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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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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마음을 다하여 교제(코이노니아) 하라
본문/ 행2:42
1. 들어가는 이야기
이 세상 첫 교회 사람들의 교회 생활은 첫째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받고, 둘째 마음을 다하여 교제하고, 셋째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지난주일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받았다>는 주제로 말씀 드렸고, 오늘은 두 번째로 <마음을 다하여 교제하였다>는 주제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2. 교제(Koinonia = Association = Fellowship)란 무엇인가?
본문에서 <교제하였다>는 말은 희랍 원어 <koinonia/코이노니아>를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로는 <Association>, <fellowship>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희랍 원어 <koinonia/코이노니아>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ㅇ 접붙여진 나무 가지가 그 원래 나무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함께 공급받아 그 원래 나무의 생명력과 일체가 되어 간다(롬11:17).
ㅇ 함께 성전, 혹은 가정에 모여 떡을 떼며, 함께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함께 가진 것을 필요에 따라 나누는 거룩한 사귐을 가진다(행2:42-47)
ㅇ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힘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벧후1:4).
ㅇ 성령님의 활동에 함께 동참하여 일한다(고후13:13).
ㅇ 성만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부활에 참예한다(롬6:9).
ㅇ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형제 자매와 함께 협력하여 일한다.
ㅇ 복음을 나눔으로 하나님과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귐을 가진다(요일1:3-6).
ㅇ 재난을 당한 믿는 형제의 고난을 함께 나눈다(고후8:14).
ㅇ 복음 전하는 자는 신령한 것을, 복음을 받는 자는 물질로,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눈다(갈6:6, 고 전9:11).
<제프리 w 블라밀리, 킷텔 단권 원어 사전, 요단출판사, 510-511쪽>
우리는 여기서 희랍 원문 <코이노니아>란 “무엇인가를 함께 나눈다”, “공동으로 협력한다”, “함께 먹고 마시면서 사귄다”, “한 공동체를 이루어 진실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함께 초대받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어떻게 교제(코이노니아)를 이루어갈 것인가?.
첫째. 마음을 다하여 함께 먹고 마셔야 합니다.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집안이 잘되려면 먼저 그 가정이 화목, 화평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제 아무리 대단한 사람들이 모였더라도 불화 한다면, 그 교회는 빵점입니다.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화평(和平)과 화목(和睦)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데서 생깁니다. 평화, 화평, 화목이란 한자말을 보면, 음식(禾: 쌀)을, 똑같이 나누어(平), 입에 넣는다(口)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한솥밥 먹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저 찬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고 함께 먹고 마실 때, 참 교제(코이노니아)가 생겨납니다.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밥맛 없는 놈”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은 나의 친구요, 동지요, 식구라는 뜻입니다.
둘째. 마음 다하여 형제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誠於中이면 形於外라고 하였습니다. 그 마음이 정성되고 진실하면, 그 정성과 진실함이 그대로 밖으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진정한 배려에서 참 교제, 참 코이노니아가 일어납니다.
3S/ Standardizing(규격화), Specializing(전문화), Speeding(속도화)를 모토로 삼고 소용돌이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군중 속의 고독으로 외롭습니다. 모두 참다운 교제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실다운 사귐은 한 사람을 소중히 알고, 기다려주고, 인정해 주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에서 꽃 핍니다.
셋째. 마음을 다하여 예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한 가지 참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예절이 없을수록 더 친한 관계이다”, “친하게 되면, 예절은 별로 문제삼을 것 없다” 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정말 크나 큰 오해입니다.
금력과 권력의 오만에서 비롯한 무례는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무지와 천박함에서 비롯한 무례는 불쾌합니다. 솔직히 말해보십시다. 상대방이 나에게 무례하였을 때, 불쾌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그 상처 때문에 슬며시 상대방과 교제를 끊어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대장부가 그런 거 가지고 뭘 그래! 하는 사람일수록 사실인즉 더 상처받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그러므로 옛 글에 이르기를
행동거지가 가볍고 경망스러우면 허물과 욕을 초래한다(行輕招辜 貌輕招辱).
사람은 가까울수록 예절을 지켜야 한다(人情太密反成疎).
베풀었거든 잊고, 받았거든 잊지 말라(施人謹勿念 受施謹勿忘)고 하였습니다.
4. 마치는 이야기
교회의 코이노니아는 <devoted themselves/ 마음을 다하여>, 함께 먹고 마시고, 형제를 따뜻이 배려하고, 예절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주간<말씀의 샘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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