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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무엘상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307 추천 수 0 2010.10.21 18: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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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상22:3-5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상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삼상 22:3-5)

 

< 상처를 극복하십시오 >

 1984년 여름, 저는 하나님을 새롭게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해 7월 21일부터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그때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의 은혜가 휘몰아쳤는데 그런 현상이 거의 반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마치 성령님이 영혼을 관통하듯 임하는 것 같았고 기도 중에 마치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새벽마다 은혜와 기쁨이 충만해서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새벽 5시 45분쯤에 새벽예배가 끝나면 개인기도 시간을 가지는데 기도를 마치고 7시쯤 집에 돌아올 때는 몇 백 명의 새벽기도 참석자 중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눈물로 옷깃을 적셨지만 나중에는 새벽기도를 갈 때 아예 두툼한 휴지를 준비해 갔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날 때쯤에는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된 휴지가 거의 매일 제가 기도하던 교회 의자 위에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처럼 눈물이 넘쳤기에 사람들 보기에도 창피해서 “이제 눈물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계속 성령님께 압도되어서 아침마다 영혼을 쏟아 부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후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신 지극한 위로와 평강이 마음속에 넘쳤습니다. 그때 마음의 상처가 씻겼고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사라졌습니다. 도저히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도 성령님이 임하면 말끔히 치료됩니다.

 살다 보면 성도들도 때때로 죄에게 집니다. 그 죄는 어떤 특별한 죄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는 바로 그 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을 가지며 그때마다 새로운 결심과 서약을 합니다. 그래도 또 그 죄에게 지면 그 순간만은 절망합니다. 물론 주님이 그 죄도 용서해주시지만 자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하나님은 그 죄를 잊어도 자신은 그 죄를 잊지 못합니다.

 그런 절망적인 죄책감도 성령님이 그 영혼을 사로잡으면 털어버릴 수 있고 내면에서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처럼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육체적인 죄의 극복능력도 커지고, 도저히 싸맬 수 없어 보이던 상처도 신비하게 사라집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겨울 내내 얼었던 것들이 봄의 태양빛에 녹듯이 성령님의 역사가 커지면 죄로 인한 슬픔과 자책감과 상처가 사라집니다.

 또한 성령님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사별로 인한 상처도 치유해 주시고,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도 치유해주십니다. 영혼이 외로움을 느낄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보혜사 성령님을 주사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성령님이 마음속에 오시면 영혼에 갑자기 빛이 비치고 슬픔과 고통이 끝납니다. 그때 마음의 공허함이 이상하게 채워집니다.

 성령님이 없다면 삶은 너무 외롭고 서럽고 고되겠지만 성령님이 함께 하면 삶이 얼마나 쉽고 편안하게 느껴집니까? 그래서 영혼은 성령님이 없으면 채워질 수도 없고 빛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최선의 선물인 성령님을 결코 놓치지 말고 자신이 성령님을 더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자신을 더 가지도록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처럼 성령님의 위로로 상처와 시련을 극복하면 더욱 멋진 삶이 그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 다윗의 3가지 복된 성품 >

 본문을 보면 다윗이 상처와 시련을 극복해 왕이 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게 했던 몇 가지 성품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성품

 다윗은 17세에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영웅이 됩니다. 그때 백성들은 사울 왕은 ‘천천’이라고 칭송했고 다윗을 ‘만만’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본문도 그 과정 중에 있는 상황인데 본문 전까지 그는 놉, 가드, 그리고 아둘람 굴로 도피했습니다.

 아둘람 굴에서는 소외되고 버려진 자 4백 명이 다윗을 중심으로 결집된 후 그들은 같은 꿈과 비전을 가지고 어려움을 헤쳐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둘람 굴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다윗은 요단강을 건너 이방 지역인 모압 미스베로 피신한 후 모압 왕에게 자신의 부모를 맡깁니다. 다윗의 증조모인 룻이 모압 여자였기에 다윗 가문에도 모압 족속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하면서 다윗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맡아 주십시오(3절).” 본문의 이 말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충실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더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고난 중에도 “내가 원수 같은 사울을 죽이리라!”고 결심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사울에 대해 어떤 조치를 할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도망 다녔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직접 사울을 처리해서 블레셋과의 길보아산 전투를 통해 사울을 죽게 하셨습니다. 그때 만약 다윗이 성급하게 직접 사울을 죽였다면 그는 전 이스라엘이 한 마음으로 존경하는 왕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내전이 일어나 민족적인 혼란이 일어나든지, 적어도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 사람들로부터는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당시의 지역감정인 지파감정으로 나라가 편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처리하니까 배냐민 지파인 사울 왕조가 끝나고 유다 지파인 다윗왕조가 시작될 때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다윗 왕조에 가장 협조적인 지파가 바로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왕위를 강제로 빼앗지 않고 하나님이 순리대로 사울가에서 다윗가로 촛대를 옮기셨다고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과 때를 기다렸기에 그런 멋진 리더십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앞서서 너무 성급하게 일처리하지 마십시오. 누군가에게 한이 맺혀서 직접 원수를 갚고 싶어도 잠시 참으십시오. 그러면 가장 적절할 때에 하나님이 직접 그를 처리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하나님이 처리하도록 맡겨야 부작용도 없고 후유증도 없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서두르면 얽힌 매듭은 더 얽히지만 참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얽힌 매듭이 신비하게 풀릴 것입니다.

2. 가족의 책임을 다하는 성품

 다윗은 도피생활의 급박한 순간에도 부모님을 모압 왕에 위탁했습니다. 생명이 위험한 순간에도 인륜관계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가끔 보면 “할 일 많은 세상에서 가족 일까지 책임져야 합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륜관계의 책임을 다하면서도 충분히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인륜관계의 책임도 잘 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한다 하면서 작은 교회인 가정을 소홀히 하지 말고, 반대로 가정을 위해 일한다 하면서 큰 가정인 교회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전 세계를 소홀히 할지언정 가정과 교회는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가정 일과 교회 일은 모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가지 일 때문에 다른 일이 손상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정만큼 소중한 공동체는 없습니다. 가정은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귀히 여김 받는 곳이기에 가장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병든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일이나 가장 연약한 자녀를 더 사랑하는 일은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거룩한 일들입니다. 그렇게 서로 섬겨주며 가족의 책임을 다하십시오.

 고래는 물에서 살지만 허파로 숨 쉬기 때문에 다쳐서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하면 숨을 쉬지 못해 결국 죽습니다. 그래서 상처 입은 고래가 생기면 동료 고래가 그 상처 입은 고래를 등에 업고 기력을 찾을 때까지 숨을 쉬도록 떠받쳐준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바로 가족의 모습입니다. 그처럼 서로 살려주고 지지해주기에 가정 일을 ‘살림살이’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아내만 알뜰한 살림꾼이 되지 말고 남편과 자녀, 그리고 부모와 형제 모두가 알뜰한 살림꾼이 되어야 합니다. 알뜰한 살림꾼이 되도록 하는 제일 원소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특히 사랑하되 상대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좋아하는 색으로 자녀의 삶을 마구 칠해버리면 자녀 속의 '천재'는 죽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란 미명하에 자행되는 폭력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제도의 틀 속에 밀어 넣고 세상 북소리에 발맞추게 강요하는 것은 한편으로 이해됩니다. “혹시 내 아이가 혼자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는 내 자녀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내 자녀를 너무나 잘 아시고 관심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자녀의 캐릭터를 살려 믿음으로 키우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잘 키워주실 것입니다.

3. 시련의 현장을 직면하는 성품

 다윗이 모압에서 오랜만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편안히 지낼 때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말합니다(5절). 지겨운 고난과 시련과 상처의 땅으로 도로 들어가라니 얼마나 듣기 싫은 소리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시련과 상처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 땅에서 새로운 창조를 엮어내는 삶을 원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상처가 있습니다. 그 상처에 연연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왜 사람들이 상처에 연연합니까? 첫째, 열등감이 문제입니다. 자신을 별 볼일 없게 생각하면 상처가 커집니다. 둘째, 완벽주의도 문제입니다. 완벽주의자는 “좀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하면서 상처를 키웁니다. 셋째, 과민증도 문제입니다. 과민증에 빠지면 지나치게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 욕구가 쉽게 충족되기 힘듭니다. 그 현실을 직시하지 않아서 상처도 잘 받습니다.

 그 상처를 어떻게 처리합니까?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말고 상처 받은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동시에 그 상처의 일차적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말합니다.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그랬습니다. 왜 제 처지를 이해 못합니까?” 그러나 환경 탓이나 남 탓을 버리고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상처가 치유됩니다.

 상처 치유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려고 힘쓰십시오. 그러면 더 잘못한 상대의 책임은 줄어드는 것 같고 자기 책임은 더 커지는 느낌이 들어서 용서가 두렵고 주저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넘치는 보상과 성령님의 넘치는 위로가 있을 것을 믿고 용서하십시오.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용서가 없으면 상처 치유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임을 확신하고 자신의 상처 및 콤플렉스와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말씀이 그 상처를 드러낼 때 “왜 잊어버린 상처를 들춰냅니까?”라고 말씀을 되받아치지 마십시오. 때로는 상처를 드러내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상처를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처가 잠재의식 속에 숨어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드러나면서 삶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약 50년 전에 미국의 한 화학회사에서 공장 폐기물을 용기에 밀봉해 파묻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용기가 새고 그곳으로부터 독성물질들이 나와서 농작물을 다 죽이고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처럼 상처를 파묻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파묻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영혼의 약한 부분으로 독성이 새어 나오면서 그 영혼에 고통을 줍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파묻지만 말고 파서 완전히 제거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때로는 상처의 현장으로 돌아가 그 상처를 믿음으로 완전히 제거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이제 상처가 완전히 치료되도록 말씀으로 마음을 찢는 상황도 기쁘게 감수하십시오. 병이 치료되려면 쓴 약이나 외과수술이 필요하듯이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려면 말씀을 통한 ‘쓰라림’과 ‘찢어짐’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장기 고수는 장기 알 몇 개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승리를 위해 필요한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상처와 시련의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그 상황을 믿음으로 극복하며 새로운 창조적인 역사를 준비하십시오.

< 상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제가 미국 뉴욕에서 전도사로 있을 때 플러싱 근처의 고속도로에서 겨울에 차를 몰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6중 연쇄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교회 청년부 회장 차를 잠시 빌려서 운전했는데 눈길에 미끄러져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 서자 다음 차가 피하지 못하고 차 앞부분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계속 차들이 쿵쿵 받았습니다. 그때 쿵쿵 소리를 들을 때마다 돈 물어줄 생각에 “이제 유학이고 뭐고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십여 초 만에 다섯 대가 받고 “이제 이 악몽이 끝났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몇 초 후에 여섯 번째 차가 차 뒷부분까지 쿵 받았습니다. 그때 다른 차들은 크게 망가졌는데 제가 몰던 청년부 회장 차는 오래된 구닥다리 차 썬더버드(Thunderbird)였습니다. 그 차는 차 덩치도 크지만 차 외부 강판이 탱크처럼 단단해서 크게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사고처리 후에 카센터에 가서 차를 고쳐서 회장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카센터에서 왜 그런 똥차를 수리하느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수리비 견적이 2천 불이 나왔는데 대략 당시 찻값보다 더 나갔습니다. 그때 수중에 300불 정도 있어서 그 정도 견적이 나오면 고쳐서 돌려주려고 했지만 너무 비용이 많이 나와서 수리를 포기하고 망가진 차를 그냥 청년부 회장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청년부 회장은 전도사가 차를 망가뜨렸으니까 물어달라는 말도 못하고 한숨만 푹푹 쉬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미안해서 청년부 회장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지금 제가 현재 가진 돈이 300불인데 수리비로 쓰세요.” 그렇게 300불을 주면 저는 몇 달을 거의 굶어야 했지만 그래도 주었습니다. 그 후 그 형제가 한 동안 앞뒤로 눈이 실명된 찌그러진 차를 타고 다녔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며칠 후, 그 형제가 경찰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보험회사끼리 분쟁이 생겼는데 저의 과실로 판명되면 차 6대 수리비를 다 물어주어야 하는데 수리비 총액이 2만 불이 넘어서 보험의 보상 한도액을 훨씬 초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3년 전이니까 당시 2만 불은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그때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도 없이 맨 몸으로 유학을 왔는데 이제 내 인생은 종쳤구나! 미국에 와서 감옥을 가겠구나!”

 그때 경찰서에 가서 죄인 된 심정으로 경찰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결과를 다렸습니다. 그런데 저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 차가 미끄러져 고속도로를 막아 사고 원인은 제공했지만 진짜 사고 책임은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은 뒤차들의 책임으로 결론이 난 것입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나님께 감사했지만 6대의 차를 망가뜨린 원인 제공자니까 사고 차량 주인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사고의 악몽을 잊으려고 한 동안 그 사고 난 고속도로로 다니지 않고 다른 진입로로 다녔습니다. 그런데 시간도 더 걸리고 너무 불편해서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사고가 한번 났으니까 더 나지 않을 거야. 그때 사고 기억을 잊자!”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그 지역으로 다시 다니니까 그때부터 얼마나 편했는지 모릅니다. 그처럼 실패의 현장에 들어가 그 현장에서 극복의 역사를 이뤄야 인생도 편해지고 즐거워지고 전진하게 됩니다. 그 원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에서 생긴 쓰나미가 태국 푸켓을 덮쳐 많은 사망자를 냈을 때 관광객이 90% 격감했습니다. 그때 10만 원대의 패키지 여행상품까지 나왔지만 사람들은 외면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해일 사고가 났는데 바로 이어서 또 해일 사고가 날 확률은 더 없다.” 그래서 어머님과 장모님을 모시고 1인당 19만원으로 최고의 럭서리 푸켓 효도관광을 즐겼습니다. 그때 가이드가 숙소도 초특급으로 잡아주었고 최고급 쇼 프로그램도 평소에는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지만 그때는 바로 입장해서 봤습니다.

  시련과 상처를 무서워하면 삶은 제한적이 되고 성공 가능성도 현저히 축소됩니다. 반면에 시련과 상처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면 성공 가능성도 훨씬 커지고 삶의 보폭도 훨씬 커질 것입니다.

 살다 보면 사고도 만나고 상처도 입습니다. 그러면 사고 난 곳을 쳐다보기도 싫고 상처를 준 사람을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렇다고 그 현장과 그 사람을 계속 피해 다니면 인생은 점점 후퇴합니다. 가까운 축복의 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시간과 정력이 얼마나 낭비가 됩니까? 그러므로 사고와 상처의 기억을 극복하기 위해 보기 싫은 사고의 현장과 상처의 현장으로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는 먼 길을 택하면 시간낭비, 정력낭비, 기회 낭비 등으로 더욱 멋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하나님은 우리를 시련과 상처의 현장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상황을 두려움 없이 직면하고 극복해서 더욱 창조적인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나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때 어디에서 부인했습니까? 대제사장의 집 문밖 숯불(안드라키아) 앞에서 부인했습니다. 그 후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사랑을 확인하는 세 번의 질문을 어디에서 했습니까? 디베랴 바닷가 숯불(안드라키아) 앞에서 했습니다. 숯불에서 일어난 ‘3중 상처의 기억’을 숯불에서 있었던 ‘3중 사랑의 고백’으로 회복시키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 상처 극복을 위한 주님의 거룩한 연출과정이 있었기에 베드로는 담대한 믿음으로 결국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실패와 상처의 현장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또한 상처를 준 사람을 주님 사랑으로 품고 한과 상처를 말끔히 씻어버리십시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가 극복하지 못할 상처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윗이 유다 땅으로 돌아가야 왕이 될 수 있듯이 시련과 상처를 준 삶의 현장과 대상을 극복해야 ‘왕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그처럼 상처를 믿음으로 잘 극복해서 내일의 보다 큰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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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7 요한복음 믿음의 축복 요6:60-71  이한규 목사  2010-10-21 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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