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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이 된 신자

사무엘상 김창인 목사............... 조회 수 2001 추천 수 0 2010.10.23 23: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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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상22:1-5 
설교자 : 김창인 목사 
참고 : 광성교회 - 김창인 목사 제1설교집 -하늘의 전화/모퉁이돌 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 신자,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그림자가 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5년 전 성지 순례 때에 샌프란시스코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두 전시회가 열렸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 문화 예술 4천년 전'이었습니다. 한국의 문화예술이 4천년 동안 어떻게 내려왔느냐! 그림도 있고 조상들이 만든 온갖 기구들이 다 있어, 한국 문화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었죠. 그런데 한국의 4천년 전시회라고 하는데는 사람이 한산합니다. 좀 쓸쓸하더군요. 그런가 하면 이집트, 즉 '애굽 문화 전시회'도 있었습니다. 애굽의 문화 전시회에는 사람들이 입장권을 사기 위해 그 넓은 광장에 줄을 지어 누워서 그 자리에 담요 쓰고 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 그렇다고 밤을 거기서 잘 수는 없겠고, 그렇지 않으면 애굽에 갈 것이니 거기 가서 볼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애굽에 갔습니다.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은가 했더니 세계 인류 문화를 말할 때 애굽을 빼면 이야기가 안 됩니다. 가보니 박물관에 기가 막힌 수 천년 된 유물들이 굉장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 전 전시회하기 전에 애굽 왕 터튼의 무덤을 발견하고 관과 온갖 유물을 다 끄집어냈었습니다. 그것을 전시하는데 대단한 인기입니다. 터튼 왕은 19살에 죽었습니다. 그의 관은 3중으로 봉합되어 있었는데 맨 겉과 중간은 금으로 입혀 있고 마지막 속의 것은 순금으로 단단히 만들었습니다. 사람 모습을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시신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걸 발견해 낸 것이죠. 진짜 그렇게 해놓았다가 도둑 맞으면 안되니까, 진짜는 잘 보관해 두고 전부 그대로 본 떠서 모조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조금도 틀림이 없는 이 모조품을 보면 진품 보는 것과 똑 같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다윗을 보게 되면 예수님과 매우 많이 닮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믿는 사람은 이래야 되겠다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I. 가정적인 신자 (1절)


1절에 가정이라고 하는 곳은 상당히 신성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신성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짝을 지어서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신성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존 프랑소와 밀레가 그린 '만종'에 지금 막 해가 넘어가는데 넓고 넓은 들판 저 건너편에는 예배당이 있고 두 내외가 밭에서 일하다가 조그만 리어카에 열매를 따놓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있죠. 기도하는 것 종교는 신성하다는 뜻이고, 일하는 것 노동은 참 신성하며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다 일하는 교인들을 만나게 되면 얼굴을 돌려버립니다. 왜 부끄러워합니까? 놀고 먹는 것이 부끄럽지 일하고 먹는 것이 왜 부끄럽습니까. 노동은 신성합니다. 가정은 신성합니다. 집에 밀레의 그림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내 위치를 지켜야 하며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그렇다고 해서 기도도 하지말고 교회도 등한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회 생활은 그 나름대로 충실히 하면서 가정에 들어가서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도할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 가서는 가정에 충실합시다. 성경 배우는 시간에는 성경 배우고 집에 돌아가서는 가정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30년 동안 얼마나 가정에 충실했습니까? 참 충실했던 분입니다. 가정이라는 곳은 어느 단체에서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평화와 소망이 있는 곳입니다. 사랑과 평화와 희망, 이것이 뭉쳐서 이루어진 곳이 가정입니다. 바로 가정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한평생 가정을 갖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깨져 나가는 것,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부부가 자기 위치에 충실하고 부모와 자식이 자기 위치에 충실할 때에 참 신자요, 바로 믿는 신자요, 예수님을 닮은 신자입니다.


어느 부흥회에 갔더니 우리 교회에서 자라 제가 주례를 했던 부부가 참석했습니다. 예배 마친 다음에 강사 방에 와서 참 반가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저 아무 아무개의 아들입니다. 저 광성교회에서 세례 받았습니다 하고 찾아오면 얼마나 반가운지요. 그 내외와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그는 " 목사님 우리 집사람한테 불만이 많습니다. 보통 불만이 아닙니다." 그래요. "말을 안 들어요? 그러면 때려 줘요, 여자는 때리며 살아야 부드러워지는 거요!" 했더니 " 아니 목사님 그것도 아니구요" 하더군요 (제가 때리란다고 진짜로 가서 때리란 말 아닙니다.) 자기 아내 화장 안 한 얼굴 좀 보고 싶은데 다 뒤집어 씌워 놓은 것만 보여 준대요. "오로지, 순수한 것 그것 좀 보고 싶은데 이걸 좀처럼 보여 줘야죠" 합니다. " 그것이 무슨 소리요?" 했더니 아침에 자기 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 다 차려 놓고 벌써 화장대 앞에 간답니다. 화장을 다 하고 옷 갈아입고 깨운답니다. 매일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나갈 때에는 손 흔들어 주고 하루 종일 일하다가 남편 돌아올 시간 되면 또 한번 화장하는 겁니다. 옷 갈아입고 마중 나오고, 얼마나 남편에게 정성인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회사에 나가서 옆에 앉은 미스 리가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상관없습니다. 바람나라고 해도 안 납니다. 한국의 남자들 바람 피우는 것은 여자가 90퍼센트 책임져야 됩니다. 남편이 바람나서 시험에 들었다고 하나 자기 탓으로 시험에든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한테 잘해야 됩니다. 남편한테 충실하라 그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남자 분이 다시, "우리 누님 알지요? 우리 매형 바람 난 것도 목사님 아시죠?" 합니다. "속 썩는 것도 압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내 누님이지만 나 같아도 바람납니다. 머리는 광주리같이 해 가지고, 항상 옷은 제일 떨어진 것만 입고 세수를 제대로 하나...." 회사에 나가 옆에 앉은 미스 김이 아양떨면 안 넘어갈 수가 있습니까?


그 분 나름대로 이야기한 것 조금 웃음 섞어서 이야기했지만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정에 충실하십시오. 가정에 충실한 신자, 참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둘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1절). 다윗은 쫓기는 몸입니다. 지금 자기의 생명도 어떻게 될 줄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아둘람 굴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도 가족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항상 쫓겨다니는 신세, 어떤 상황에 놓일지라도 늘 가족과 함께 하는 사람, 내 가정을 버려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절대 그 이유를 허락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가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가정과 함께 동고 동락하는 그런 신자, 이것이 예수님의 모형된 신자인 줄 믿습니다.


II. 친구 되는 신자(2절)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4백명 가량이었더라"(2절)


여기 보니까 그렇게 쫓겨다니고 도망 다니는 다윗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몰려오는 사람들의 내용을 보니 세 가지입니다.


① 환난 당한 사람 : 사울이 얼마나 학대를 하는지 견딜 수가 없어서 환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다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② 빚진 사람 : 빚지고는 갚을 길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③ 마음이 원통한 사람 : 이가 갈리고 원통한 일이 있지만 갚을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가게 되면 다윗이 친구가 돼 준다는 것입니다. 환난 당한 사람, 빚진 사람, 그리고 마음에 원통한 일을 당하고도 풀 길이 없는 약자, 옆에 있던 친구도 다 멀리하고 떠나 버립니다, 그때 이 사람들은 소외당해서 외로움에 울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가면 다 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해 주고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전국 각 처에서 몰려드는데 4백명 가량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에게 찾아가 친구가 되는 것, 내가 출세한 사람에게 찾아가 친구가 되는 것, 내가 한 그릇 사 주니 너도 한 그릇 사준다. 끼리끼리만 모이는 것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누가 음식을 차리거든 전혀 갚을 길 없는 사람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갚을 길 없는 사람을 청하여 대접하면 돌아갈 때 얼마나 진정으로 축복하겠느냐 그것입니다. 그럴 때 돌아오는 것은 밥 한 그릇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내게 문안하는 사람을 문안할 때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나은게 무엇입니까? 세리와 죄인들도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합니다. 믿는 사람도 그렇게 하면 믿지 않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게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보니까 다윗에게 몰려오긴 몰려오는데 주면 줬지 받을 것이란 하나도 없는 사람들, 약자, 곤궁한 자, 그리고 궁지에 몰린 사람, 이런 사람에게 다윗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동네마다 가게 되면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죄인들이라 해서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하고 인사도 하지 않습니다. 세리가 지나가면 침을 뱉고 욕을 합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예수님은 친구가 되어 줍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모형인 신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벨기에 출신 가톨릭 신부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다미엔입니다. 이 사람이 젊어 신부가 되어 소명감에 불타 선교부를 찾아가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냐 했더니 미국 땅 하와이로 선교하라고 보냈습니다. 선교차 하와이로 가봤더니 하와이 섬 바로 옆에 몰로카이 섬이 있습니다. 이 몰로카이 섬은 그때 당시 문둥이들만 보낸 곳입니다. 백년 전 이야기인데 그때 문둥병은 약으로 못 고쳤습니다. 문둥이들이 전국을 다니며 병을 옮기니까 걸렸다 하면 그리로 보냈습니다. 의료 시설이 제대로 없는 이곳에 가면 죽어서 송장도 못 돌아오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절망, 좌절에 빠져서 싸움질하고 원망 불평, 한마디로 문둥이 지옥입니다. 가보니까 옆에 있는 몰로카이 섬이 바로 그 지경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하와이가 아니고 거기로구나, 자원해서 갔습니다. 선교부의 승인을 얻어 가지고 갔습니다. 가서 예수를 전했는데 예수는 당신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나에겐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 같이 건강한 사람, 호화로운 사람, 당신같이 복 받은 사람에게 필요하지 우리 같은 사람에게 예수가 왜 필요하냐고 하면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일년 이년 지나도 헛수고입니다. 그럴 때에 안되겠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어야겠다. 그래서 그의 기도 제목이 '하나님 나에게 문둥병을 주십시오'입니다. 문둥병을 달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한 번은 일어나 보니 문둥병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같으면 상상도 어렵다 하겠지만 그 사람은 할렐루야하고 받아 들였습니다. 내가 문둥병이 걸렸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니, 그때에는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예수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바로 살아 보자, 남은 생애지만 바로 살아 보자, 우리도 문둥이지만 참되게 살자, 우리에게는 이 땅 위의 소망뿐 아니라 영원한 소망이 있다고 하면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여튼 지옥인 줄 알고 들어왔던 사람들, 문둥이의 낙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둥이라고 하면 이제 몰로카이 섬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럴 정도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다미엔이 문둥이 지옥을 문둥이 낙원으로 만든 것은 왜 그렇습니까?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처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먹어도 같이 먹자는 것입니다. 싸워도 같이 싸우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나라를 세워도 같이 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형 된 신자입니다.


III. 효도하는 신자(3 - 4절)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3 - 4절).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을 가르쳐 주려고 할 때에 자기가 직접 가르쳐 주셨고 또 우리들의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을 가르쳐 줍니다. 부부 사이의 사랑과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사랑과는 전혀 다릅니다. 부부 사이의 사랑은 한창 뜨겁고, 좋을 때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틀려 보십시오. 세상에 있는 온갖 욕이란 욕을 몽땅 주워 모아다가 다 부어 버립니다. 제 자식이 조금 나하고 틀렸다고 욕하는 부모 보았습니까. 온갖 욕 주워다가 벼락치듯하는 부모 봤습니까?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근사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을 보여 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어머님은 우리를 사랑할 때에 자기의 생명으로 여깁니다. 네 살은 내 살이다, 네 피는 내 피다, 너는 나를 나누어 가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생명같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소망을 네게 다 걸었다는 것입니다. 네 성공이 내 성공이고 네 실패가 내 실패라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를 통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다르게 베풀어지는 사랑, 이렇게 날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전해 주신 부모님께 효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공경할 줄 모릅니다. 부모님을 몰라보면서 박사 학위를 붙이고 다닌들 그 사람이 사람이냐 그 말입니다. 박사 학위 열 두 개나 받았다고 자랑하며 으시대지만 부모님의 노고를 모르고 부모님께 효도할 줄 모른다면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자라고 하면 첫째 계명이 부모님께 순종하라, 보이는바 형제를 사랑치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겠느냐, 보이는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느냐, 그런 신앙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고 부모님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부모님께 순종하라고 하면서 조건을 붙이길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하십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식된 도리로 할 일이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반영이 바로 부모님께 대한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형이 된 신자입니다.


예수님도 30년 동안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동생들 잘 거느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죽을 때도 "어머니여 제가 아들입니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에게는 이제부터는 네 어머니다, 네가 좀 모셔 달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죽은 후의 어머니를 염려하시며 제자에게 부탁하시던 예수님이십니다. 본문에도 다윗이 자기 부모님을 모셨습니다. 지금 모압 땅에 들어갔지만 모실 재간이 없습니다. 그럴 때에 모압 임금님을 찾아갔습니다. 모압 땅은 자기 증조 할머니 되는 룻의 모국입니다, 고향입니다. 왕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이 나에게 지시하여 어떻게 하실 것은 내가 알기까지 부모님을 여기 모시도록 함이 어떻습니까?'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안전하게, 전쟁터에서도 안전하게 먼저 생각하고 먼저 모시는 효성, 십자가의 그 죽음과 고통 속에서도 어머님 생각하던 예수님의 모습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IV. 순종하는 신자 (5절)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대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5절).


본분은 선지자 갓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다윗에게 전해 주고 다윗은 그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며 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본문말고 다른 곳에 보게 되면 항상 갓이라는 선지자가 나올 때에는 '다윗의 선견자 갓'이라 나옵니다. 이 말은 다윗은 어디로 피난 다니며 어디로 망명 생활하든지 간에 꼭 선지자 갓을 모시고 다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싶은 말은 꼭 선지자를 통해서 묻고 하나님의 말씀 듣고 싶은 것은 선지자를 통해서 듣습니다. 선지자는 그 말씀 받아서 전해줍니다. 그런데 하는 말이 모압 땅에 있지 말라,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 있는데 네 생명이 위험하다고 해서 그곳을 벗어나서 모압 땅에서 신세질 이유가 뭐냐 이것입니다. 유대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할 때에 모압 땅은 안전합니다. 사울의 통치가 미치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해할 자가 없습니다. 안전하다고 피난 나온 곳입니다. 그런데도 유대 땅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위협과 고난이 미칩니다. 누구의 밀고를 받아 칼에 죽을지 모릅니다. 그런 위험한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네가 살 땅은 위험해도 거기라는 것입니다. 괴로워도, 고생스러워도, 거기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가라시면 가겠습니다. 죽을 곳이라도 가겠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과 뜻이 있을테니 내가 믿고 순종하고 가겠습니다. 이것이 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십자가 죽음을 놓고 얼마나 고민합니까? 나는 십자가 지기 싫고 죽기 싫은데 하나님은 지라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그리고 십자가 지고서 가셨습니다. 죽으러 가라고 합니다. 십자가 지러 가라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굉장한 계획, 엄청난 의도가 계셨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이 죽음의 길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는 하나님께 믿고 순종하는 우리가 돼야 할 것입니다.


다윗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가정에 충실하였고, 불행한 자에게 친구가 되었고, 부모님께 효도하였고,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예수님을 닮은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예수님을 보여주는 편지 또는 그림자가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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