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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향한 발걸음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826 추천 수 0 2010.10.20 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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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7-16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7·08·11

논산 훈련소에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훈련장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곳에서 훈련을 받다가 고속버스가 지나가면 얼마나 집 생각이 나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지금도 군에 있는 우리 아들들은 하루도 집 생각을 잊을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군대생활을 힘들게 한 사람들은 제대한 후 자기가 근무했던 부대가 있는 곳은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에 힘들었고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그쪽을 보고는 소변도 보지 않겠다고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적대를 당했거나 고통을 당했던 곳에는 가기를 싫어합니다. 당신이 가기 싫어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장 가기 싫어했던 곳이 어디였는지 아십니까? 그들이 가기 싫어했던 곳은 유대 지방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들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면 비교적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셔도 예수님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 지방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시골뜨기라고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적대했으며, 심지어는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유대인들은 몇 번이나 돌로 예수님을 치려고 했습니다. 유대 지방으로 가면 늘 분위가 살벌하고 심한 증오와 적대감과 벽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유대 지방으로 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유대 지방으로 가시려는 주님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유대 지방으로 가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가자 하시니”(6-7절)
  유대로 가자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몹시 난처하고 싫어했습니다. 유대는 늘 예수님을 미워하고 적대하며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유대를 떠나올 때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예수님은 또 다시 그곳으로 가겠다고 하시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8절)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급한 전갈을 받으셨을 때도 그곳으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였는데도 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안심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유대로 가자고 하시니 제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만류하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12절)
  제자들은 나사로가 그렇게 잠이 들었다면 이제 병이 나을 것인데, 왜 구태여 그곳으로 가시려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병이 들어 열이 나고 통증이 심해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깊이 잠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면 한결 몸이 좋아집니다. 지금 제자들은 나사로가 잠들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나사로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기 때문에 갈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13-15절)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 살리러 가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주님께서 유대로 가시겠다는 뜻을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16절)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유대로 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정말이지 그곳으로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굳이 유대로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들으면 죽는 것까지 주님과 함께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처럼 들리고, 또 어떻게 보면 속상하고 열을 받아서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이날까지 온전히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직업과 가정과 사적인 생활을 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보람 있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로부터 특별교육을 받았습니다. 엄청나고 놀라운 이적들을 직접 보았으며, 심지어는 그 이적을 행하실 때 쓰임을 받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이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전도하러 갔을 때는 예수님처럼 귀신을 쫓아내며 이적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들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들은 이제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단단히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유대 지방으로 가야 했습니다. 며칠 전에 그곳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었습니다. 이번에 가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제자들과 비슷한 일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전에는 하다가 싫으면 그만 두고 도망가 버리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이 좀 자랐기 때문에 쉽게 거절할 수도 없습니다. 꼼짝할 없이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믿음생활에 기쁨과 감격은 사라지고 부담과 원망과 불평만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을 버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일만 시키시는지 야속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제자들의 심정이 그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대로 가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위협과 조롱을 당하며, 독기를 품은 그들 앞에 서는 것이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로 가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만류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9-10절)
  ‘낮이 열두 시’라는 말은 지금이 낮 12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해가 뜨는 시간부터 해가 지는 시간을 낮으로 여겼습니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의 시간은 매일 다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가지를 열둘로 나누었습니다. ‘낮이 열두 시’라는 말은 낮은 열두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적개심을 품고 죽이려고 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지금이 낮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낮은 활동하는 시간이며, 밤은 활동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낮은 하나님께서 주신 때, 즉 기회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낮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시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일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전혀 좌우되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적대하며 죽이려 한다 해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는 예수님께 전혀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적대감과 살기를 품고 있는 유대 지방으로 가시면서, 지금은 낮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낮’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허비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명을 가진 자는 그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는 아무도 해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9절) 그러므로 사람들의 반응과 인기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세상적인 기준과 방법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다 찬성하고 좋아하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이상적인 일이냐를 따집니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이익이 되고 편한가를 따집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인기가 없거나 얻을 것이 없다 해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낮입니다. 우리는 아직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처럼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가지고 주신 사명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유대로 가야만 하는 이유
  

제자들은 유대로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유대로 가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단지 병들어 있는 나사로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나사로의 집에 문상을 가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도 중대한 일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은 그의 영원한 운명에 관계되는 일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인류의 영원한 운명에 관계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유대인들이 적대감을 품고 죽이려 한다 해도, 제자들이 그토록 죽기보다 그곳에 가기를 싫어한다 해도,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그곳에 가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주님을 따라서 그곳에 가야만 했습니다.
  언젠가 동창 한 사람과 연결이 되어 통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동창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쭉 말해주더니, “그래도 네가 제일 낫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은 저를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너는 역시 목사가 되었구나!”라고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보다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명보다 인생을 더 복되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명 따라 살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싫어서 그만 두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 영혼을 건지는 일에 어떻게 나의 감정과 기분을 개입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인데 어떻게 기분이 좋아야만, 마음이 내켜야만 할 수 있겠습니까? 내 기분과 감정은 위대한 복음과 영혼 구원이라는 절대적인 사명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고 성품도 대단히 강직하신 분이었습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죽어도 하기 싫어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전도하는 문제에서만큼은 철저히 예외였습니다. 온갖 조롱과 무시를 당하면서도 전도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나도 위대하고 중대한 사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도대상자를 정하고 전도하는 일에 너무나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어떤 핑계도 우리가 전도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뭐라고 변명하시겠습니까? 전도하는 일이 부담이 되십니까? 기분이 내키지 않습니까? 그래도 해야만 합니다. 죽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도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일 것입니다.

거기 계시지 아니하신 것을 기뻐하심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들어 위급하다는 급한 전갈을 받으셨을 때 나사로를 고쳐주러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버렸는데, 그제야 나사로에게로 가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15절)
  왜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갈 때 주님께서 거기 계시지 않으셨던 것을 기뻐하셨을까요? 만일 그 때 주님께서 그곳에 계셨더라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나사로를 고쳐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셨다면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은 크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견고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면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더 견고해지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것 때문에 믿음만 더해진다면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믿음이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이며, 믿음으로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6-7)
  오늘 예수님께서 육체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유익합니다. 왜 그럴까요? 만일 예수님께서 육체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는 사소한 일들까지 가지고 가서  당장 해결해주시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영 어린 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육체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면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우리의 문제는 더 어려워지기도 하고, 실패로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더 어려워진 일들을 놀라운 능력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과연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전능하신 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와 육체로 함께 계시지 않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믿음으로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흔들림 없는 불굴의 믿음으로 자라게 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회를 하면서 몇몇 성도에게 정말 어려운 부탁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는데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렵게 꼬였던 문제가 은혜롭게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그 성도들의 아름다운 순종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낮에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망각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만 몰두하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영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색하고 맘이 내키지 않는다고 그 영혼을 외면하시겠습니까? 도마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단하면서 도마처럼 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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