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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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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긍휼히 여기는 사람의 복
본문/ 마5:7
1.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산상수훈의 팔복 가운데 다섯 번째 복, “긍휼히 여기는 사람의 복”을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선 본문을 여러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개역)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공동번역)
*矜恤者福矣, 因其將見矜恤也(긍휼자복의, 인기장견긍휼야)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NIV)
2. 본문 해석
矜恤(긍휼=mercy=헤세드=에레오스) :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자비롭게 대한다, 은혜롭게 대한다, 불쌍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긍휼히 여김”과 연속선 상에 있는 말씀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인애(mercy)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19:17).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18:23-35),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눅10:29-37), 탕자의 비유(눅15:11-32),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16:19-31)의 초점도 긍휼히 여기는 삶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삶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이 모든 긍휼히 여김의 至高無雙한 최상 최고의 모델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이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8:8). 기독교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긍휼 하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3.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첫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데서부터 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항상 넓은 길로 다는 나입니다. 항상 나 중심으로 사는 나입니다. 항상 썩어질 땅의 것만 추구하고 사는 나입니다. 항상 죄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죄 짓고 사는 나입니다. 항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 쫓아다니는 나입니다. 그런 내 삶의 결과는 지옥입니다.
그런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내 죄를 씻으시고 의롭다 하심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깊이 절절이 깨달음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솟아납니다.
둘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易地思之(역지사지)하는 데서부터 나옵니다. 다른 형편에 있는 사람과 나 자신을 동일화(self-identification) 할 줄 아는 삶의 자세에서 비롯합니다. 예수님이 “양과 염소의 비유”의 비유에서 말슴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양들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자기를 일치시킨 사람들이고, 염소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자기를 분리시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훈련을 통하여 계발되고 강화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 러시아의 한 백작부인이 따뜻한 마차 안에서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실정을 그린 소설을 읽으면서 “어쩜 이럴 수가! 어쩜 이럴 수가!”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택에 도착하여 백작 부인이 마차에서 내려보니 가난한 마부는 추위에 얼어 죽었더라는 겁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 “눈에 익고 손에 설다” 고 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깨어 있지 못하였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삶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연습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고 배움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삶도 배워야 합니다. 배우면 알게 되고, 알고 나야, 긍휼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4. 마치는 이야기
하남 시청 복지과 기초푸드뱅크 직원 허태영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원 봉사자 가운데 내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준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얼마가지 못하고 도중하차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수평적 마인드(self-identification)를 가진 사람들은 오래 봉사한다. 나도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분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받는 복이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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