려 수많은 유혹으로 내 마음은 상하였고, 또한 멸시와 핍박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 완전한 사랑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사랑은 제 남편 되신 하나님 당신뿐입니다."
36.불순종의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
신자가 신앙을 지키며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많은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는 뜻을 세웁니다. 그렇게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러저러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자심의 의지를 굳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은혜도 많이 주시지만, 반면에 고난도 당하게 됩니다.
때로는 신앙적으로 올바른 길을 걸어간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에 뜻을 세우지 않고 아무렇게나 살 때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지만 말입니다. 이는 마치 흐르는 물이 없는 마른 개울에는 소리가 없지만, 물 흐르는 개울에는 물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계곡에 가득한 것과 같습니다.
37. 자기 사랑이 회심의 길을 막음
인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닥칠 때 거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대신, 그것을 헤치고 지나쳐 이제껏 회심치 않고 살아오던 그 길을 여전히 가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싶어하지도 않고 방향을 돌리고 싶지도 않은 것입니다. 발목과 온 몸은 가시에 찔려 상처투성이가 되고 담장은 피로 물드니,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무엇인가 욕망을 가지고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그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등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38.찾아오시는 분은 하나님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돌이키지 아니하고 세상을 향해 그렇게 달려가다가 쓰러져도 언제 한번이라도 세상이 달려와서 여러분을 일으켜 세워준 적이 있습니까? 세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네가 이렇게 고통 받기까지 나를 사랑하였구나. 네가 내게 오려고 네 신랑 그리스도까지 버렸으니 내가 너를 모든 불행에서 건져주리라. 내가 너를 안아주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달려가는 우리의 길에 끊임없이 가시로 길을 막고 담을 쌓으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를 당신에게로 돌이키시기 위함입니다.
39.기도하게 하시는 날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사람답게 만드시기 위하여 징계하십니다. 그 징계가 당신의 자녀들에게 아프고 고통스러울 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이것은 당신께 불순종한 인간들을 향한 화풀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징계는 당신의 자녀들을 당신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징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40.자기 사랑, 거짓 종교
회심은 인간의 마음 안에 진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을 열어 줄 뿐 아니라, 그것의 원 주인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거짓된 삶에는 그러한 진리의 요소가 없습니다. 인간들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좇아가지만 그 목표는 죄가 우리를 속임으로써 가르쳐 준 허상일 뿐이고 거짓 목표일뿐입니다.
41.돌아오기에 너무 먼 길은 없다
여러분이 아무리 주님을 멀리 떠났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간 것은 아닙니다. 또 더 멀리 갔다고 한들 은혜로 돌이키시려고 한다면, 하나님께 그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께 돌아오려고 하는 사람들을 돌이키시고, 참회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참회케 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로써 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사랑의 감화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이지만,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었던 선한 일들을 위하여 베푸시는 사랑의 감화입니다.
42.허랑방탕한 생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떠난 모든 것이 방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들을 원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는 모든 삶이 방탕한 삶입니다.
구원받은 영혼에 베풀어주신 은혜는 이 땅에서 신자가 누리는 최고의 자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원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대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자기가 무엇을 위하여 태어나고 구원받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의와는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허랑방탕한 삶입니다.
43.궁핍이 찾아옴
하나님께 충만한 은혜를 받아도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고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섬김이 없을 때 은혜는 그 안에서 부패해 버리고 변질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은혜의 공급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 그에게 찾아오는 것은 궁핍함입니다.
우리가 비록 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들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렇게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땅의 자원이든지, 하늘의 자원이든지 말입니다.
44.창조와 구원의 목적으로 돌아감
아버지가 자녀에게 원하는 것은 그에게 합당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또 지정해 주신 자리에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고, 하나님도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 바깥에서 행복을 찾고자 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을 등져야 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의 모든 궁핍함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45.마음으로 집 떠난 탕자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은 아버지 집에 살고 있습니까? 물론 여러분의 몸은 아버지 집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의 마음도 아버지 집에 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참된 행복이 아버지의 기쁨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며 살게 해주셔도 참된 기쁨이 거기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있습니까? 또 그분과 함께 즐거워하고 또 그분과 함께 슬퍼합니까? 여기에 자신 있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아버지 집에서 사랑 받는 아들이 아닙니다.
46 아들을 부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아주 많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스러워하시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서도 병들고 가난한 것 자체를 미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는 대로 이 땅에 있는 자원을 여러분에게 후히 주사 누리게 하고자 하십니다.(딤전6:17) 어디 이 땅의 자원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의 자원도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이 은혜의 하늘 자원을 모두 낭비하고 고갈에 이르기를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고통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신앙 안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하십니다. 비록 당신이 주신 모든 것을 다 잃을지라도 하나님 바깥에는 참된 행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모든 것을 지닌 채 아버지의 집에 몸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47.기다리시는 하나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생활은 그들에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삶입니다. 지금은 주님 없이도 안전한 것 같지만, 그는 곧 아무것도 의지할 바 없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고,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모든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 가장 기쁜 소식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당신께로 돌아온다는 소식입니다.
48.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지 말라
우리에게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회심에 합당하지 않게 살았던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당신께 돌이키는 자들을 언제나 멸시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한번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악할지라도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돌아갈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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