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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룻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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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상훈 목사 |
참고 : | 승동교회 http://www.seungdong.or.kr |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 룻기강해설교 제 9 강 이삭을 주우러 나간 룻
룻기 2: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오늘 본문 2:1,2은 베들레헴에 있는 나오미의 집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3절 이하는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보리밭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이 말씀에는 나오미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나와 있습니다. 베들레헴에는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 있었습니다. 바로 보아스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사회 단위로 제일 작은 단위가 아비 집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실 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창12:1)"고 했습니다. 아비 집 다음으로 큰 단위가 친척, 친족입니다. 그보다 크면 지파입니다. 엘리멜렉의 친족이라면 그 범위가 어떻게 됩니까? 1:2에 있는 말씀으로 말하면 "에브랏 사람"입니다. 엘리멜렉과 보아스는 똑같이 에브랏 사람에 속합니다.
1절에 보아스를 가리켜 "유력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의 관주를 보면 "부호"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아스는 부자였습니다. 2장에 보면 밭을 가지고 있고, 또 많은 사환을 거느린 부자였습니다.
"유력한 자"라는 말이 부유한 자를 뜻하는 말로 쓰인 예를 다른 성경에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왕하 15:20,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돌이키고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유력하다"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종종 "용사"를 뜻하는 말로도 쓰였습니다.
수 6:2∼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 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삿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삼하 17:8, "또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부친과 그 종자들은 용사라 저희는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병법에 익은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3:11에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 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 중 "현숙하다"는 말과 "유력하다"는 말이 원어로는 똑같다고 했습니다. 남자일 경우 현숙하다는 말로 번역하기가 어려우니까 유력하다는 말로 번역을 했고, 여자일 경우는 현숙하다는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보아스와 룻은 이상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이상적인 남자였고, 룻은 이상적인 여자였습니다.
보아스라는 이름의 뜻을 보면, 히브리어로 "보"라는 것은 "그에게," 즉 "하나님에게"라는 말이고, "아스"라고 하는 것은 힘,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1장에 나오는 힘 없고 연약한 세 남성들, 즉 엘리멜렉, 말론, 기룐과는 달리 유력하고 힘있는 자였습니다. 보아스는 이상적인 남성이었고 성전의 기둥과 같은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남자 성도님들도 다 보아스와 같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또 이 사회에서 기둥과 같이 귀한 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절에 보면 드디어 룻이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나오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왔는데 이제 룻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룻은 어디 사람입니까? 모압 사람이었습니다.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이 아닙니다. 룻은 지금 낯설고 물설은 곳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을 경멸해서 말할 때 일본 사람들을 쪽발이라고 하고, 미국 사람들을 양키, 흰둥이, 흑인을 검둥이라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방 사람을 멸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방 여인인 룻도 밖에 나가면 사람들에게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모릅니다. 룻이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서 돌아와서 베들레헴에 사는 사람들과 낯을 익힐 시간도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이방 여인이라고 멸시를 당하고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룻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룻은 자신과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필요한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보리 추수가 막 시작될 때였습니다. 지금 이 기회, 보리 추수 시기를 놓칠 수가 없습니다. 룻은 기회를 잘 잡았습니다.
아마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룻이 나오미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얼마나 부지런합니까? 얼마나 적극적이고, 모험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입니까? 모압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이어서 괄시를 받고 쫓겨날지도 모르는데도 가겠다고 합니다.
모압 사람은 여자가 적극적인 것같습니다. 모압 사람의 조상이 누구입니까? 롯입니다. 롯과 롯의 첫째딸 사이에서 난 자손이 모압 사람이 되었습니다. 소돔 성을 빠져 나온 뒤 롯의 딸이 후손을 이을 남자가 없자 아버지와 동침해서 아이를 낳겠다고 아버지에게 술을 먹였습니다. 그리고는 끝내 아버지와 동침해서 낳은 아들의 이름이 바로 모압이었습니다. 연약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이고도 저돌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이 계속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2:2,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밭에 나가서 이삭을 주워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삭을 줍는 것과 관련된 구절을 성경에서 찾아봅니다.
레 19:9∼10,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신 24:19∼22,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추수할 때 곡식을 다 베지 말고 모퉁이를 조금 놓아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과일을 추수할 때도 마찬가지로 땅에 떨어진 열매를 줍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아, 과부, 타국인 등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에는 어떤 사상이 담겨 있습니까? 땅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소산이 다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은 땅과 하늘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과 타국 사람들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율법은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추수할 때는 이삭을 줍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추수가 다 끝나고 난 뒤에는 이삭을 주워도 괜찮지만 추수하는 도중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추수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추수해 놓은 곡식단에서 이삭을 슬쩍 빼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삭을 줍는 일은 추수가 다 끝나기까지 기다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본문 2절 중반절을 다시 보면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고 룻이 말하고 있습니다. 추수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줍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룻은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룻은 불쌍한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가서 추수 도중이라도 이삭을 주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룻은 자기의 환경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한숨만 쉬고 있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룻은 막막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룻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와 타국인과 과부들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낯선 곳이지만 과감하게 들로 나갔습니다.
밭에 곡식이 많이 있고, 또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법이 있었지만 룻이 일어나 들로 나가지 않았다면 밭의 이삭은 룻의 것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밭에 나가지 않았다면 룻은 보아스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룻의 인생을 바꾸는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1:16 하반절,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룻처럼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되겠습니다. 룻처럼 나아가는 믿음의 실천이 있어야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의지하여 실천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은신 크신 축복을 모두가 받았던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룻이 부지런히 일어나 밭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싫어하십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현상유지만 하려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부지런히 나가서 열심히 주어진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물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마음속에 이런 걱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혹시 잘못해서 다섯 달란트를 다 날리면 어떻게 할까?" 만일 그 사람이 열심히 일했는데도 다 잃었다고 칩시다. 주인이 그 종을 나무라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다섯 달란트를 줄 테니 다시 해봐라"고 위로하고 격려했을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감나무 밑에 가만히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모습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밭에 씨를 뿌리다 보면 씨가 길가에 떨어지기도 하고, 돌짝밭에 떨어지기도 하고, 가시밭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서워서 아예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지런히 씨를 뿌리면 그 가운데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을 하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모험적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십니다.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룻이 밭에 나갔다고 한 것을 보니까 나오미가 허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이 베는 자를 따라 이삭을 주웠다고 했습니다. 이 경우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밭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경우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이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룻이 그 밭이 누구의 밭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기에는 우연인 것 같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룻이 자기 시어머니를 위해서 열심히 일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룻을 인도해서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상적인 남성, 이상적인 여성이 만나게 됩니다.
이제 앞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룻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살펴본 것처럼 룻과 같이 긍정적이고 모험적인 신앙을 가지고 새벽부터 부지런히 씨를 뿌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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