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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룻1: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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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상훈 목사 |
참고 : | 승동교회 http://www.seungdong.or.kr |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 룻기강해설교 제 5 강 작별(1)
룻기 1:8∼10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8절부터 18절까지는 나오미와 두 며느리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있는 장면입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간곡한 만류에 결국 자기의 백성과 신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결국 룻은 자기를 떠나보내려던 나오미를 포기하게 만들고 같이 길을 가게 됩니다.
룻기는 뛰어난 문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대화체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룻기가 전체 85절인데 그중 56절이 대화입니다. 8절부터 나오미와 룻, 오르바 이 세 사람 사이에 긴 대화가 시작됩니다. 룻기에서 처음으로 보이고 있는 대화입니다.
7절 마지막 부분에 "길을 행하다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나오미와 두 자부의 대화가 시작된 곳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의 중간 어디쯤이었을 것입니다. 이곳은 모압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이었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동양에는 손님을 멀리까지 배웅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아마도 베들레헴과 모압의 경계지역쯤까지 나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실 나오미는 두 자부를 데리고 베들레헴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1:8,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그렇다면 나오미는 왜 모압에서 아예 룻과 오르바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모압에서 작별하자고 했다면 두 자부가 나오미로 하여금 떠나지 못하게 만류했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과 모압에 계속 머물러 함께 살자고 열심히 간청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쯤이면 그들의 설득을 쉽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혼자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나오미 자신은 베들레헴에 돌아가면 그래도 친구들과 친척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자부에게는 낯선 땅입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신앙과 풍습이 다른 곳입니다. 두 자부의 안식처는 베들레헴이 아니라 모압이라는 것을 나오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며느리에게 돌아가라고 강권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미가 두 자부를 사랑하여 깊이 배려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디로 가라고 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구약 성경에 보면 보통은 "아비 집"이라고 나옵니다. 그 예를 한번 찾아보십시다.
창 38:11,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민 30:16,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율례니 남편이 아내에게 아비가 자기 집에 있는 유년 여자에게 대한 것이니라."
신 22:21,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삿 19:2,3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 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비가 그를 보고 환영하니라."
본문 8절에서는 "어미의 집"이라고 표현했는데 성경에서 "어미의 집"이라 한 곳을 찾아봅니다.
아 3:4,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어미의 집은 사랑이라든지, 결혼하는 것과 관련된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 중의 하나는 그 자녀들에게 이성간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입니다.
창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여 신부를 어머니의 장막으로 맞아들였습니다.
9절에서 나오미가 자부들을 축복해주고 있는 말에 보면 "남편의 집"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두 자부가 새로이 결혼을 해서 남편을 얻어 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룻 1:9,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은 8절에 이어서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빌어준 두번째 축복의 말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나오미로서는 두 자부에게 그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두 자부가 나오미에게서는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나오미는 자기가 두 자부들의 미래에 어떤 좋은 것도 해줄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못하는 것을 대신해서 해주시기를 빌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기를 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괴롭게 했다고 믿었습니다. 13절에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라 했습니다. 또 20절에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1:20,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이 모든 불행은 하나님께서 치셨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을 때 흉년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이방 땅으로 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나오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향을 떠난 것이나, 남편과 아들들이 죽은 것이나, 이 모든 것의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을 통해 결국은 그 후손에서 이스라엘의 성군인 다윗이 출생하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가 그 후손에서 탄생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8절에서 나오미가 자부들에게 해준 첫번째 축복의 말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이 구절에서 "죽은 자"는 누구입니까? 나오미의 죽은 두 아들을 말합니다. 즉 오르바의 남편 기룐과 룻의 남편 말론입니다. 오르바와 룻은 남편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과부가 되었고 거기다가 아들도 없었지만 기꺼이 견디면서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자부들에게 하나님이 선대하여 주시기를 빌어주었습니다.
8절에서 여호와께서 선대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축복에 이어 9절에서도 자부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평안함"은 이리저리 옮겨다니거나 길 위에서 오래 방랑 여행하는 것을 끝내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룻과 오르바가 결혼하여 한 곳에 정착하여 안정을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안이라는 말이 쓰인 예를 시편 132편에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시편 132편의 배경이 된 사건을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신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다윗 왕 때 이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여호와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오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고 길 위에서 오랫동안 방랑했지만 드디어 영원히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132편에서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시 132: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시 132:14,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이와 같이 평안은 정착을 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다가 정착거나, 안식처가 없다가 한 곳에 안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평안함은 본질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부들이 새로 결혼하여 남편의 집에서 평안하여야 할 것을 나오미가 "여호와께" 구한 이유입니다.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남편을 주시는 분도 누구시라는 것입니까? 여호와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채워주시는 분이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통제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시고 쉼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오미가 자부들에게 남편의 집에서 평안 얻기를 빌어준 뒤에 작별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두 자부를 의탁한 나오미가 헤어지는 표시로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작별의 입맞춤으로 인해 함께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저들은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것이 그들 사이를 더욱 친밀하고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11절과 12절, 13절에서 나오미가 두 자부를 "내 딸들아"하고 부른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딸과 같은 두 자부들에게 더 밝은 내일이 열리도록 하나님께 두 여인을 의탁했습니다.
10절에는 나오미의 작별 인사를 받은 두 며느리의 반응이 나옵니다.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저들은 눈물이 가득한 채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들은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고향 모압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 이스라엘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오미의 사랑에 보답하려고 하는 것이든, 또는 두 사람이 죽은 남편에게 끝까지 충성을 하려고 하는 것이든, 또는 이별이 가져올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두 자부는 자기들의 희망 있는 미래를 희생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8절에서 10절까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서 작별로 인하여 울면서 주고받은 세 사람의 첫번째 대화가 이로써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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