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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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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34) 피해야 할 3가지 삶 (요 5:1-7)
1. 미신적인 삶
어느 날, 예수님이 양문(Sheep Gate)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을 지나게 되었습니다(1-2절). 당시 베데스다 못에는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동할 때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치유된다는 전설로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 미신에 희망을 걸고 정작 낫지도 못한 채 수년, 수십 년 동안 그곳에 있는 병자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 베데스다 연못은 미신적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준다! 천사가 나타났다!”고 하는 베데스다 교회로 몰려들지만 주님은 결코 그런 삶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고 하신 것은 “미신 대상인 베데스다를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를 치유한 것은 ‘베데스다 물’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신령한 사람이 치유를 주고 그가 기도해준 물을 먹으면 치유가 나타난다는 류의 미신에 절대 현혹되지 마십시오. 어떤 것도 주님을 믿는 믿음보다 앞세우지 마십시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주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주님 외의 것을 믿는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미신적인 요소를 버리지 않으면 고질병과 문제와 시험은 계속됩니다. 점을 멀리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 하는 점은 더 멀리하십시오.
2. 포기하는 삶
주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습니다(6절). 38년 된 병자가 낫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데 왜 주님은 그런 이상한 질문을 했을까요? 병자의 마음속에 새로운 의지와 소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 병들면 다 낫겠다고 의지와 소망을 가지다가 병이 길어지면 점점 “이제 안 돼!”라고 포기합니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병문안을 자주 다니며 치유를 소망하지만 병 수발이 길어지면 마음속 깊은 곳에 “차라리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긴 병에는 장사가 없이 대부분 포기합니다. 그런 포기와 체념을 극복해야 치유 받기에 주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으로 병자의 의지를 일깨웠습니다.
항상 더 나은 세계로 나가는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자기를 포기하면 점점 자기가 더 싫어지고 병의 극복도 힘들어지고 축복과 기적의 기회도 줄어듭니다. 변화와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간절한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손잡이와 응답의 열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무조건 은혜를 부어주실 수도 있지만 먼저 행동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 믿음이 치유의 은혜를 증폭시킵니다.
3. 변명하는 삶
본문의 병자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남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습니다.”고 변명합니다(7절). 그런 지나친 피해의식을 버리십시오. 피해의식을 가지면 받은 피해만 뚜렷이 기억하고,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고, 남을 잘 신뢰하지 못하기에 항상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한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불평하며 “그게 내 잘못입니까?”라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배우자나 부모나 사회, 그리고 자기 외에 남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그런 변명이 변화를 막습니다.
사람들은 약속에 늦으면 대개 이런 변명을 합니다. “너무 길이 막혀서 늦었습니다. 오려고 하는데 전화가 막 왔습니다.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약속에 상습적으로 늦는 사람의 진짜 문제는 자기 인생을 책임적으로 경영할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에 늦을 때 변명하려면 차라리 이렇게 변명하십시오. “죄송합니다. 저의 인생을 책임적으로 경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전에 중요한 이사회에 갈 때 평소보다 아주 일찍 출발했는데 도로공사로 길이 엄청나게 막혔습니다. 그때 운전대 잡고 다짐했습니다. “길이 막혀서 늦었다는 말은 늦는 사람이 하는 단골메뉴니까 차라리 그 얘기를 하지 말자!”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에 잘하면 됩니다. 말로 신뢰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신뢰를 얻으려고 하십시오. 잘못했거든 변명하지 말고 그 잘못을 인정하십시오. 변명하는 습성을 깨뜨리고 죄와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하며 진정으로 회개해야 변화와 치유와 역사가 나타납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어느 날, 예수님이 양문(Sheep Gate)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을 지나게 되었습니다(1-2절). 당시 베데스다 못에는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동할 때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치유된다는 전설로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 미신에 희망을 걸고 정작 낫지도 못한 채 수년, 수십 년 동안 그곳에 있는 병자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 베데스다 연못은 미신적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준다! 천사가 나타났다!”고 하는 베데스다 교회로 몰려들지만 주님은 결코 그런 삶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고 하신 것은 “미신 대상인 베데스다를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를 치유한 것은 ‘베데스다 물’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신령한 사람이 치유를 주고 그가 기도해준 물을 먹으면 치유가 나타난다는 류의 미신에 절대 현혹되지 마십시오. 어떤 것도 주님을 믿는 믿음보다 앞세우지 마십시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주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주님 외의 것을 믿는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미신적인 요소를 버리지 않으면 고질병과 문제와 시험은 계속됩니다. 점을 멀리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 하는 점은 더 멀리하십시오.
2. 포기하는 삶
주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습니다(6절). 38년 된 병자가 낫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데 왜 주님은 그런 이상한 질문을 했을까요? 병자의 마음속에 새로운 의지와 소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 병들면 다 낫겠다고 의지와 소망을 가지다가 병이 길어지면 점점 “이제 안 돼!”라고 포기합니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병문안을 자주 다니며 치유를 소망하지만 병 수발이 길어지면 마음속 깊은 곳에 “차라리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긴 병에는 장사가 없이 대부분 포기합니다. 그런 포기와 체념을 극복해야 치유 받기에 주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으로 병자의 의지를 일깨웠습니다.
항상 더 나은 세계로 나가는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자기를 포기하면 점점 자기가 더 싫어지고 병의 극복도 힘들어지고 축복과 기적의 기회도 줄어듭니다. 변화와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간절한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손잡이와 응답의 열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무조건 은혜를 부어주실 수도 있지만 먼저 행동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 믿음이 치유의 은혜를 증폭시킵니다.
3. 변명하는 삶
본문의 병자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남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습니다.”고 변명합니다(7절). 그런 지나친 피해의식을 버리십시오. 피해의식을 가지면 받은 피해만 뚜렷이 기억하고,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고, 남을 잘 신뢰하지 못하기에 항상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한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불평하며 “그게 내 잘못입니까?”라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배우자나 부모나 사회, 그리고 자기 외에 남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그런 변명이 변화를 막습니다.
사람들은 약속에 늦으면 대개 이런 변명을 합니다. “너무 길이 막혀서 늦었습니다. 오려고 하는데 전화가 막 왔습니다.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약속에 상습적으로 늦는 사람의 진짜 문제는 자기 인생을 책임적으로 경영할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에 늦을 때 변명하려면 차라리 이렇게 변명하십시오. “죄송합니다. 저의 인생을 책임적으로 경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전에 중요한 이사회에 갈 때 평소보다 아주 일찍 출발했는데 도로공사로 길이 엄청나게 막혔습니다. 그때 운전대 잡고 다짐했습니다. “길이 막혀서 늦었다는 말은 늦는 사람이 하는 단골메뉴니까 차라리 그 얘기를 하지 말자!”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에 잘하면 됩니다. 말로 신뢰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신뢰를 얻으려고 하십시오. 잘못했거든 변명하지 말고 그 잘못을 인정하십시오. 변명하는 습성을 깨뜨리고 죄와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하며 진정으로 회개해야 변화와 치유와 역사가 나타납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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