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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3: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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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st888 |
2010.10.24 주일 오전예배 설교
성경 : 갈 3:23-24
제목 : 율법의 한계
갈3:23-24‘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아멘.
율법이라는 말 토라(hr;/T)는 가르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보통 율법이라고 하면 십계명을 생각하지만 구약성경 전체 혹은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율법에 대한 오해로 낙심하는 경우를 이기기 위해서 <율법의 한계>라는 제목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율법의 시작
율법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한 규칙이라는 의미에서 율법의 시작을 찾는다면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창1:22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도 율법이라 할 것입니다. 행동 제한으로서 율법이라면 창2:17에서 금령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계명이라는 단어 출처로 보면,
창 26:5‘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구약성경에서 율법이라 할 수 있는 대목은 십계명인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십계명과 여러 언약과 성민의 생활 원리들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애굽에서 4백여년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을 탈출한 이후 광야에서 받았다는 역사적인 율법의 시작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구원을 얻는 방편으로서 율법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규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2. 율법의 한계
우리 동양의 윤리사상이 아무리 좋은 뜻이 있어보여도 도덕적으로 온전하기 어려운 인간으로서 다시 생각하면 윤리라는 것은 사람을 살리기보다 사람이 낙심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가 되는 것도 너무 윤리의식이 한국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유교사상의 뿌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의 율법이 아무리 옳아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롬 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왜냐면, 약 2: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래서, 히 10:1‘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본문 갈3: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3.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는 몽학선생
본문 갈3: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개역판에는 몽학선생(蒙學先生)이라고 했는데 헬라어 파이다고고스( paidagwgov")는 6-16세 사이의 아이들을 돌보고 예법을 가르치는 선생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유치원선생 같고 개인교습 선생같은 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아이가 자라면 이제 학교에 선생님에게 맡겨지듯이 아이가 자란 후에는 유치원 선생님의 할 일은 끝이 난다는 뜻으로 율법은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그 할 일을 마쳤다는 겁니다.
롬 10: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런데 아직도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안식교나 유월절 지켜야 한다는 신천지 이만희나 말세에는 순교의 공로로 구원 받을 사람이 있다는 조용기의 말이나 이웃에게 밥 퍼주고 봉사의 사랑을 해야 구원을 받은 교회라고 오해시키는 요즘 이상한 목사들은 모두 율법의 완성자 예수를 제대로 믿지 못한 결과로 복음을 오해시키는 범죄자들입니다.
율법은 율법 자체로는 구원을 이룰 수가 없고 율법으로 우리 죄를 깨달아 해결책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죄를 회개하러 가도록 인도하는 교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이니 율법도 그런 뜻에서는 선하다고 했습니다.
롬 7:12‘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규칙을 가능한 몸에 맞게 살아야 하지만 다 못하므로 율법을 완성하신(마5:17)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로 언약하셨습니다.
인생은 본래 고장난 시계처럼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그렇게 증명합니다. 온갖 죄악의 역사와 전쟁, 그리고 오늘날까지 계속 범죄가 거듭되는 지구촌에 무슨 의로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죄인인줄 알고 주 예수께로 나아가 구원을 얻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러므로 윤리의식과 율법으로 사람을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율법의 시작과 그 효력의 한계를 깨닫고 오직 주께로 나아가는 성도요 타인에게도 그렇게 인도하는 자가 되어 믿음을 온전히 이루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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