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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5: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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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예수께서 받으신 십자가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본문/ 막15:1-47
1. 들어가는 이야기
2001년 사순절은 2월 28일 재의 수요일부터 4월 14일까지 주일 여섯 번을 포함하여 46일입니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 4월 8일 주일부터 14일 토요일까지 특별히 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고난받고 십자에서 죽으신 예수에 대한 문제 제기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세 차례 미리 예고하시고 또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미리 말씀 하셨습니다(막8:31, 막9:31, 막10:33-34). 예수는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스스로 버린다고 하셨습니다(요10:17-18).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마20:28). 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는 <이 세상을 위하여 죽기 위하여 오신 것>이 분명합니다. 도대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단순히 죽기 위하여 오셨다면 왜 하필이면 십자가에서인가? 십자가의 죽음은 무슨 의미인가? 에수의 대적자들이 예수를 비웃으며 한 말처럼 죽은 자도 살리는 예수가 어찌하여 놀라운 기적이나 능력을 행하지 못하고 어쩌면 그렇게 허망하게 죽으셨는가? 그렇게 죽은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가? 욕설하지 않고, 발악하지 않고, 죽는 태도가 모범적이어서 하나님의 아들인가? 예수가 십자가가 아니라 칼에 목이 잘렸다면, 혹은 돌에 맞아 죽었다면 하나님 아들이 못되는가?
예수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분명히 아셨다면 무엇이 그리 고통스러웠겠는가? 그 당시에도 예수보다 더 모진 고문과 고통 속에서 죽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2000년 전, 유대 땅 한 모퉁이에서 일어난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오늘 나를 구원하는가? 다시 묻건대 도대체 이 세상 사람들을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3. 문제 제기에 대한 문제 제기
예수의 고난과 죽음의 문제는 논리적, 평면적, 이론적으로 묻고, 답변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평면에서 평행선이 아닌 모든 선은 어디선가는 만날 수 있지만, 공간에서는 아무리 가깝게 뻗은 선이라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예수의 문제는 그렇게 공간적이고, 입체적이고, 심층적이고, 영적인 문제입니다.
4.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예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우연히 그런 고난과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의 말씀과 행동과 삶 전체 때문에 그런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받은 고난은 예수 그 분 삶 자체에 가해진 이 세상의 폭력이었습니다.
둘째. 예수는 자신의 말씀과 행동과 삶을 이 세상이 극도로 미워한다는 것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고난을 받을 것이란 것을 예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자신의 삶!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도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뜻대로 살아간 사람을 그렇게 허망하게 죽게 버려 두실 리가 없다는 것도 아셨기에 나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고 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예수는 하나님께서 삼일만에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고,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내적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그리하실 것이란 내적 확신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고난과 죽음은 가혹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토록 심한 고민과 통곡으로 기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 그런데 예수의 그 죽음이 왜 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인가?
여기서 부활이 나옵니다. 예수의 죽음만으로는 예수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예수의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부활 없는 죽음은 무의미하고, 죽음 없는 부활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그렇게 고난받고 죽으셨는데, 과연 하나님이 가만히 있지 아니하시고 예수의 믿음대로 예수를 삼일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께 폭력을 가하였던 처럼 예수처럼 사는 사람에게도 역시 폭력을 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10:22). 바울 사도는 이것을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 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아담이후 처음으로 알려주셨기에 예수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주간<말씀의 샘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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