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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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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어떻게 淸貧(청빈)할 수 있는가?
본문/ 눅12:15, 딤전6:7-10
1. 들어가는 이야기
며칠 전 밭에서 김을 매다가 문득 “참 이상한 일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 일반적으로 세계 4대 聖人(성인)하면 기독교의 예수님(메소포타미아 문명권), 불교의 석가모니(인더스 문명권), 유교의 공자님(황하 문명권), 철학의 소크라테스(에게 문명권)를 거론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발상지 중동 지역에서는 기독교가 시들하고,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는 불교가 시들하고, 유교의 발상지 중국에서는 유교가 시들하고, 철학의 발상지 희랍에서는 철학이 시들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하셨고, 부처님은 貪(탐: 탐내지 말라), 嗔(진: 화내지 말라), 痴(치: 어리석지 말라) 하시고 무소유로 탁발하였고, 공자님은 飯疏食飮水 曲肱而沈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나 그 가운데 즐거움이 있나니 불의로 얻은 부귀함은 내게 있어 뜬 구름과 같다)고 하였고, 소크라테스는 평소 맨발로 다닐 정도로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그 부인 크산티페에게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철학하기를 즐거워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마7:1)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럭저럭 사는 사람, 소유의 넉넉함을 추구하는 사람, 청빈하게 사는 사람, 모두 각각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재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성인-현자-지혜로운 스승들은 한결같이 청빈한 삶을 추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2. 청빈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 유형
이제까지 내가 듣고, 읽은 바 동서고금의 청빈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유형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았습니다(바울 사도, 안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스스로 일하여 自給自足하였습니다(수도원, 불교 승단, 은둔자들, 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천지자연을 벗하여 시, 문장, 음악, 글씨, 그림을 즐거워하였습니다(새들에게 설교한 성 프란체스코, 채근담, 도덕경, 장자, 도연명, 죽림칠현, 당송 팔대가, 우리나라 조선의 선비들). *기독교-敬天愛人(경천애인), 불교-上求菩提 下化衆生(상구보리 하화중생), 유교-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철학- 너 자신을 알라. 즉 道를 닦으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존중하며 살았습니다. *세상 잡사에 吾不關焉(오불관언)하여 의식주가 단출하였고 인간 관계가 단순 소박하였습니다. *경전을 읽고 연구하고 스스로 깨달은 바 奧義(오의)를 悟道頌(오도송)으로 드러내었습니다. 한 마디로 고귀한 단순함(Simple Life!)을 추구하였습니다.
3. 어떻게 청빈(자발적 가난)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첫째. 성경적으로 청빈한 삶의 근거는 공중의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신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있습니다(마6:19-34). 예수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생존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청빈하게 사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묻는 말이 “그렇게 청빈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먹고 삽니까? 자녀들 교육은 어떻게 합니까?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 분들의 답변이 이러합니다.
靑眼信天猶有種(청안신천유유종: 눈먼 새도 하늘을 믿으니 그 종자를 이어가고)
翰豪經雪尙餘身(한호경설상여신: 털 없는 새도 겨울을 나지만 그 몸이 여전하다)
어찌 보면 황당한 대답입니다. 그러나 진실입니다. 우리가 황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 그만큼 소유경쟁에 세뇌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바알을 섬길 것인가? 하는 종교 문제에서부터 돈 10,000원으로 책을 살 것인가, 복권을 살 것인가? 하는 일상 생활의 소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선택입니다. 소유경쟁의 삶을 살 것인가, 청빈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도 선택입니다. 청빈한 삶이란 어찌어찌 살다보니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청빈은 각 사람 스스로의 종교적 신앙과 의지로 생존경쟁-소유경쟁의 삶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청빈한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멋진 광고 카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 밖에 없는 인생에서 어떤 삶을 선택하여 살 것인가는 각 사람의 자유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각 사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결단할 일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행적을 본받을 때 청빈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3가지 시험(돌로 떡을 만들라-경제 문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명예 문제, 천하 만물을 주 터이니 나에게 절하라-권력 문제)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명예-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소유를 초월하여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 또 한가지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예수님은 수시로 한적한 곳, 바닷가, 광야, 들판, 동산, 높은 산에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천지자연과 깊이 교감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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