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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룻2: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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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상훈 목사 |
참고 : | 승동교회 http://www.seungdong.or.kr |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 룻기강해설교 제 16 강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
룻기 2:20∼23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주해:룻이 하룻 동안 겪은 이야기를 다 들은 나오미가 보아스를 축복했습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이 아침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나오미는 자부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그토록 많은 이삭을 주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에 먼저 여호와의 복이 보아스에 있기를 원하노라고 하며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복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1편도 "복 있는 자는……" 라고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먼저 말씀해 주고 그 뒤에 받을 복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받을 복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합니다. "주여, 이것도 주옵시고, 저것도 주옵시고." 그러나 그것보다도 먼저 복 받을 사람이 되면 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왜 보아스가 여호와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이 그 뒤에 나옵니다.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 하도다."
생존한 자가 누구입니까? 나오미와 룻입니다. 사망한 자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룻의 남편 말론입니다. 저들도 저 하늘 나라에서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함께 기뻐할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과연 나오미가 룻이 주워온 보리 이삭 그 한 가지만 바라보고 그렇게 기뻐했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 뒤에 답이 나옵니다.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룻아! 그 보아스라는 사람은 우리의 친족이다." 그리고 좀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그 사람은 우리의 친척인데 말하자면 "그는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기업이라고 하면 무엇이겠습니까? 요즘은 기업이라고 하면 공장도 있고, 회사도 있지만 그 당시에 기업은 땅입니다. 토지입니다.
레 25:25,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기업을 무르는 것은 이스라엘에 있던 제도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파서 약값 때문에나 치료 때문에, 또는 자녀를 결혼시킬 때 지참금이 필요해서라든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 땅의 일부를 팔았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가까운 친척 가운데 형편이 되는 사람이 와서 동족이 판 것을 땅을 산 사람에게 되사서 돌려주는 가족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땅을 판 것을 다시 사서 물러 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일은 일평생에 한 번 정도 할 수 있는 대단한 특권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가난한 친척을 위해서 내 형편이 되는 대로 기업을 물러 주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친족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겠어요? 그 일은 일생에 두 번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룻기 4장에 나옵니다만 한 번 정도는 할 수만 있으면 기쁨으로 그 당시의 사람들은 다 했습니다.
또 이 기업 무르는 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무엇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까? 자식입니다.
시 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다시 말해서 보아스는 땅만 다시 사서 물러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없어 끊어진 엘리멜렉의 기업을 대신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의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룻에게 암시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근족으로 끊어진 기업을 이어줄 사람 중 하나라는 말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게 된 것이 끊어진 기업을 이을 수 있는 기회라는 말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흥분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에 자기 시모 나오미가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또 한 가지 더 좋은 소식을 전해줍니다.
2:21,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여기 보니까 룻을 가리켜 베들레헴의 에브랏 여인 룻이라 하지 않고 모압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룻이 베들레헴 에브랏 여인이었다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룻은 베들레헴 사람이 아니고 이방인,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가 룻에게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준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라 했습니다. 룻의 신분이 이방 여인인 것을 강조를 해줍니다.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라고 했습니다. 무슨 추수입니까? 23절을 보면 보리 추수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2: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보리 추수가 끝나면 바로 밀을 추수하게 되는데 보리 추수는 대략 4월에서 5월쯤에 하고 밀 추수는 5월, 6월에 합니다. 그러니까 총 몇 달 걸리는 셈입니까? 넉넉하게 잡아서 석 달 정도입니다.
17절에 보면 룻이 밭에서 하루를 줍고 보리를 얼마나 떨었습니까? 한 에바였습니다. 한 에바는 그 당시 장정 한 사람이 보름 정도 일한 삯이라고 했습니다. 하루에 주운 이삭에서 떤 보리가 한 에바였는데 세 달을 계속해서 주우면 얼마나 많겠어요? 이제 다음 해에 추수할 때까지 식량 걱정을 더 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그뿐만이 아닙니다. 3개월 동안 함께 있으면서 보아스와 룻이 정기적으로 얼굴을 대하고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 3개월 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좋은 일이 생기겠지요? 기대하십시다.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이 구절에서 소년들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소년들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일꾼들이라는 말입니다. 일꾼들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남자들은 베는 일을 하고 여자들은 벤 것을 묶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는 것은 보아스는 룻을 마치 자기의 일꾼의 한 사람처럼 대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삭 줍는 사람이 아니라 보아스의 책임하에 있는 일꾼으로 대우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보아스가 "너를 보호해주겠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권면을 합니다.
2:22,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말라."
나오미는 룻에게 자기 딸이 잘 되기를 바라는 어미의 심정으로 "내 딸아!"라고 했습니다. "내가 네게 권면하는 것을 잘 들어라"는 말입니다.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아까 보아스는 누구와 가까이 있으라고 했습니까? 소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의도적으로 소녀들이라고 바꿨습니다.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 말고, 몸조심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남자들을 만나지 말고 몸조심 잘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보아스가 룻의 남편이 될 수 있으니 몸가짐을 바로 하라는 말입니다.
룻이 나오미의 권면을 들었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어머니, 걱정도 팔자셔요. 제 인생 제가 사는 겁니다. 어머니는 제가 갖다 드리는 양식이나 잡수시고 제 삶에 대해서 간섭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은 들어서 하나도 나쁠 게 없습니다. 그 깊은 인생의 경험 속에서 나온 지혜가 담긴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의 지혜는 오랜 경험 속에서 나온 체험적인 것입니다. 장로님들을 존경하고 당회의 치리에 늘 복종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룻은 나오미의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룻의 아름다운 점입니다. 젊은 남자들과 가까이 아니하고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었습니다.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라는 말씀 다음에 참으로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형편이 나아졌다고 나오미와 룻의 관계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나오미에 대한 룻의 태도는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16∼17,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미 룻은 나오미에게 일편단심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헌신, 그 다짐을 계속해서 지킨 것입니다. 사정이 좋아졌다고 해서 어머니를 내팽개치지 아니하고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고 했습니다. 룻은 계속 나오미를 위한 자기의 일편단심의 헌신을 지켰습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헌신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우리를 거느리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더욱더 사랑하고,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평안할 때나 변함없이 주님께 헌신해야겠습니다. 살아 있을 때나, 숨질 때에라도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는 일편단심의 아름다운 신앙이 저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님에게 다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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