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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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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복
본문/ 마5:3
1. 들어가는 이야기
산상수훈(the Sermon on the Mount, 마5:1-7:29)은 하나님 나라의 대헌장(Magna Garta of kingdom of God)입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이 번 주일부터 산상수훈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말씀의 샘물 고전예화 396 산상수훈의 해석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본문 해석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개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공동번역)
*虛心者 福矣因天國乃其國也(허심자 복의인천국내기국야)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res is the kingdom of heaven(NIV)
*Fortunate are humble in spirit for theres is kingdom of heaven(anchor)
우리는 福(복)이란 말을 들으면 얼른 동양적 의미에서 五福(壽,富,貴,多男,考終命)같은 물질적인 복, 깊이 생각하여 어떤 분야에 뛰어난 특별한 재능(달란트), 좀 더 깊이 생각하여 성령의 각종 은사를 생각합니다만 본문에서의 복은 그런 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서로운 징조(the good omens), 행운, 운이 좋은 사람, 정도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앵커 바이블 주석은 祭儀的인 Blessed(축복 받다)라는 단어보다 Fortunate(다행스러운 행운이 있는)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가난하다‘는 말은 희랍어 ”ptochoi/프토코이“를 번역한 말인데 이 말의 의미에는 가난하다(poor) 외에도 무엇 무엇 때문에 고통스럽다(afflicted), 무엇 무엇에 대하여 겸손하다, 비천하다(humble) 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희랍어 프토코이(가난하다)는 단순히 물질적 가난을 의미하던 말인데 히브리 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한 70인 역 번역자들이 이 말의 의미를 확대 재해석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첫째, 물질적인 가난. 둘째, 물질적 가난에서 오는 고통, 사회적 부자유와 억압. 셋째, 나는 가난(프토코이)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시69:29)에서 처럼 영적인 문제에도 이 가난이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말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란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여 고통스러운 사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난해서 안타까운 사람, 하나님의 응답을 겸손히 기다리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비천함을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사람(=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복이 무엇인가?
첫째.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잘 먹지 못해서, 잘 입지 못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어서,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천대받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행동합니다. 예로부터 큰 부자는 하늘이 내지만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고, 절제하여 가난을 극복합니다.
영적 가난도 그러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난은 누구나 쉽게 깨닫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가난은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그 영적 가난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물질적 빈부를 떠나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하였습니다(시49;20). 그런데 스스로 영적 가난을 깨닫고 느끼는 사람은 그 깨달음 자체만으로도 멸망치 않고 영적 부자가 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이 있기에 다행스럽다(fortunate)는 말씀입니다.
둘째. 영적 가난을 깨달은 사람은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고 하신 것처럼 영적 능력의 근원을 알기 위하여, 만나기 위하여, 구도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나섭니다.
미구엘 드 우나무나(스페인 작가)는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데 있어 열정도, 마음의 갈등도, 불확실성에 대한 의심도, 심지어 아무런 좌절도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라 하는 관념적 허상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구도적 행동이란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 얍복강의 야곱, 감옥에 갇힌 요셉, 갈멜 산의 엘리야, 욥의 좌절,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절규하는 바울 사도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셋째. 영적 가난을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 뵙고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 심리적, 사회적, 인습과 굴레로부터 자유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하신 그 자유 말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그 자유 말입니다. 이 자유는 될 대로 되라는 막가파식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기쁨 가운데 의미 있는 행동을 마음 대로하는 자유입니다. 나는 이 보다 더 큰 축복을 알지 못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이란 말을 중국 성경은 “虛心者(마음을 비운 사람)” 이라고 번역한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虛心者, 마음을 비운 사람이 무엇입니까? 그 어디에도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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