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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6:1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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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11·25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거기 있던 사람들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무엇보다 제자들은 너무나도 신이 나고 기뻤을 것입니다. 그들의 손에 들려진 떡과 생선은 아무리 나눠줘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특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도 주님의 일에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믿음과 헌신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표적
그 날 오병이어의 이적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떡과 생선을 먹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14절) 여기서 말하는‘그 선지자’는 모세가 예언한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표적’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오병이어의 이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이적에 대해서 기록하고,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고 간단하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6장 전체(71절)에서 이 이적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이 이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계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적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표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의 임금이 되어 주십시오. 과연 사람들은 이 이적을 체험한 후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이심을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어야 했을까요? 그분을 영접하고 믿어 그분이 주시고자 하시는 구원을 받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오병이어의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15절)
사람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의 왕이 되어주시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로마로부터 벗어나 다윗 시대와 같은 자주와 독립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이라면 능히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요즘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대권주자로 내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바람만 선거 때까지 유지시킨다면 압도적으로 당선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던 이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은 자기들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신 주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왕이 되어 달라는 이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을까요? 지금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왕이 아니라 구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스스로 구원의 문제는 이미 해결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고 현실적인 문제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로마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신다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문제보다 현실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구원문제는 이미 해결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미 구원받은 성도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의 특징과 의무를 동시에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세상에서 보다 부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머지않아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백성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의미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이렇게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구원의 문제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죄의 문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한 삶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에 대해서도 무관심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세상에서 좀 더 부하고 편하게 사는 것입니다. 혹시 이 모든 것이 당신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까? 이런 태도는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했던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대단히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육신의 문제들에 대해서 기도합니다. 돈 문제, 직장과 사업의 문제, 자녀 문제, 건강 문제 …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기도를 전혀 듣지 않으신 것처럼 외면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 즉 구원의 문제, 믿음으로 사는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현실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왕이 되어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외면하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15절) 제자들을 서둘러 보내심 예수님께서는 왕이 되어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기도하시기 위해서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마태는 이 장면을 보다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14:22-23)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셔서 사람들을 먹이신 후에 서둘러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무리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만일 예수님께서 왕이 되신다면 자기들은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한 것도 잘못된 것이었지만, 제자들이 이런 허황된 생각을 갖는 것은 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러한 마음을 아시고, 서둘러서 그들을 그곳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께서는 바다에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고생하게 하심으로서 그들의 마음속에 한껏 부풀어 있던 허황된 생각을 깨끗이 씻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였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16-18절) 환난이 오는 이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를 좇아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그들은 너무나도 신나고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때 그들은 현장에 있었고, 직접 떡과 생선을 나눠주면서 그 이적을 체험하며 거기에 참여했었습니다. 더 흥분되었던 것은 예수님의 이적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던 일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신다면 기적의 현장에서 떡과 고기를 나눠주던 제자들은 모두 대신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제자들을 이렇게 재촉하여 보내셨습니다.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예수님께서 거절하시는 바람에 모든 기대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얼마든지 또 오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배를 저어 건너편으로 가던 제자들은 갑작스런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폭풍은 매우 심해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은 밤중에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과 사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혼란스럽고 복잡했습니다. 그들은 조금 전에 놀라운 이적을 맛보았고, 예수님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그 좋은 기회를 거절하시고 이제는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게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일이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가다가 폭풍을 만나게 될 것을 모르셨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제자들을 폭풍 가운데로 몰아넣으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차 있던 허황된 생각을 깨끗이 청소해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다 가운데서 사투를 벌이면서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지금 죽게 생겼는데 장관 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풍랑과 싸우면서 조금 전에 가졌던 허황된 꿈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쳐오는 환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세상에서 형통한 것 못지않게 환난 당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 모든 일이 형통하고 평안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세상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 소망이 희미해지고 재림에 대한 긴장이 약해집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 치명적인 해가 됩니다. 현대는 물질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의 재림신앙과 천국소망은 매우 희미해졌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에만 빠져서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갑자기 주님께서 오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는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빠져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환난입니다. 환난을 당하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며,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님께 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믿음으로 살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상에 빠져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고난을 주십니다. 찬송가 534장 4절을 보십시오.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주께서 오라 하시면 내 고향 찾아가리” 고난당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그 고난으로 인하여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하시고 더욱 더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형통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은 세상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세상 것들은 다 썩어지고 불탈 것입니다. 거기에다 소망을 두고 살아가면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제자들이 배타고 바다를 건너가고 있는 동안에 산에서 혼자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막6:48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구해주시기 위해서 물위를 걸어서 그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 배에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19절)
제자들이 폭풍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고생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제자들이 물위로 걸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20절) 주님의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비로소 크게 기뻐하며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6:5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위험한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것을 다 보고 계셨으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오신 것과,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잔잔해진 것을 보고서 제자들은 다시 한 번 주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을 기대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자들의 꿈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되시는 것을 보지 못했으나 하늘의 왕이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전자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고통당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해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것일까요?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는 것일까요?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아는 것과,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나의 왕이 되시며 나의 주인이 되심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이 큰 축복을 알지 못하고 오직 세상 것에만 집착하며 사는 성도는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세상 것들에 우선순위를 두지 마십시오. 가장 우선적으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십시오.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한순간도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늘 확신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표적’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오병이어의 이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이적에 대해서 기록하고,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고 간단하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6장 전체(71절)에서 이 이적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이 이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계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적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표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의 임금이 되어 주십시오. 과연 사람들은 이 이적을 체험한 후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이심을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어야 했을까요? 그분을 영접하고 믿어 그분이 주시고자 하시는 구원을 받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오병이어의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15절)
사람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의 왕이 되어주시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로마로부터 벗어나 다윗 시대와 같은 자주와 독립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이라면 능히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요즘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대권주자로 내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바람만 선거 때까지 유지시킨다면 압도적으로 당선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던 이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은 자기들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신 주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왕이 되어 달라는 이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을까요? 지금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왕이 아니라 구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스스로 구원의 문제는 이미 해결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고 현실적인 문제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로마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신다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문제보다 현실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구원문제는 이미 해결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미 구원받은 성도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의 특징과 의무를 동시에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세상에서 보다 부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머지않아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백성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의미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이렇게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구원의 문제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죄의 문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한 삶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에 대해서도 무관심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세상에서 좀 더 부하고 편하게 사는 것입니다. 혹시 이 모든 것이 당신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까? 이런 태도는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했던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대단히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육신의 문제들에 대해서 기도합니다. 돈 문제, 직장과 사업의 문제, 자녀 문제, 건강 문제 …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기도를 전혀 듣지 않으신 것처럼 외면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 즉 구원의 문제, 믿음으로 사는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현실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왕이 되어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외면하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15절) 제자들을 서둘러 보내심 예수님께서는 왕이 되어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기도하시기 위해서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마태는 이 장면을 보다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14:22-23)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셔서 사람들을 먹이신 후에 서둘러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무리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만일 예수님께서 왕이 되신다면 자기들은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한 것도 잘못된 것이었지만, 제자들이 이런 허황된 생각을 갖는 것은 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러한 마음을 아시고, 서둘러서 그들을 그곳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께서는 바다에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고생하게 하심으로서 그들의 마음속에 한껏 부풀어 있던 허황된 생각을 깨끗이 씻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였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16-18절) 환난이 오는 이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를 좇아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그들은 너무나도 신나고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때 그들은 현장에 있었고, 직접 떡과 생선을 나눠주면서 그 이적을 체험하며 거기에 참여했었습니다. 더 흥분되었던 것은 예수님의 이적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던 일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신다면 기적의 현장에서 떡과 고기를 나눠주던 제자들은 모두 대신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제자들을 이렇게 재촉하여 보내셨습니다.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예수님께서 거절하시는 바람에 모든 기대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얼마든지 또 오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배를 저어 건너편으로 가던 제자들은 갑작스런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폭풍은 매우 심해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은 밤중에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과 사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혼란스럽고 복잡했습니다. 그들은 조금 전에 놀라운 이적을 맛보았고, 예수님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그 좋은 기회를 거절하시고 이제는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게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일이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가다가 폭풍을 만나게 될 것을 모르셨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제자들을 폭풍 가운데로 몰아넣으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차 있던 허황된 생각을 깨끗이 청소해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다 가운데서 사투를 벌이면서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지금 죽게 생겼는데 장관 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풍랑과 싸우면서 조금 전에 가졌던 허황된 꿈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쳐오는 환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세상에서 형통한 것 못지않게 환난 당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런데 모든 일이 형통하고 평안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세상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 소망이 희미해지고 재림에 대한 긴장이 약해집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 치명적인 해가 됩니다. 현대는 물질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의 재림신앙과 천국소망은 매우 희미해졌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에만 빠져서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갑자기 주님께서 오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는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빠져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환난입니다. 환난을 당하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며,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님께 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믿음으로 살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상에 빠져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고난을 주십니다. 찬송가 534장 4절을 보십시오.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주께서 오라 하시면 내 고향 찾아가리” 고난당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그 고난으로 인하여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하시고 더욱 더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형통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은 세상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세상 것들은 다 썩어지고 불탈 것입니다. 거기에다 소망을 두고 살아가면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제자들이 배타고 바다를 건너가고 있는 동안에 산에서 혼자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막6:48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구해주시기 위해서 물위를 걸어서 그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 배에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19절)
제자들이 폭풍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고생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제자들이 물위로 걸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20절) 주님의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비로소 크게 기뻐하며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6:5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위험한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것을 다 보고 계셨으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오신 것과,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잔잔해진 것을 보고서 제자들은 다시 한 번 주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을 기대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자들의 꿈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되시는 것을 보지 못했으나 하늘의 왕이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전자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고통당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해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것일까요?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는 것일까요?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아는 것과,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나의 왕이 되시며 나의 주인이 되심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이 큰 축복을 알지 못하고 오직 세상 것에만 집착하며 사는 성도는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세상 것들에 우선순위를 두지 마십시오. 가장 우선적으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십시오.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한순간도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늘 확신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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