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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급 성도가 되는 길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452 추천 수 0 2010.10.21 18: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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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7-20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일등급 성도가 되는 길 (마 5:17-20)

 

< 열린 마음을 가지십시오 >

 요새 인터넷을 통해 가수 타블로를 공격하는 왓비컴스란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 타블로의 영어 실력에 의문을 품고 학력의혹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2가지를 보고 영어 실력에 의심을 품었다는데, 하나는 ‘let go’란 표현이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let it go’ 혹은 ‘let you go’라고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옛날에 배운 일본식 영어에서 말하는 ‘사역동사’란 거창한 한국식 문법용어와 5형식 문장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영어에서는 ‘let go’란 표현을 얼마든지 씁니다.

 또 한 가지는 ‘map the soul’이란 표현이 엉터리라면서 ‘the soul map’ 혹은 ‘the map of soul’이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영어는 명사가 동사로 얼마든지 전용될 수 있기에 map도 동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map의 동사형 뜻은 ‘지도(地圖)하다’인데 한국어로는 그런 말이 없기에 문장상황에 따라 ‘지도를 만들다, 지도에 나타내다, 지도로 그려주다, 지도에 표시하다, 지도처럼 그리다’ 등의 다양한 뜻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map the soul’이란 표현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물론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흔한 표현은 아닌 ‘영혼을 그려보라’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옛날 일본식 영어공부를 한 사람들은 map을 명사로만 생각하니까 map the soul이란 표현이 틀린 줄 아는 것입니다. 왜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못합니까? 일본식 영어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의 잘못된 틀을 고수하면 삶의 진전은 그만큼 늦어집니다.

 타블로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학력문제로 사람들을 기만했다면 옹호할 이유가 없습니다. 목회자 중에도 가짜 박사가 많은 것을 개탄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초졸인 목회자가 박사 타이틀을 걸친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목사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고 결국 전도를 막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의 자정 능력이 없기에 교회 밖의 공격과 비판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타이틀보다 능력이나 마음의 중심이 중요합니다. 그 면에서 사고가 열려야 합니다. 네트영어의 7가지 원리 중에서 제 1원리가 “열린 마음을 가지라!”입니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진리를 알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도 커집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닫힌 사고로 율법에만 매달리면 누구도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은혜가 필요합니다. 반면에 은혜를 내세우며 너무 열려도 안 됩니다. 그러면 은혜의 참 의미를 잃고 방종에 빠집니다. 율법과 은혜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 일등급 성도가 되는 길 >

 본문은 율법과 은혜의 균형 잡힌 신앙을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19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3등급의 천국성도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1등급은 ‘천국에서 큰 자’이고, 2등급은 ‘천국에서 작은 자’이고, 3등급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천국에서 그 등급이 어떤 실체가 될지 누구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천국에도 등급이 있음을 겸허히 인식하고 ‘천국에서 큰 자’인 1등급 성도의 꿈을 꾸십시오. 일급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율법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사람들은 율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도 중요합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이 말씀은 율법과 형식과 직분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율법과 형식과 직분과 더불어 내용을 갖추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를 내세우며 율법을 짓밟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사람은 은혜를 내세우면서 방종에 빠지는 사람입니다. 그때 방종을 지적받으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판단을 금합니다. 저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판단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아세요?” 정말 골치 아픈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내용이 중요하지만 형식도 필요합니다. 형식이 주는 유익도 많습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이 없으면 내용을 담지 못합니다. 요새 영성이 깊다는 사람들은 신학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신앙도 필요하지만 신학도 필요합니다. 신학이란 틀이 없으면 신앙은 시류와 감정에 따라서 본질과 내용까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이란 형식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없는 형식주의입니다. 형식과 형식주의를 혼동하지 마십시오. 형식주의는 버려야 하지만 형식은 필요하고, 율법주의는 버려야 하지만 율법은 필요하고, 권위주의는 버려야 하지만 권위는 필요합니다. 공동체에 권위가 없으면 기초와 질서가 흔들리게 되어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율법에 지나치게 매이면 안 되지만 율법도 소중히 여기는 성도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1급 성도입니다.

2.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십시오

 세상 학문과 철학은 시대에 따라 무수히 변하면서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거짓이 되지만 성경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는 온전한 진리입니다(18절). 그 말씀대로 행하며 말씀 안에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19절). 요새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영혼은 허무해지고, 가정은 망가지고, 사회갈등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더욱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영혼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축복을 지키는 최적의 길은 말씀 안에 있는 길입니다.

 옛날에 한 왕이 죽을 날이 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제일 귀한 것을 가져오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맏아들은 흔들기만 하면 대군이 생기는 부채를 가져왔고, 둘째 아들은 돌리기만 하면 돈이 쏟아지는 맷돌을 가져왔고, 셋째 아들은 진리가 담긴 지혜서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왕은 사람이나 나라나 진리 안에 있어야 잘되는 줄 알고 셋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맏아들은 힘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힘이 있으면 잘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칼을 쓰면 칼로 망합니다. 말씀도 없이 힘만 있으면 평화는 줄고 싸움이 많아집니다. 둘째 아들은 돈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돈을 의지하면 언젠가 돈에게 반드시 배신당합니다. 반면에 돈을 의지하지 않고 말씀 안에 있으면 결국 돈도 따라옵니다.

 말씀이 없는 삶은 기둥이 없는 삶과 같습니다. 기둥이 무너지면 집이 무너지듯이 소유가 많아도 말씀이 없으면 그 인생은 곧 무너집니다. 반면에 소유가 적어도 말씀대로 살면 곧 길이 열립니다. 결국 말씀 안에 사는 성도가 진짜 부자입니다. 이제 물질에 더 집착하지 말고 말씀에 더 집착하십시오. 말씀 안에 있으면서 물질을 나누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물질을 추구할 때 물질도 얻는 지혜도 생기고 행복도 얻습니다.

 부자는 십만 원 짜리 식사를 해도 행복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떡볶이만 먹어도 행복합니다. 부자는 유럽여행을 가도 행복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지만 가난하면 제주도만 가도 행복합니다. 가난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있으면서 작은 축복에 감사하고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최고로 잘사는 길은 말씀 안에 있습니다. 말씀을 떠나면 망합니다. 말씀 속에 힘과 능력이 있고 길과 답이 있습니다. 말씀을 떠나면 지혜도 잃고 길도 잃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원리와 대답이 다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망하는 원인도 나오고 잘되는 방법도 나옵니다. 성경은 일점일획이 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대로 살 때 말씀이 약속한 무수한 축복도 그의 것이 될 것입니다.

3. 진실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본문 20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지 않으면 천국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의는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고 외적인 형식과 타이틀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심지어는 목사나 장로라는 타이틀도 천국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진실을 보십니다.

 어느 날, 한 교인이 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 속속 천국 역에 도착하는데 얼마 후에 한 목사가 도착했습니다. 그때 보좌에 앉은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시더니 내려가서 그 목사를 안아주시며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다른 성도들이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예수님! 천국에서도 사람을 차별하세요?”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오해하지 말라! 목사가 하도 오랜만에 도착해서 너무 반가워서 그랬다.”

 타이틀보다 마음의 진실과 중심이 중요합니다. 요새 비주얼(visual, 보이는 겉모습)에 많이 이끌립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모도 잘 꾸며야 합니다. 외형과 형식도 중요합니다. 실전에도 강해야 합니다.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님 설교를 보면 내용도 좋지만 설교 전달도 탁월합니다. 미디어 운용능력도 탁월합니다. 사람들이 문제 삼던 신학적인 밸런스도 점차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처럼 보이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저는 옛날부터 표현력이 나빴고 특히 실전이 약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방송국의 어린이 퀴즈 대회에 나갔었습니다. TV 앞에서 퀴즈문제를 잘 맞추니까 가족들은 제가 퀴즈 천재인 줄 알고 퀴즈 대회를 내보냈습니다. 그때 방송국까지 어머님이 데려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TV 앞에서 잘 맞추던 실력이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때 예선 테스트를 위해 방송국 들어가면서부터 떨렸습니다. 처음에 무슨 쪽지시험을 보았는데 그 시험에서는 붙었습니다. 그리고 붙은 사람들이 예비 퀴즈대회를 했는데 그때 사회자가 어떤 문제를 냈는지 너무 떨려서 문제조차 잘 못 듣고 결국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TV 앞에서 잘해도 실전이 중요합니다. 내용을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가진 내용을 말로 표현할 줄 모르면 얼마나 손해인지 모릅니다.

 저의 첫째 딸은 저보다 더 말로 표현할 줄 모릅니다. 기분이 상하면 침착함을 잃고 자기변호를 더 못해서 손해를 보고 오해를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역사상 외모가 탁월하거나 겉으로 표현을 잘하는 사람만이 항상 인물이 된 것은 아닙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저의 딸에게는 그림으로 표현할 능력을 주셨고 저에게는 글로 표현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공평하신 하나님입니까?

 형식과 외모도 중요합니다. 외모도 힘껏 가꾸십시오. 외모도 일종의 경쟁력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는 역시 진실한 사람의 것입니다. 재능은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어떤 재능이 부족하면 다른 재능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재능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제조건에 ‘진실’이 있습니다. 마음이 진실하고 그 중심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급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4. 사랑을 적극 실천하십시오

 바리새인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2가지 큰 잘못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지키는 삶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자랑입니다. 형식을 지키는 것을 자랑하면 그때부터 그 형식은 외식이 됩니다. 또 하나 바리새인의 잘못은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자유지만 자기 생각을 절대기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사람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저는 청년 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명칭이 ‘식도락가(食道樂家)’란 명칭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먹는 것에도 대가가 있나?” 그때는 먹는 시간이 제일 아까웠고, 먹는데 돈을 쓰는 것도 아까웠습니다. 또한 그때는 아무리 맛있어도 라면보다 조금 더 맛있을 뿐인데 맛집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제일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먹기 위해서 1시간을 차타고 가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물론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해력은 딸려도 이해심만 딸리지 않으면 됩니다.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 보지 마십시오.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 보는 사람이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결국 율법에 사랑이 빠지면 그 율법은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율법은 억압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사랑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율법준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처럼 법을 지킬 때 항상 그 바탕에 사랑의 정신을 깔고 있어야 합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매일 밤마다 중요한 율법 조목과 10계명을 대조하며 자기들이 그날 거룩한 삶을 살았는지 점검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조목조목 잘 지키는 것보다 주님이 주신 새로운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이 더욱 중요합니다. 결국 ‘십자가의 사랑’이 일급 성도가 되는 제일 요소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위로는 하나님께 드리고 옆으로는 이웃과 나누고 아래로는 빈자에게 베푸는 ‘드나베의 삶’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 말씀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드나베의 삶은 돈을 사랑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제일 증거입니다. 한 사람의 영성의 척도는 대개 그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드러납니다. 즉 “돈을 어디에 쓰는가?” 하는 문제는 그의 관심과 가치관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거듭난 사람임을 알 수 있는 실제적인 지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듭나기 전과 거듭난 후에 돈 씀씀이의 차이를 보면 됩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사업상 한번 먹는데 100만원 쓰는 것은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거룩한 일에 드리는 것은 10만원도 아까워한다면 그의 신앙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은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 이면에 있는 ‘사람의 마음과 가치관’을 잘 보여줍니다.

 왜 주님이 과부의 두 렙돈에 감격했습니까? 그녀의 작은 헌신을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 이런 질문도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그 믿음이 좋은 과부를 풍족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하나님이 믿음이 좋은 사람을 풍족하게 하지 않는 것도 찬양하십시오. 만약 풍족해서 그 풍족함으로 하나님을 절실히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고 오히려 저주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주기도문에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왜 주님은 “10년분 양식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믿음의 훈련 때문입니다. 오늘의 필요가 채워지면 내일은 어떻게 됩니까? 내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일도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면서 점차 믿음이 커집니다. 반면에 10년 먹을 것이 있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맘대로 산다면 많은 소유가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 드나베의 삶을 실천하십시오 >

 이제 물질과 사랑을 결코 바꾸지 마십시오.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바친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외식적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결정적인 결격 사항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형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을 보면 마게도냐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모교회가 흉년으로 힘들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들은 자기들도 어려웠지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해 막대한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도 바울은 그들의 태도가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태도라고 했습니다(고후 8:8). 그처럼 드나베의 삶도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핵심적인 삶입니다.

 마가복음 14장에 나오는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자 몇 사람이 분내며 말했습니다. “왜 그 비싼 향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낭비하는가?” 언뜻 보면 사리에 맞는 말 같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드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면 낭비적인 헌신을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헌신조차 낭비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그때 말했습니다. “가만둬라. 이 여인이 내게 좋은 일을 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언제나 이 여인의 얘기가 들려질 것이다.” 그 말씀대로 그녀의 행실은 지금까지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이제 입과 마음과 생각으로만 감사하지 말고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며 감사하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아무개야! 네 삶을 내게 줄 수 있겠니?” 그 질문에 “예!” 하고 반응해보십시오. 그 순간, 그의 영혼에는 풍성함과 새로움이 가득 찰 것입니다.

 성도의 최종목적은 ‘주님과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제 곧 세상을 떠나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이 땅에서의 삶을 기쁨으로 결산하며 주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 저는 저 자신만 위해 살지 않고 멋지게 선교하다가 왔습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그런 멋진 고백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시간과 물질과 목숨까지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복된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점검하며 드나베의 삶을 각오하며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현실에 대한 집착과 생존을 위해 부활의 믿음을 거부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일을 빼고는 희생을 거부하면서 최소한의 종교행사의 참여로서 체면을 세우려고 했던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제 저도 두 렙돈을 드린 과부처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드나베의 삶을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그런 기도와 함께 드나베의 삶을 실천하며, 열린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선교하면서 살 때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행복한 삶을 허락하시고 천국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큰 자로서 그를 기쁘게 맞아주실 것입니다. 항상 진실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 더욱 축복 받고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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