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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사람

요한복음 이정수 목사............... 조회 수 2552 추천 수 0 2010.10.10 09: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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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3:1-15 
설교자 : 이정수 목사 
참고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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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듭난 사람 (1)
본문/ 요3:1-15

1. 들어가는 이야기
   중국 문헌 呂氏春秋에 刻舟求劍(각주구검)이란 말이 나옵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초나라 사람이 실수로 소중히 안고 있던 칼을 강물 속에 빠뜨렸습니다. 칼은 흔들거리며 물 속 깊이 가라앉았습니다. 그 사람은 얼른 허리춤에서 작은칼을 꺼내, 칼을 빠뜨린 배 난간에 표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안심이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배가 건너편에 닿자 그 사람은 옷을 벗고 자기가 표시해 놓은 배 난간 아래 물 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았습니다. 칼이 거기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슬람 문화권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늦은 밤, 나스레딘이 가로등 아래서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지나던 친구가 여보게 나스레딘, 뭘 찾나?. 응, 집 열쇠를 잃었어. 그래, 그럼 같이 찾아보세. 둘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열쇠는 없었습니다. 여보게, 정확히 어디쯤서 열쇠를 잃은 것 같은가?. 응, 저기 건너 편 길에서 잃었어. 그럼 거기서 찾아야지 왜 여기서 찾는가?. 나스레딘 曰, 이 사람아, 여기는 밝고, 저기는 어둡잖아!.

멍청이들입니다. 石頭! 우리말로 풀어 말하면 돌대가리들입니다. 있을 수 없는 멍석들입니다. 멍청한 돌대가리라는 말입니다. 칼을 찾으려면 비록 위험하더라도 칼 떨어뜨린 바로 그 물 속으로 뛰어들어야합니다. 열쇠 찾으려면 비록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더라도 바로 그 잃어버린 건너편 자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멍청한 돌대가리들이라고 비웃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사돈 남 말하는 격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그들과 하나도 다름없는 멍석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무엇인가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기쁨, 평화, 용기, 절제, 사랑, 행복, 떳떳함, 대장부 마음, 겸손, Inner Power, Elan Vital, Freedom,..등 말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은가요?.

그런데 그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어디서 찾고 있습니까?. 학벌, 물질, 미모, 스포츠, 인간 관계, 사업, 골프, 낭만, 분위기, 명예,....뭐 그런 데서 찾고 있지는 않은가요?.

스스로를 돌아보아 결코 아니라면 다행입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멍청한 돌대가리라고 손가락질한 저 사람들과 다를 바 조금도 없는 멍석 아니겠습니까?.

3.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멍석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네 자신을 알라/ Know thyself!>고 갈파한 소크라테스 말처럼 그는 자기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멍석 신세 면하는 길을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멍석을 면하는 길,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찾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물과 설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다? 무슨 뜻입니까?. 어머니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라는 소리가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born from above)는 뜻입니다. 차원을 달리하라는 것입니다. 어서 속히 벌레 탈을 벗고 나비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서 속히 굼벵이 탈을 벗고 매미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서 속히 껍질을 깨고 새가 되어 푸른 하늘로 날아 오르라는 것입니다.

거듭난 삶은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엎드려 주여, 주여,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삶은 스스로의 깨달음과 훈련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값비싼 진주입니다(마13:44-46).

4. 어떻게 거듭나는가?
거듭난다는 것은 의식의 전환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본래적인 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원래의 나(Myself)를 부인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단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나, 이 땅의 썩어질 것을 제일로 알고 사는 죄 된 나(Ego)를 부인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요17:3),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습관의 전환입니다. 의식의 전환과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의식이 내 삶에 육화(Incarnation)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못된 습관들, 자기 연민, 무책임한 언동, 남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함, 자기 감정을 절제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 게으름,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속물 근성,....이 모든 악한 것들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하나의 습관이 내 삶에 정착되고 육화 되려면 21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내 생활 속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악한 습관들을 빡빡 쓸어내고, 닦아냅시다. 거듭난 삶이란 생각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5. 마치는 이야기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신 분(황금 나비)입니다. 땅에 속한 이는 땅엣 것(벌러지)을 말합니다(요3:31-36). 이제 황금빛 날개 쫙 펴고 날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거듭난 사람 (2)

본문/ 요3:1-15
1. 들어가는 이야기
   거듭난다는 것은 영어 표현으로 <born again>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그 말속에 이미 한 번 태어났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다, 거듭난다는 의미는 두 번째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요3:1-7에서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한. 첫 번째 태어남 없다면, 두 번째 태어남도 없다.

둘. 첫 번째 태어남은 육체적 태어남이고, 두 번째 태어남은 영적 태어남이다.

셋. 첫 번째 육체적 태어남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두      번째 영적 태어남은 아주 특별한 사람, 즉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에게만 일어      날 수 있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축복 사건이다.

오늘 아침, 이 세 가지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첫 번째 태어남 없다면, 두 번째 태어남도 없다
첫 번째 태어남은 육체적 태어남입니다. 이 육체적 태어남 속에는 두 번째 영적 태어남의 가능성이 이미 내재하여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태어남 속에 영적 태어남의 씨앗이 이미 심겨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육체적 태어남이 없다면, 영적 태어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3:16-17, 고후6:16).

다른 말로 하면, 각 사람의 첫 번째 태어남은 육체적 태어남이며, 이 육체적 태어남은 곧 각 사람의 <나>가 존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육체를 가진 개인, 개인, 속에 두 번째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3. 첫 번째 태어남은 육체적 태어남이고, 두 번째 태어남은 영적 태어남이다
첫 번째 태어남, 육체를 받고 태어난 각 사람, 곧 <나>에게는 육체적인 나와 영적인 나가 공존하고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학자들은 통상 육체적인 나를 에고(Ego), 영적인 나를 셀프(Self)라고 부릅니다.

육체적인 나(Ego)는 누구인가?.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진 모든 <나 = Ego>들은 식욕, 성욕 같은 본능적 욕구, 권력욕, 명예욕, 재물욕, 등으로 뭉쳐진 욕심과 욕망의 덩어리들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인 나(Ego)가 추구하는 이 모든 것들을 <육으로 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1:18-32에서 이 모든 것을 <썩어질 것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적인 나란 그런 존재입니다.

영적인 나(Self)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원래의 나, 신의 성품을 받은 나,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나, 거룩하고 신령한 것을 간절히 바라는 나,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나, 힘써 대장부가 되려는 나,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려는 나, 호연지기를 기르려는 나>입니다.
<참고: 고전예화 229호, 말씀의샘물 제1권 56호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4. 왜, 거듭나야 하는가?
육체적인 나(Ego)는 <참나, 眞我, 내가 간절히 바라는 나, 온전한 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 그 사명대로, 각각 자기답게 살아야 행복합니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들국화는 들국화대로, 양은 양대로, 사자는 사자대로, 물은 물대로, 산은 산대로,...그리고 사람은 사람대로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합니다. 본질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고,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엄청난 비극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영적인 나(Self)가 먼저이고, 육체적인 나(Ego)는 그 뒤를 따르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한 복을 받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청개구리 마냥 어깃장을 놓고 그 정반대로 살고 있습니다. 나 자신, 가정, 사회, 교회조차도 Ego가 우선이고, Self는 뒷전입니다. 그 결과 나 자신이 비참합니다. 우리 가정이 비틀거립니다.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나 자신이 행복하려면, 우리 가정이 굳게 서려면, 우리 사회가 질서를 찾기 위하여 거듭나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거듭남이란 육체적인 나(Ego)를 뒤로하고, 영적인 나(Self)를 앞세우는 삶을 말합니다.

5. 마치는 이야기
거듭나야 할 이유를 몰라서 이제까지 거듭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듭나고 싶었지만 거듭나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거듭날 수 없었는가?. 물과 성령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이제까지의 삶을 바르게 바라보십시오(正見). 그리고 가슴을 베는 저리는 회개가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거듭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 (3)

본문/ 요3:1-15
1. 들어가는 이야기
   No Cross, No Crown(십자가의 고통이 없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다).
   No risk, No money(투자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없다).
   No pay, No service(대접을 받으려면 그에 합당한 돈을 내야 한다).
   Noblesse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의 사회적 의무).
위에 열거한 말들은, 피와 땀과 눈물 흘리는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데,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육체적 태어남에도 해산의 고통이 있듯, 영적 태어남인 거듭남에도 해산의 고통이 있습니다.

2. 거듭남에 따르는 고통이 무엇인가?

첫째. 참 나(眞我/ Self)를 찾으려는 구도자의 고통입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닙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무슨 일을 저지르는 그 나는 참 나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르는 그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나>가 참 나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씀한 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그 나 롬7:21-23>입니다.

그 나를 참 나, 眞我, Self, 마음, 靈魂, 하나님 나라, 구원, Spirit, 거듭난 나, 새로운 존재(New being), 새 사람, 얼 나, 속 사람(Inner being), 영생, 생명, 道, 진리, 등으로 부릅니다. 그 참 나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求道입니다. 이 구도의 길은 내가 생각하는 나(Ego)를 부인해야 하는 좁은 길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좁은 그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참 나(眞我/ Self)의 마음으로 자기의 삶을 직시하는 고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실수, 잘못, 약점, 단점, 오류, 죄, 허물,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든 자기 탓이 아니라, 조상, 학교, 사회, 가난, 집안 형편, 남편, 아내의 탓으로 돌립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이유를 들어보면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도록 허락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는 말은 그럴 듯합니다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천에서 용이 납니다.

그러므로 모든 잘못된 삶의 원초적 책임은 자기 자신입니다. 모든 책임이 내 탓임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 없이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

셋째. 잘못된 삶을 뜯어고치는 고통입니다.
마약, 술, 담배, 도박, 범죄, 향락 생활을 끊으려하면, 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금단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습관, 행동, 생각을 뜯어고치는 데도 엄청난 인내와 고통이 따릅니다. 이제까지 익숙했던 생활 방식, 행동 습관의 그 두꺼운 껍질을 깨뜨리지 않으면,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새가 될 수 없습니다.

군대에서는 입대한 청년들에게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가혹한 훈련을 시킵니다. 사회 있을 때의 습관을 싹 뜯어고쳐, 군대란 새로운 공동체에 적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거듭남에도 잘못된 옛 습관을 뜯어고치는 훈련의 고통이 따릅니다.

3. 훈련의 원칙은 무엇인가?

첫째. 단순성의 원칙(Simplicity)입니다.
한꺼번에 다 뜯어고치겠다는 생각은 망상입니다. 나의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 가운데 단 하나를 선택하여 뜯어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혹은 단 하나의 좋은 습관을 선택하여 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선택한 그 단 하나의 습관을 고치거나, 새로 자기 것으로 하다보면 그밖에 다른 것들도 서서히 지각 변동을 일으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둘째. 집중력의 원칙(Concentration)입니다.
훈련은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하는 것은 훈련이 아닙니다. 그저 흐르는 물은 힘이 없습니다. 물을 한 곳에 모아 저장하였다가 일시에 터쳐 놓으면 엄청난 힘을 내는 것처럼, 훈련은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강도 높게 집중하여 실시하여야 합니다. 행동심리 학자들의 말로는 하나의 행동이 습관으로 정착되려면 21일 동안의 집중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셋째. 계속성의 원칙(Continuity)입니다.
거듭남의 훈련에는 졸업이 없습니다. 끝마침이 없습니다. 이미 한 훈련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훈련하여야 합니다. 계속성의 원칙입니다.

4. 마치는 이야기
하나님은 사람을 흙과 생기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이란 육체와 영혼이 모두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체만을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생기인 영혼을 외면하고 살고 있습니다. 거듭남이란 하나님이 주신 그 태초의 생기가 다시 운행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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