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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점을 돌파하는 신앙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345 추천 수 0 2010.10.20 19: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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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17-27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7·08·18

당신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가장 선하게 인도해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이해할 수 없게 전개되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는데 상황이 절망적으로 끝나버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일까요? 그런 상황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사랑하셨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그를 고쳐주시기 위해서 즉시 가시지 않고 이틀이나 지체하셨습니다. 그런 사이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후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는 죽은 나사로를 장사지낸 지 나흘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리 쯤 되매 많은 유대인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17-19절) 나사로의 집에는 문상 온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마리아와 마르다는 매일 비통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던 것입니다.

마르다의 신앙의 한계점
  

그렇게 나사로가 죽어서 이미 장사를 지낸 후 예수님께서 오시자,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후에야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 이 말은 마르다의 신앙과 그녀가 가지고 있던 신앙의 한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거기 계셨더라면 나사로를 고쳐주셨을 것이기 때문에 그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사로는 죽었고 모든 것이 끝나버렸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지만 이제 와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마르다의 신앙의 한계였습니다.
  당신은 마르다의 이 말에 공감하십니까? 예수님께서 계셨더라면 고쳐주셨을 것인데, 안타깝게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아서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죽어버렸는데 이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을 믿고 기도했는데 일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당신도 이런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믿음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실까요? 이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마르다의 믿음을 한 번 더 살펴봅시다. 마르다의 믿음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면 나사로의 병이 나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아서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애석하게도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후에야 오셨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마르다는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믿음이 필요한 때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 더 이상 구할 것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믿음의 한계입니다. 성도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는 목사로서 저는 항상 안타깝고 절박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개 함께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응답해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전혀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응답을 받지 못했는데도 어떤 성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완전히 실망하고 낙심해버립니다. 심한 경우에는 신앙의 공황상태에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전혀 믿음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르다의 믿음은 좀 나았습니다. 마르다는 이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뭔가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2절) 사실 마르다의 기대와 소망은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수님께는 어떤 대책이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마르다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3-2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나사로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뭔가 놀라운 은혜를 얼마든지 주실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믿음입니까? 믿음으로 기도했으나 전혀 응답받지 못했을 때,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었는데 기대했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을 때도,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으로는 전혀 믿지 못했습니다. 마르다의 신앙도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로하시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또 다른 은혜를 얼마든지 주실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전혀 믿지도 못했고 기대하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은 넘을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 이 말씀은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영원히 살 수가 있겠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죽음이라는 한계점 앞에서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에게 이 말씀은 너무나도 엄청난 말씀이 아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도 다 죽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믿는 자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주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도 죽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가 어떻게 살며,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기서 주님께서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영생은 우리가 죽은 후에 천국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어도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은 내세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누리는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영생을 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말한 부족함이 없는 삶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당신은 지금 이 풍성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세상의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줄 알고 그것들을 쫓아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성도들은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즐기려고 합니다. 물론 사업이나 직무상 불가불 그렇게 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당신의 인생이 더 즐겁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이제 생활에 여유가 생겼습니까? 하나님께 더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에 더욱 충성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비하면 세상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과거에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할 때 배설물과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상)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더욱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힘입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영생, 즉 부족함이 없고 풍성하며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목적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며 샘플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얼마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며 승천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죽으실 것이고, 제자들을 떠나실 것입니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은 이 일에 대해 제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로 늘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에게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가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갈 때 그 자리에 계시지 않은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요11:15)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고, 나사로는 결국 죽었습니다. 그 후 주님께서는 그곳에 가셔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와 육체로 함께 계시지 않는 가운데서 우리가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도와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앞으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함께 계시지 않아도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신 후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감화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함께 계시지 않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에 대한 증거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의 주인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때까지 제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 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의 슬픔과 절망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이 말씀은 우리도 주님처럼 다시 살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살리셨던 나사로도 결국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의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역시 다시 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살아난 후 나사로처럼 또 죽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모든 죽은 성도가 부활할 것이며, 그 이후로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한계점을 돌파하는 믿음
  

우리는 예수 믿고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데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응답되기는커녕 일이 더 어려워질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주위의 안 믿는 사람들도 우리를 조롱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신앙의 한계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후 나흘이나 지난 후에야 오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힘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여기가 그녀들의 한계점이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믿음을 지켰는데, 그것 때문에 당신만 손해를 보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마다 나와서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꼭 도와주실 줄 알았는데 이제 더 이상 어떤 가능성도 없게 되어버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무너지는 성도가 많습니다. 이 지점이 우리 신앙의 한계점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종종 이러한 한계점까지 몰고 가실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 한계점을 돌파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죽을 때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계점을 돌파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마지막까지 가지를 못합니다. 기도하지만 응답이 안 될 때를 대비해서 나름대로 다른 대책을 강구합니다. 타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죽음의 자리까지 갔습니다. 그랬더니 사자굴 속에서도 죽지 않고 불 속에서도 타죽지 않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면 죽는다고,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한계점을 돌파하는 길입니다. 한계점을 돌파하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우리는 부활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몽골 선교사로 떠났던 이용규 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선교님은 딸이 태어났을 때 어린 아들 동연이를 데리고 사모님이 부탁한 유아용품을 사러 갔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고른 후 아이를 찾았더니 뭔가를 뒤로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색칠공부 책을 보이며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 이거 안 사주셔도 돼요. 그냥 보기만 하세요.” 아이에게 그 책을 사주었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용규야, 네 아들 동연이가 ‘아빠, 이거 안 사주셔도 돼요’라고 말했을 때 너는 어떤 마음이었니? 그게 바로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란다.” 선교사님은 그저 흐느껴 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얼마나 더 그러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 그 믿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믿음과 생활 속에서 적용하는 믿음이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나약하고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된 원인입니다. 이제부터 믿음으로 하나님만 굳게 의지하고 갈 데까지 가도록 하십시오. 내가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뢰하십시오. 죽게 되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이제 우리 믿음의 한계점을 돌파해나갑시다. 그 믿음으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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