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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에 앉은 보아스

룻기 박상훈 목사............... 조회 수 2286 추천 수 0 2010.10.27 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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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룻4:1∼2 
설교자 : 박상훈 목사 
참고 : 승동교회 http://www.seungdong.or.kr 

승동교회 박상훈 목사 룻기강해설교 제23강  성문에 앉은 보아스
룻기 4:1∼2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나오미가 예상한 대로 보아스는 룻에게 했던 약속을 실행하기 위해서 열심히 뜁니다. 오늘 본문 4장에는 보아스가 일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뛰는지 그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은 보아스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준비한 내용입니다.
 보아스는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신뢰가 가는 인물입니까? 자신의 말 한 마디를 천금처럼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변함없이 신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보아스가 그런 사람입니다. 비천한 한 여자인 룻을 위해서 열심히 뜁니다. 룻이 스스로 시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하찮은 여자에 대해서도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 넘어야 할 관문이 있지만 지혜롭게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습니다.
 4:1,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왜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습니까? 옛날 이스라엘 사회에서 성문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거기에 가면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을 지어놓고 살았습니다. 밤이 되면 성 안에 들어와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성문을 통해 밭으로 나가기도 하고, 타작 마당으로 가기도 하고, 또 다른 성읍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문에 올라가기만 하면 사람들을 다 만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보아스가 누구를 만나려고 합니까? 기업 무를 다른 친족입니다. 성문에 가면 다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성문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성이 있고 성은 성곽으로 둘러 있습니다. 성안에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역이 있는데 그곳의 골목들은 매우 좁습니다. 그 좁은 골목에서 상인들이 가게를 열고 물건을 팝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성안에 넓은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성문입니다. 성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성문 앞 광장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들이 모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장사꾼들이 많이 모여서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또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백성들 앞에서 읽기도 했습니다.
 느 8: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이와 같이 성문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거기다가 또 그 당시의 성문은 오늘날의 동사무소, 구청, 시청의 역할을 했습니다.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가 동사무소나 구청, 시청을 찾아가는 것처럼 성문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또 어려운 문제에 대해 재판할 때도 성문을 이용했습니다.
 지금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습니다. 거기 좌정을 하고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첫번째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는 친족이 지나갑니다. 여기에 "마침"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보아스가 기업 무를 사람을 의도적으로 청빙한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그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2장에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가는데 "우연히" 이른 밭이 누구의 밭이었습니까?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또 보아스가 "마침" 베들레헴에서 들로 내려온 것과 같이 여기도 "마침"입니다. 그 뒤에 누가 섭리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누가 지나갑니까? 보아스가 누구에게 말하던 사람입니까?
 3:12,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입니다. 바로 그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갑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보아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길을 열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씨를 뿌리면 그 씨가 싹이 트고 자라게 해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열심히 씨만 뿌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할 때 하나님께서 차례차례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보아스가 기업 무를 친족에게 말했습니다.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이렇게 한 것은 보아스가 그 친족의 이름을 몰라서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가까운 친족이니까 이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서로 사촌간이었을 것입니다. 엘리멜렉이나 기업 무를 자나 보아스나 다 사촌간이니까 이름을 잘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길동아!"라든지 또는 "복동아!"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의도적으로 이 사람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그냥 "아무여!"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제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보아스와 룻이 맺어지게 해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업 무를 더 가까운 친족이 자기의 책임을 이행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안 했습니다. 본문 6절에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해서, 자기의 이익을 생각해서 친족으로서의 기업 무를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후손들이 나중에 이 기록을 읽을 때 조상이 자기 욕심 때문에 친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성경 저자가 친족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생략을 한 줄 압니다.
 보아스가 이리로 와서 앉으라고 하면서 친족을 불렀습니다. 네 가는 길이 타작 마당으로 가는 길이든지, 밭으로 가는 길이든지 그 가는 길을 돌이켜서 이리 와서 앉아라, 내가 너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와서 앉았습니다. 중요한 문제를 두고 보아스가 그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 사람도 성문에서 불렀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무슨 중요한 문제가 있는 줄 알고 와서 앉았습니다.
 계속 보아스가 하는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4:2,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보아스가 장로 십 인을 청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장로가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합니다. 특별히 구약 시대에는 백성들 사이에 어려운 문제나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언제나 장로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해결을 했습니다. 교회로 따지면 그 모임이 당회입니다. 당회가 교회에서 중요하듯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장로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모든 문제는 다 장로회에서 해결을 했습니다.
 신 19:11∼12, "그러나 만일 사람이 그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쳐서 그 생명을 상하여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거든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살인죄를 짓고 한 성으로 도망한 사람을 처리하는 문제도 장로들이 맡았습니다.
 신 22:15, "그 처녀의 부모가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 가지고 그 성읍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처녀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이런 골치 아픈 문제도 장로들이 책임졌습니다.
 신 25:5∼10,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     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 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
 이 성경구절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한 가문의 이름이 대대로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 보아스가 친족 엘레멜렉의 기업을 잇기 위해서 룻과 결혼을 해야 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있을 때도 장로에게 호소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장로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장로들은 지혜가 있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이 존경을 하고, 또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이 많고 지혜 있는 장로님들을 늘 존경하고 또 장로님들의 지시에 잘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보아스가 성읍 장로 몇 사람을 청했습니까? 10인을 청했습니다. 베들레헴 성읍에 장로가 몇 사람 있었겟습니까? 열 사람밖에 없었을까요? 같은 사사 시대의 기록을 살펴봅니다.
 삿 8:14,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신문하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칠 인을 그를 위하여 기록한 지라."
 숙곳이라고 하는 도시에 장로가 77인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들레헴에도 열 사람보다는 더 많은 장로가 있었을 것입니다. 보아스가 지금 성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보다가 장로가 지나가면 청해서 불러온 사람이 열 사람이라는 것입습니다.
 성경에 보면 10이라는 숫자는 많은 것을 대표하면서 온전한 효과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10이라는 것 중에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많은 재앙을 내리실 수 있었지만 온전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출애굽할 수 있는 효과를 나타내시기 위해서 대표적인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또 출 20:1∼17까지에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이 나옵니다. 수많은 계명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을 추려서 온전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압축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민 14: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딱 열 번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도 없이 불순종했습니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열이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말씀하셨습니다. 보아스가 성읍 장로 열 사람을 청하였습니다. 열 사람이면 온전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성읍 장로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4: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또 10절에도 증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1절에도 증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장로들은 중요한 행정적인 문제의 판결에서 증인의 역할을 했습니다.
 보아스가 장로들을 "청"했습니다. 1절에서는 자기 친족을 어떻게 청하였습니까? 그냥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는 장로들 십 인을 청했습니다. 이것은 장로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요청하는 것입니다.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앉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보아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신중하게 일처리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의 율법이 말하는 대로 모든 법적인 절차를 다 따랐습니다. 옳은 일이라 생각되고, 선한 일이라 생각이 되어도 혼자 생각대로 밀고 나가면 말썽이 됩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인정받지못하고 오히려 공동체에 큰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다툼이나 시기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보아스는 성문에서 장로들과 증인들이 모인 가운데 일을 해나갔습니다. 공개적으로 처리를 한 것입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보아스가 처리하고자 한 이 문제는 법적인 권위를 가진 베들레헴의 장로들과 증인들의 인정을 받으며 축복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또 보아스가 나오미의 기업 무르는 일을 놓고 우선적으로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친족에게 알게 하고 그의 의견을 물을 것처럼 우리도 남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적법한 절차를 따라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말씀의 원리에 따라 행동해야겠습니다.
 자 어제 우리가 기도했던 기도의 제목이 이제 곧 응답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더욱더 "주여, 보아스와 룻을 도와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보아스와 룻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를 앉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꼭 성경에 나오는 이 보아스와 룻이라기보다도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웃을 위해서 오늘도 기도의 손을 높이 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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