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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24:1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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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2008.4.6/열린교회/김필곤 목사
혜촌 김학수 화백의 간증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1.4 후퇴 때 월남할 때 아내가 여비를 빌리러 간 사이에 차가 출발하여 결국 아내와 2남 2녀를 두고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지금까지 58년 동안 홀로 살며 교회를 개척하여 장로님으로 시무하며 한국화를 그리며 후학들을 가르쳤답니다. 사람들이 재혼을 종용할 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내가 재혼하지 않는 것은 내가 신앙인으로 진실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결혼할 때 평생을 그 사람과 살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더구나 나 혼자 월남했으니 어린애들과 고생이 무척 심할 텐데 내가 어떻게 재혼하겠습니까? 난 하나님과의 약속을 배신할 수 없어요.”
그분은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하며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변화된 것은 중병을 앓고 난 후라고 합니다. 아내와 자녀를 두고온 죄책감으로 온종일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하다 보니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고 의사는 극심한 신경쇠약이라고만 할 뿐 정확한 처방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약이란 약은 다 사용해봤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답니다. 병명도 모른 채 2년간 사경 속을 헤맸는데 그때 김화백은 무조건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병석에서 일어나 신앙의 거듭남을 체험한 그는 새 출발을 했답니다. 세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두고온 아내와 자식들 대신 홀로 남쪽로 내려온 실향청소년들을 거두어 친자식처럼 공부시키고 미국유학까지 보내는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했답니다. 그래서 얻은 제자가 무려 32명. 이들 중 목사가 11명이 나왔고 교수 사업가 등 사회적으로 이바지하는 인물들을 길러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지난 89년의 세월은 은총의 시간이었다. 어느 한 토막이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惠)다.” 화실 이름을 ‘삼락당(三樂堂)’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의 인생의 세 가지 감사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세 가지 감사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것’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것’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매순간 나를 지키고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던 89년 봄. 40년만에 한 재미 교포 제자의 도움으로 가족들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노인이 된 아내의 모습과 장성한 아들 딸 그리고 손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흘 후면 돌아오리다”라는 남편의 말만 믿고 아내 역시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살았다고 합니다. 자신은 숱한 재혼 제의를 거절했지만 아내만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길 바랐다고 합니다. 그 아내의 사진을 보고 부부의 초상화를 그려 거실에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 그 얼굴을 보고 “여보! 오늘도 주님의 은총 안에서 건강하오? 우리가 함께한 11년은 짧았지만 행복했다오. 그러나 당신을 그리워한 57년은 난 늘 죄인이었다오. 하나 된 조국에서 당신과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생전에 그런 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하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내 아버지 집, 하늘나라에서 우리 함께 만날테니 그리 슬퍼하지 마오. 지금 육친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영혼은 함께 있는 듯하오. 늘 건강하시오.”
저는 이 분의 간증을 읽으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한 평생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속 깊은 감동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바보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적당히 어울리며 타협하며 살지 뭐 그리 청승을 떠느냐는 것입니다. “열녀 났네, 열녀나?”라며 비아냥거립니다. 소신이나 지조가 밥 먹여 주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육신이나 생육신, 이순신, 사군자, 청렴결백한 선비, 춘향전, 논개 등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지조 있는 행동 때문입니다. 인생의 중심 주제가 있고 그 것을 일평생 지켰기 때문입니다. 비록 목숨을 잃는다 해도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그들의 지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도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인생의 중심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며 산 사람입니다. 110살의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사신 여호수아가 이제 죽음을 앞에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23장에 나온 첫 번째 유언에서 (1)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힘써 행하라고 했습니다.(6) (2)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7) (3)하나님은 친근히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8-11)
그리고 또다시 세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다시 마지막 유언을 합니다. 오늘 24장의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에 들어 와서 제일 먼저 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한 곳(창12:6,7) 세겜(1),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돌아와 모든 우상을 묻었던 곳(창35:4),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낭독하던 곳, 바로 그 역사적인 땅 세겜에서 여호수아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1. 하나님만 섬깁시다.
여호와만을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선포합니다.
당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 가지 우상을 말합니다. 어느 시대에 살든 어느 곳에 살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영리한 동물일지라도 동물들은 섬기지 않습니다. 원숭이가 영리하지만 원숭이가 무엇을 섬기기 위해 돌을 쌌거나 리본을 나무에 달아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1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섬겼는가 14절을 보십시오.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겼던 신입니다. 15절에는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과 아모리 사람의 신을 말합니다. 정리하면 세 가지 우상입니다.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 애굽에서 섬기던 신, 아모리 사람들이 섬기는 신”입니다.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은 바로 아브라함이 부름 받기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믿는 우상을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신들을 모신 신전인 판데온(Pantheon)을 지역마다 세워놓고 남신(男神)과 여신(女神)들을 섬겼습니다. 이 죽은 영혼에게 괴롭힘을 받지 않으려면 부적같은 것을 몸에 지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악신을 물리쳐 주고 복을 준다고 믿엇습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의 부인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 도망하고 라반이 그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창31:19,34). 그것을 소유하면 가족이 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가족 지상주의 우상입니다. 가족이 잘 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가족만 챙기는 현상입니다.
애굽의 신은 다신교입니다. 그 중에서도 태양신인 라(Ra)와 나일강, 오시리스가 가장 숭배되었습니다. 라신은 정의, 진리,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고 파라오는 라의 아들이므로 신으로 간주하여 미라를 만들고 피라미드를 축성하는 등 파라오의 죽음을 믿지 않고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파라오는 살아 있는 신이 된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권력 지상주의 우상입니다.
아모리 사람의 신은 가나안 신으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요즈음 말로 말하면 풍요와 성의 우상입니다. 물질 지상 주의 우상, 쾌락 지상주의 우상입니다. 이런 시대정신을 거스리고 하나님만 섬기고 산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나 시대 마다 그 시대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이 있습니다. 50,60,70년대 우리 나라의 시대정신은 무엇보다 반공이었습니다. 80,90년대는 민주화였습니다. 2000년대에는 경제 성장이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이런 시대정신을 거스르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입니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제 1 계명이 "부자가 되어라"입니다. 부와 번영입니다. 물질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물신주의입니다.
제 2 계명이 "유명해 지라"입니다. 이름을 날리고 인기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신이 되는 자기 중심 주의입니다.
제 3 계명이 "지배하라"는 것입니다. 통제권과 지배권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권위와 지배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힘이 곧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성과 지혜가 신이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 4 계명은 "미를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쾌락과 감각의 만족이 인생의 중심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매력, 육체적인 건강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 정신에 흡수되지 않고 홀로 지조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동화되지 않고 고고하게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말씀합니다.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 고백이 저와 우리 성도님의 고백이 되어야 될 줄 압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라”는 말씀을 우리 삶의 평생 중심 주제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권력을 잡는 것도 여호와를 잘 섬기기 위해, 가족이 잘되는 것도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유명해지는 것도, 힘을 얻는 것도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여호와를 잘 섬기기 위해로 인생의 중심 주제가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주인이 둘일 수는 없습니다.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맘몬 즉 재물과 권력의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양자 택일을 해야 합니다.(왕상18:21; 마6:24; 고후6:15-18) 결단의 시기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전3:1). 이 시간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까?
14절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그 앞에 우리가 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유를, 근거를 말씀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선택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2-4).
이스라엘 백성은 특별히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선택받을 만한 무슨 조건이 있어 선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2절을 보십시오. 강가에서 그의 아버지 나홀이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강 건너편 그 이방신을 섬기는 자리에서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는 죄인이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었” 습니다. 우상 풍습과 세속적 생활의 현장에서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무자한 가운데 기적을 베풀어 이삭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입니다. 이삭에게 야곱과 에서가 있었습니다. 그중 야곱을 선택하였습니다. 야곱이 선택받을 만한 무슨 일을 하여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사기꾼이고 욕심장이었던 야곱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선택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청와대에 부름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임 대통령을 섬깁니다. 한 여인이 갑부에게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몸은 그 집에 살면서 마음은 늘 옛 애인을 사모하고 섬깁니다.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직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를 위해 일합니다. 이런 경우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2) 구원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5-7).
그들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때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이란 지도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바로의 권세 하에서 자유케 하기 위해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의 신들과 통치자들을 심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자 재앙을 통하여 애굽의 장자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은 죽지 않고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에서 인도하여냈습니다.
애굽 군대가 추격하였습니다. 그 때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흑암으로 막으시고, 또 홍해를 열어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수많은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3)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복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7절하-13절)
40년 동안 광야에 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인도하였습니다. 아모리 사람들을 손에 붙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점령하게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절시켜 주었습니다.
인도하셔서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8). 하나님이 가라는 데로 갔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오는가 의심하고 원망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은 승리케 하였습니다. 인도하신 하나님은 능력의 손길로 승리케 하셨습니다. 이 인도하심과 승리의 역사는 가나안에 도달할 때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홍해를 만나면 홍해를 갈라주십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으면 반석을 갈라서 생수를 주십니다. 낮의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시려고 구름기둥을 세워주시고 밤에 추위와 어둠을 이기게 하시려고 불기둥을 세워주십니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메추라기를 몰아와 코에 냄새가 나도록 먹여주셨습니다. 쓴 물을 만나면 단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저주하는 자를 막으시고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9-10; 민22-24장) 모압 왕 발락이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지 못하도록 선지자 발람을 초대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는 길에 천사를 보내어 나귀로 발람을 깨닫게 하여 저주하러 간 발람을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게 하였습니다.
가나안 칠족을 붙여 몰아내 주었습니다(11)
왕벌을 통하여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을 녹아 움직일 수 없도록 역사 하셨습니다. (12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사람들 앞에 거대하도록,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보호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복을 누리게 하였습니다(13).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조건이 있어 우리를 선택하고 구원해 주시고 인도하고 보호하며 마침내 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인류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는 발명을 했지만 인생의 중심 주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루 일한 시간은 평균 20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밀러는 그의 저서 『인류에 은혜를 끼친 토마스 에디슨』이란 책에서 “만약 에디슨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다면,그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그 길을 인도해 주는 힘이 없었다면,그는 결코 과학과 수학의 분야에서 그렇게 정밀한 두뇌를 소유할 수 없었을 것이며,결국 우주의 오묘한 비밀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이라고 했습니다. 오렌지에 있는 그의 실험실에는 그가 쓴 한 편의 좌우명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나는 전지 전능하시고,만유에 충만하시며 높고 지존하신 그분,하나님의 존재를 굳게 믿는다.”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 윤흥길씨가 있습니다. 80년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분입니다. 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면류관'으로 등단한 후 83년 중편 `꿈꾸는 자의 나성'으로 한국 창작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에 장편 `완장'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소설가입니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기독신앙을 가졌으며 그는 초등학교 시절 무허가 판잣집이라는 이유로 그의 집이 강제 철거를 당하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한 이후 세상과 불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현실에 불만족과 실망을 느낀 나머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가출을 단행했습니다. 그의 가출벽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마지막 출로 기록된 그날은 추운 겨울 새벽이었습니다. 가출 며칠 만에 집을 찾은 그는 어머니 몰래 담을 넘어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가 방에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그는 집을 나간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고통을 받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출벽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공군에서 비행기 정비사로 복무하던 시절 격납고에서 작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집체만한 비행기가 눈에 나타났습니다. 직감적으로 사고임을 느끼고 몸을 옆으로 굴렸답니다. 고장난 비행기가 추락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살아났습니다. 사고 며칠 후 어머니로부터 "언제나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는 사고 당일 쓴 편지임을 알았답니다.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또 한번은 84년 독일정부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열리는 제3세계 문화축제에 참석하고 있을 때 연이은 과로로 왼쪽 반신마비증세가 왔답니다. 귀국 후 치료를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어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병원을 다녀오던 길에 불현듯 그날이 수요일이란 것을 깨닫고 택시를 교회로 향했답니다. 예배당에 들어선 그는 맨 뒤에 앉아 `십자가를 내가 지고'라는 찬송을 불렀답니다. 마비증세로 발음이 잘 안됐지만 목청껏 부르자 통회하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평소 눈물이 없던 그는 통곡을 하며 찬양을 했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졌고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의 몸 치료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때 그는 "앞으로 제가 똑똑한 발음으로 크게 찬송을 부를 수 있게 해주시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문서선교에 힘을 쏟겠다"고 서원했답니다. 그 후 건강을 회복한 그는 그때 서원한 것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소인인 것 같고 무능력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시대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10대 2이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 10지파에 비해 유다는 작지만 그들은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소수의 기드온의 용사, 850명에 대항하는 엘리야, 작은 무리이지만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다니엘과 세 친구, 거대한 세속 물결에 대항하는 세례요한, 예수님의 제자들 작은 무리이지만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3.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겠습니까?
1)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14).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형식적인 율법준수나 종교적 의식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실’(sincere)이라는 말은 ‘없는’(sine)이라는 라틴어와 ‘밀랍’(cere)이라는 라틴어의 합성어입니다. ‘밀랍이 없는’이란 뜻입니다. 옛날 로마 사람들은 대리석 조각품을 만들었을 때 실수로 정을 맞아 코끝이 떨어져 나가면 버리기가 너무 아까우니까 대리석 조각을 잘 갈아 가루로 만든 뒤 그것을 밀랍에 반죽하여 떨어져 나간 부분에다 살짝 붙여서 팔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면 콧잔등이 스르르 녹아 땅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실’은 눈가림이 없이 순수한 것을 의미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처럼 우리는 개인적인 명예나 지위나 그 어떤 이해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 그분으로 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거짓으로 섬기는 체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2)모든 우상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겨야 합니다(14).
혼합주의 신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시길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양다리 걸치기를 하며 동가숙 서가식으로 결혼 생활한다면 행복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3)결단하며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15-18).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강제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강건너편의 신이든 아모리 땅의 신이든 섬기려면 섬기라는 것입니다. 섬길 자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떤 신을 섬기든 여호수아와 그 가정은 여와와를 섬기겠다고 결단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데스 바냐에서 10명이 부정적이었지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민14:9) 수에 흔들리지 않고 군중심리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단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18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정녕 여호와만 섬기겠나이다.” 24절을 보십시오. 증거를 세우고 오직 일편단심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다짐합니다. 백성들의 약조(19-28)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여호수아 앞에서 약조합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로 하여금 재차 다짐을 받은 후(19-24) 비로소 언약을 세우고(25) 자신이 죽은 후에도 남아 있을 기념비를 세워 증거를 삼았습니다(26-28)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성실과 진정으로 모든 우상을 제거해 버리고 섬겨야 합니다. 결단하며 일편단심으로 변함없이 변질되지 말고 섬겨야 합니다.
사울은 변질되었습니다. 솔로몬도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부정한 유혹이 손짓 앞에서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신앙이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그 무서운 핍박 앞에서도 변절되지 않았습니다.
스패훠드씨는 변호사요 법리학 교수요 무디 교회 회계 집사입니다.
시카고 대 화재 때에 큰 손해를 보고 그로 인하여 아내가 병들어서 의사로부터 환경을 바꾸어 보라는 권면을 받고 프랑스로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무디교회도 불타서 그 건축 문제로 인하여 두 딸과 아내만 먼저 보내고 자신은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딸들이 탄 여객선이 영국의 철갑선과 대서양에서 정면충돌하여 침몰하였습니다. 스패훠드 부인은 갑판으로 두 딸을 이끌고 나와 기도 하던 중 배는 침몰하고 두 딸은 목숨을 잃고 부인만 구조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스패훠드씨는 딸들을 잃고 고통 속에 있을 아내를 데리러 가기 위하여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마침 두 딸이 죽은 바다 위를 지나게되자 그는 선실로 들어가 아픔과 슬픔으로 인하여 밤이 새도록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새벽 세시쯤에 갑자기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두 딸이 어려서 죽었지만 그들은 기도하며 죽었으니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것이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의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위로해주고 도와줄 아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딛고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내 영혼이 평안하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편하다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우리 한 평생 살면서 인생의 중심 주제를 무엇으로 삼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1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2008.4.6/열린교회/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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