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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와 룻의 첫번째 대화

룻기 박상훈 목사............... 조회 수 3325 추천 수 0 2010.10.27 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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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룻2:8∼10 
설교자 : 박상훈 목사 
참고 : 승동교회 http://www.seungdong.or.kr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 룻기강해설교 제 12 강  보아스와 룻의 첫번째 대화
룻 2:8∼10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보아스와 룻이 드디어 대화를 시작합니다. 보아스는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한테 룻이 어떠한 사람이고, 룻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룻이 아침 일찍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 말을 합니다.
 2: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내 딸아!"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에게 하는 것처럼 친근함을 가지고 하는 말투입니다. 그것을 보면 보아스와 룻은 나이 차이가 조금 있다고 생각이 되지 않습니까?
 룻 3:10,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여기서 말한 것으로 보아서도 보아스가 연소하지 않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내 딸아!" 할 때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내 딸아 들으라." 따로 들으라고 하지 않아도 지금 룻은 듣고 있습니다. "들으라"고 하는 것은 "귀를 기울여라," "잘 들어라"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하면 잘 들으라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신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20: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시 50: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렘 10:1,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미 1: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보아스는 룻에게 두 가지는 하지 말고, 그 대신에 두 가지를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두 가지 중 첫째는,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새는 엿장수도 없지만 엿장수가 짤랑짤랑 가위질을 일 분에 몇 번 합니까? 엿장수 마음대로지요. 이삭을 줍는 사람이 어느 밭에 가서 이삭을 줍느냐는 것은 누구 마음입니까? 이삭을 줍는 사람 마음입니다. 이 밭보다도 저 밭에 가면 더 많이 주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저 밭으로 갑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두번째로 하지 말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여기서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대신에 두 가지를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했습니다. 보아스를 위해서 일하는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는 말은 다시 말해 보아스는 룻을 단순히 이삭 줍는 여자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돌보고 자기 책임하에 있는 일꾼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겠다는 것입니다.
 추수기에 일꾼을 구할 때는 두 부류로 구합니다. 한 부류는 남자들이고, 또 한 부류는 여자들입니다. 보리 추수할 때 남자들이 하는 일은 곡식을 베는 일입니다. 여자들이 하는 일은 그것을 모아서 단으로 묶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곡식 단을 묶는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라고 한 것은, 9절에 보면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 "그들"이 두 번 나옵니다. 앞에 나오는 "그들"은 누구입니까? 남자들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나오는 "그들"은 누구겠습니까? 소녀들입니다. 히브리어는 남성 단어가 따로 있고 여성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처음 나오는 그들이 남성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즉, 소년들이 베고 여자들이 단을 모아서 묶어 놓으면 그 여자들의 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룻은 이삭을 줍는 여러 사람들보다도 더 유리하게 더 많은 것을 주울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또 어떤 혜택을 주었습니까? 9절 가운데 부분을 봅시다.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극성스럽게 이삭 줍는 여자는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서 넘어가서는 안되는 경계선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겠습니까? 제재를 하기 위해 처음에는 주의를 하다가 나중에는 욕이 튀어나오고 책망을 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일에서 룻을 보호하기 위해 보아스가 지시한 것입니다.
 2:15∼16,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그러니까 보아스는 룻이 단순히 이삭 줍는 사람이 아니라 일꾼처럼 아무런 장애없이 마음껏 주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룻이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뭐라고 부탁을 했습니까? 2:7에서 보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9절에서 보아스가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고 허락해주었습니다. 또 15절에도 보면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룻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의 소원을 그대로 이루어주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9절 하반부를 보십시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성지 이스라엘은 참 덥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려쪼일 때는 얼마나 목이 마르겠습니까? 보아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나라나 유대나, 물을 길어오는 일은 남자가 할 입니까? 여자가 할 일입니까? 보통은 여자들이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옵니다. 여자들이 길어오면 남자들이 물을 마십니다.
 창 24:11, "그 약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
 창 24:13,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삼상 9:11,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이와 같이 여인이 물을 길어오는 경우가 있었고,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사는 이방인들이 길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수 9:21∼27,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더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멀다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리라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 모든 거민을 당신들의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을 인하여 우리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날에 여호수아가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신 29:10∼11, "오늘날 너희 곧 너희 두령과 너희 지파와 너희 장로들과 너희 유사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너희 유아들과 너희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무릇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선 것은."
 그런데 여기 본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소년 남자가 길어온 것을 여자가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혜택을 베풀어주었습니다.
 제가 한 가지 물어봅니다. 우리 나라에서 물맛이 제일 좋은 물이 어디의 물일 것 같습니까? "가평수양관 물맛이요!" "예, 우리 교회의 가평수양관 물맛이 제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수양관의 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언제나 자기 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할 줄 알고, 자기 남편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교회가 어느 교회입니까? 물론 승동교회지요. 자기 교회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구역장은 우리 구역장입니다. 자기 구역장, 자기 교역자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우리 목사님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부흥사경회를 할 때는 강사 목사님을 접대하겠다고 서로 나섭니다. 이미 강사 목사님을 접대할 분이 선약이 되어 있다고 해도 자기가 하겠다고 사정사정하더니 부흥사경회가 끝나고나니까 아무도 목사 대접하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교역자를 사랑할 줄 알고, 자기 목사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평 수양관의 물맛이 제일이라고 좋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서는 물맛이 제일 좋은 곳이 어디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있는 이야기가 기억나십니까? 다윗이 블레셋과 싸움을 할 때 목이 탔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누가 좀 길어다가 그 시원한 물을 먹게 했으면." 그 소리를 듣고 세 부하가 적진을 헤치고 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길어왔습니다. 그때 다윗이 이 물을 어떻게 했습니까? 마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물을 쏟아부었습니다.
 삼하 23: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  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  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스라엘에서 제일 물맛이 좋은 우물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입니다. 그러면 룻기의 이 소년들도 어디서 물을 길어왔겠습니까?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의 그 시원한 물을 길어왔을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보아스가 룻에게 베풀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것보다 더욱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명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의 생수를 우리에게 값없이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은혜를 받은 룻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10절에 보면 룻이 땅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이 행동은 두 가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공경의 표시로써 엎드려서 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마음에 감사가 넘쳤기 때문에 감사의 표시로 엎드려서 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아스에게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2:10,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큰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자신은 이스라엘의 여인과 같은 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전혀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 하다는 뜻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에는 이런 풍속이 있다고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그 사람 집에 가서 찬 이슬을 맞으면서 집 밖에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합니다. 만약 배은망덕하게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집 밖에서 이슬을 맞지 아니했다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마을에서 그를 쫒아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6.25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많이 굶주렸습니다. 쌀도 없어서 보리쌀을 조금 맷돌로 간 다음에 물을 잔뜩 부어서 죽을 끓여서 그것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감사해서, 살아 있는 그 자체로도 감사해서 울고 또 울지 아니했습니까? 그때는 우리가 살아 있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서 천막으로 만든 예배당에 가마니를 깔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좋은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도 무엇이 그리 부족한지 마음에 감사가 없습니다. 교회 환경이 좋지 않다느니, 교육관이 없어서 어떻다느니, 그저 불평 불만입니다. 다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감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 큰 감사의 조건을 날마다 우리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
 벳새다 들판에 5,000명이라고 하는 많은 무리가 모였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모인 사람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예수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때 안드레가 나타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예수님, 이거 예수님께 드릴 테니까 예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안드레야, 평소에도 네 머리가 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혼자 있을 때 조용히 가지고 와야지 입장 난처하게 지금 그걸 가지고 오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적은 것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축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감사할 때에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날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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