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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룻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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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상훈 목사 |
참고 : | 승동교회 http://www.seungdong.or.kr |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 룻기강해설교 제11강 보아스의 관심
룻기 2:5∼7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본문은 보아스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 일꾼 중의 감독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입니다. 5절은 보아스가 묻는 질문이고, 6, 7절은 감독이 보아스에게 대답한 말입니다.
먼저 보아스가 질문을 합니다.
2: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보아스는 자기 밭에 와서 일꾼들을 돌아보고 저들을 격려한 뒤에 자기 갈 길로 돌아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눈에 딱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한 인물이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일하고 있는 소녀들은 다 보아스가 고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에게 물어봅니다. "이는 뉘 소녀냐?"
보통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그렇게 묻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에 대해서 물을 때 지금 보아스가 물은 것처럼 "뉘 사람이냐?"고 묻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창 32: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삼상 30:1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뉘게 속하였으며."
질문이 "네가 누구냐?"가 아니라 "뉘 사람이냐?" "누구에게 속한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네 이름이 뭐냐가 아니라 누구에 속했느냐고 묻는 것이 그 당시 사람들의 관습이었습니다. "누구냐?"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는 "룻입니다"고 대답하면 그것으로 대화는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속한 소녀냐고 하면 아버지가 누구고, 어머니가 누구고, 또 결혼했으면 남편이 누구고 등과 같이 대답을 하게 됩니다. 즉 이런 질문은 조금 더 관심 있는 대화를 유도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보아스가 룻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뉘 소녀냐?"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이 세 가지로 대답을 합니다. 6절에는 룻의 신분을 설명하고, 7절에는 룻의 말을 인용하여 대답을 하고, 세번째로 룻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2: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사환이 룻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끝에서부터 보면 룻은 어디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모압 소녀라고 했습니다. 어디에서 왔습니까? 룻은 모압 지방에서 왔습니다. 오랫동안 베들레헴에서 산 소녀가 아니라 지금 막 모압에서 베들레헴에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누구와 함께 왔습니까? 나오미와 함께 왔습니다.
1:19,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이 성경 구절을 통해서 보면 베들레헴 사람들이 나오미와 룻에 대해서 이미 알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왔을 때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도 룻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11,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룻에 대해서는 온 성읍이 다 안다고 했습니다. 나오미와 룻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누구나 다 나오미와 룻을 돕고 싶었을 것입니다.
7절 상반절에서는 사환이 룻의 말을 인용하여 왜 룻이 여기에 있는지 말합니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베는 자를 따라 다니면서 추수하는 중에 이삭을 줍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쓸데없이 의심을 받을 수도 있고, 추수를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은 룻의 요청을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임의로 허용할 수가 없습니다. 사환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추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든지, 아니면 주인이 오면 그때 부탁하라는 말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룻은 적극적이고 모험적으로 임했습니다. 베는 자를 따라서 단 사이에서 줍게 해달라고 계속 부탁을 합니다. 이런 모험이 있어야 역사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2:7∼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보아스가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허락을 했습니다.
2:15,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룻에게는 모험심이 있었습니다. 위험과 멸시를 무릅쓰고, 또 쫓겨날 것을 각오하고 과감하고 용감하게 나아갔습니다.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룻은 용감하게 했습니다.
7절 하반부에서는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룻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보아스에게 말합니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여기서 집은 누구의 집이겠습니까? 룻이 사는 집일까요? 베들레헴에 있는 나오미의 집과 보아스의 밭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을 텐데 잠시 쉬러 베들레헴의 집까지 다시 돌아갔을 리는 없지요. 이스라엘은 낮에 햇볕이 대단히 따갑습니다. 그래서 밭에 일꾼들이 잠시 쉬면서 음식도 먹고 물도 마실 수 있도록 간이로 만든 집이 있습니다. 룻도 뜨거운 햇살에 계속 서 있을 수 없으니까 그러한 집에서 잠시 햇빛을 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외에는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계속하는 중이라는 것입니까? 우리말 성경은 이삭 줍는 것을 계속하는 것처럼 어감이 풍깁니다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감독이 자기 임의대로 이삭줍는 것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추수가 끝날 때까지, 또는 주인이 올 때까지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고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룻의 인내를 높이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직장에서 계속 10년 동안 근무한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라. 20년 동안 계속해서 한 가지 일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허리를 숙여라. 그리고 30년 동안 한 가지 일에 종사한 사람 앞에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릎을 꿇어라."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았겠습니까? 화나는 일도 많고, 그만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들은 어려운 시련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최후에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비바람이 쳐도 전진하고 눈보라가 쳐도 전진하고 전진해서 결국은 최후의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승리자가 누구입니까? 마지막에 승리를 거두는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공항에 갈 때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비행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태웁니다. 수많은 짐들이 비행기에 실립니다. 그 큰 비행기가 순식간에 만들어지겠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부품을 들이고 많은 손을 거쳐서 비로소 그 육중한 비행기가 만들어져서 활주로를 날아 하늘로 올라갑니다. 대기만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참고 인내하셔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시는 여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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