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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범생이 되지 말아라 (해와달 원고)

어부동일기00-03 최용우............... 조회 수 1140 추천 수 0 2002.01.16 17: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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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의 아침 042】2001.3.8 (목) 너는 모범생이 되지 말아라

드디어 제 큰 딸 좋은이가 회남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입학하였습니다.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년도 있고 전교생이 30여명쯤 되는 아주 작은 산골학교입니다. 내년에 1학년이 되는 아이가 단 두 명이어서 좋은이는 미우나 고우나 남자친구 한 명과 어쩌면 6년 동안을 토닥거릴지도 모릅니다. 학교는 대청호 상류의 산언덕에 있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주변 환경이 그림처럼 아름답고 공기도 좋은 곳입니다. 앞으로 17년 동안의 길고 긴 학교공부의 길에 첫발을 내딛는 딸에게 아빠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너는 모범생이 되지 말거라"

이 땅의 반수가 넘는 학부모들이 할 수만 있으면 아이들을 다른 나라로 유학 보내고 싶다고 할 만큼 지금 교육은 실패입니다. 지금까지 이 땅의 교육의 가장 큰 목표는 "모범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범생'이란 어떤 사람인지 선생님들이 말하는 것과 학생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말썽도 피우지 않고 공부만 하며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밥맛 없는 우리들의 왕따"-(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모범생이란 선생님이나 교수에게 잘 보이려고 공손하고 예의 바르고 눈치 빠르게 처세를 잘하는 학생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학부모들도 "우리 아이를 잘 봐주세요"하면서 뇌물을 갖다 바칩니다. 선생님의 맘에 들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멀쩡한 아이가 '문제아'가 되고 맙니다.
교육의 목표는 한 사람을 판단력과 일을 처리하는 능력과 책임감이 있는 온전히 성숙한 성인이 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지 암기력이 뛰어난 사람이나, 아니면 어떤 특정인에게 익숙한 자로 길들여진 모범생을 만드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성숙한 성인을 만드는 실험실이나 훈련소 같은 곳이어서 오히려 학생들은 실수도 저지르고 말썽도 피워야 하고 그런 것들이 받아들여져야 하는 곳입니다. 실수를 해도 용납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시기에 오히려 완벽함이 요구되는 모범생 교육은 모순입니다. 그렇게 실수해 본 경험이 없는 모범생은 이 사회에 나와서 꼭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의 뒤처리를 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을 어려움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좋은아, 너는 모범생이 되지 말아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배움의 시기에는 오히려 실수를 하고 말썽을 피우면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 절제'를 실습하는 시기이며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가는 때이다. 아빠는 좋은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또 영어 단어 하나 틀렸다고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것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더욱 고민하기를 원한다. 너는 좋은사람 최좋은이니라."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을 보면 무서움을 느낍니다. 공부하는 학생의 자유의사나 요구들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그저 꽉 짜여진 스케쥴대로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 위에서부터 짓누르는 획일화된 교육입니다. 새벽밥 먹고 하루 종일 학교에서 암기 교육(?)을 받고 또 머릿속에 더 무엇을 쑤셔 넣을 공간이 남았다고 교문 앞에서 학원차나 독서실 버스는 아이들을 납치하듯 차에 실어가는지...  그것도 모자라서 보충수업을 하고, 학원에 다니고 독서실에 가서 새벽녘까지 공부하는 지옥의 레이스! 그래서 얻는 것이라는 게 철저한 경쟁의식,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 친구를 쓰러뜨려야 내가 사는 생존을 위한 혹독하고도 치열한 싸움...
아, 그 무시무시한 입시전쟁 때문에 우리의 연약한 아이들이 잃어버리는 행복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지 모릅니다. 삶을 위한 공부가 되어야 하는데 공부를 위한 삶이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고 합시다. 그리고 140학점 다 따서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돈을 많이 벌었다해도 그것이 행복입니까? 실상은 행복을 느끼는 듯 해도 뻥 뚤린 뭔지 모를 공허를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요.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머리에 흰눈이 내리고 이빨은 다 빠져버린 낡은 기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갈릴리마을에서'
내 지갑속엔 갈릴리마을에서 필요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현금카드, 교통카드, 피자쿠폰... 내 인생 가운데에도 천국에서 필요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살이에 어떤 불필요한 것들이 섞여 있는가? 그게 뭘까?  -부산에서 온 유 ㅇ ㅇ

갈릴리마을에서 온 어느 자매님이 며칠 전에 쪽지에 적어 게시판에 핀으로 꽂아놓고 간 글입니다 . 현금카드, 교통카드 뿐 아니라, 갈릴리마을에서는 텔레비전도, 헨드폰도, 인터넷도 문명의 이기라 하는 것들이 다 무용지물입니다. 없으면 절대로 안될 것 같은 것들이 여기에서는 있어도 소용없는 것들이란 말입니다. 그것들이 없어서 불편하기는커녕, 없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텔레비전이 잘 안나오기 때문에 거의 텔레비전을 보지 않습니다. 그깟 연예인들의 시시껄렁한 사생활 같은 것을 좀 몰라도, 가족들과 보내는 더 많은 행복한 시간들, 책을 읽는 시간들이 생겨서 좋습니다. 핸드폰이 없으니 시도 때도 없이 울려퍼지는 삐리릭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고 (앗! 그러고 보니 우리들 가운데도 최용덕간사님과 나만 헨드폰이 없군.) 느림보 굼뱅이 전화모뎀을 가지고 인터넷을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게임이나 채팅을 안 하게 되어 좋고, 조금 낡고 유행에 지난 옷을 입어도 고무신을 신고 어슬렁거려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눈치 뵈는 일이 아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것뿐 아닙니다. 갈릴리마을에서는 학위나, 세상 지위나, 좋은 기술이나, 재능 같은 자랑거리들이 다 무용지물입니다. 갈릴리마을 가족들이 늘 하는 고백은 "하나님은 어찌 이렇게 배우지도, 세상 권세를 누려보지도, 탁월한 재능도 없는 그저 못난 것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이렇게 사용하여 주시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놀랍고 놀랍다 놀라웁도다아아아~ "
또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잘해야 된다는 경쟁심도, 더 가져야 된다는 욕심도 별 필요가 없습니다. 갈릴리마을에서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열심히 글을 쓰는 것으로 디자인을 잘하면 그 잘하는 것으로 사무행정을 잘하면 그 잘하는 것으로 그저 그 사람이 있다는 자체를 감사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이렇게 써 놓고 보니 갈릴리마을이 무슨 대단한 곳처럼 묘사가 되었네요. 사실은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서로 노력하고 있을 뿐인데)

위의 어떤 자매님의 독백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없어도 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 없어도 되는 것들을 얻기 위해 좋은 시절을 다 보내 버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별로 쓸데없는 잡동사니 같은 것으로 우리의 안을 가득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때문에 더 중요한 '행복' '사랑' '믿음' '보람'같은 것들이 미처 들어갈 틈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행복' '믿음' '보람'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보면 그것은 행복이나 믿음이나 보람이라기 보다는 '성취감'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내 안을 무엇인가로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덜어내고 비우고 청소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 있는 내 것의 욕심이 점점 줄어들어야 남도 보이고 세계도 보이고 역사도 보이는 것입니다.

좋은이의 입학식에 다녀온 엄마는 학생들도 너무 작고 학교도 너무 작아서 교육 환경이 좋지 않다고 한숨을 푹푹 내쉽니다. 엄마의 마음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채움의 교육이 아니라 비움의 교육이라면 작은 학교가 얼마나 제격입니까. 도시의 북적거리는 교실보다 넓은 운동장과 산과 나무와 꽃이 있고 강이 있고 동물이 있는 곳에서 더욱 풍성하고 정감어린 감수성이 자랄 것입니다. 컴퓨터 안에 가상의 동물을 키우는 아이와, 직접 밥을 주고 풀을 주고 똥을 치워주며 동물을 키우는 아이가 어찌 동일한 감수성을 갖겠습니까. (좋은이는 지금 자기소유인 몽이와 깡충이 토끼 두 마리를 직접 키우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점수로 환산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 작은 산골학교라고 해서 교육환경이 나쁘다고 할 수만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제 아침마다 좀 더 자려는 아이와 깨우려는 엄마의 한바탕 소란스러운 전쟁이 시작되겠지요? 좋은이는 그렇게 날마다 학교에 다닐 것입니다. 바라기는 좋은이가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더 중요한 것, 더 귀한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합니다. 부모들은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다만 길을 가르쳐 줄뿐입니다. 먼 훗날 아빠의 이 생각과 가르침이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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