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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출애굽기 한태완 목사............... 조회 수 4829 추천 수 0 2010.10.28 18: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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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13:17∼22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22절)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사역을 같이 하는 사람 가운데 한국인 아가씨가 한 사람 있는데 그녀는 김 윅스라는 맹인입니다. 그녀는 6.25 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라났는데, 어떤 미국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애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받아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녀가 예수를 믿고 빌리 그레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놀라운 간증을 하곤 합니다.

"나의 인도자는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성실할 때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와 2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오늘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내일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내 생애를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사 가운데 출애굽의 역사는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어떤 고난을 당했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기 백성의 고통과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큰 과업을 맡겨주신 일 그리고 모세가 애굽 왕 바로 앞에 나아가 자기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싸운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끈질기게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줄 것을 거부하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땅에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다가 마지막 열 번째로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죽이는 재앙을 겪고 바로는 하는 수 없이 이스라엘의 해방령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 자유를 찾아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민중들에게는 그 길을 비춰주는 빛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태양 밑에서는 낯선 외적들의 공격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으므로 이스라엘과 대적들 사이를 가로막아 가리워 주며 보호해 주는 그늘이 필요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와 축복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추사 주야로 진행케 하셨습니다.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을 인도한 구름 기둥, 불기둥을 생각하는 가운데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도 좌우를 분별할 수 없이 모두가 어둡고 지척을 가릴 수 없는 환경과 예측할 수 없는 앞일을 가리기 위하여 우리의 이 어두운 마음과 앞길을 비춰줄 빛이 요구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항상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원수들의 해를 입을 위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를 쳐서 해치려는 무리들 앞에서 나를 가리워 주고 저들이 나를 겨누지 못하게 하고 나를 흔들어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줄 짙은 안개 같은 구름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택한 백성 앞에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기 위하여 먼저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고 있는 모세를 불렀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양하였습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모세는 그래도 또 사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표징으로 보여주셨지마는 사양하였습니다. 주여! 저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합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말도 잘해야 하겠는데 저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때 그들 앞에서 행하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 주님이 먼저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시고 앞서 가시면서 담대하라고, 겁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온갖 위험과 불안과 절망 중에서 하나님을 따라 안전과 평화와 희망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광야와 같이 길은 험하고 위태합니다. 그러나 겁낼 것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행하시므로 따라갈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우리 앞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따라가면 실수나 염려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갈 길을 모르는 양과 같은 우리들 앞에 행하시며 우리의 갈 길을 가리켜 주십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은 언제나 우리 인간의 필요와 형편에 응하여 주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을만한 분명한 이유를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행할 의무 앞에서 주저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용기와 담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실패하여 낙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슬픔과 탄식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평강을 약속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의 신앙을 이렇게 간증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구름 기둥, 불기둥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며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害)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오늘 본문 중에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므로 끝까지 우리가 의지할만한 절대적인 능력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위험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워서 떨고 있을 때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위험과 공포와 환란의 때에도 함께 하실 뿐더러 새 날이 오게 하시고 새 소망이 넘치게 하시며 내일 에 기대를 가지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생활에 변화를 일으키시고 계획하게 하시고 건설하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그것은 환란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된다면 어떤 고난과 위험과 절망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이 고난에서 시들고 거꾸러지고 저 무서운 절망의 심연 속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떠나지 않으신 것처럼 오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주님도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고 그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였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은 구름 기둥, 불기둥을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애를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은 반드시 큰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나의 생에 여러 방이 있다면 그 방의 열쇠를 모두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 개는 맡기고 아직도 내게 가장 요긴한 것 몇 개는 그냥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까지 몽땅 맡겨야 합니다. 혹 어떤 가정을 보면 같은 집에서 사는 부부간에도 비밀이 있습니다. 남편 돈주머니 따로 있고 부인 돈궤가 따로 있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라면서 그럽니다. 부부는 촌수를 따지면 무촌입니다. 촌수가 없습니다. 자녀는 일촌이요, 형제는 이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부부 관계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그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고달픈 길이었고 실망과 후회가 거듭되는 긴 여행이었습니다. 무려 40년의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기쁨과 희망에 넘쳐서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온갖 역경과 위험과 실망이 뒤따랐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도 하고 애굽을 떠난 것을 후회도 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어떻습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짐 이 개인의 생활에, 가정 생활에, 때로는 나라와 겨레 앞에 가로 놓여 억누르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왜 이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고난과 위험이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고 의심하게도 됩니다. 성도여러분 ! 이런 때일수록 낙심하지 맙시다! 오히려 우리는 여기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 찌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하였습니다.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인도했습니까? 그 다음에 보니 '하나님이 광야 길로 백성을 인도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은 평탄한 길을 원합니다. 가까운 길을 찾습니다. 수고 없이 목적한 곳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친 광야의 길, 멀고 고되고 시달리는 길을 통하여 약속한 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우리가 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배후에 숨은 뜻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먼 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17절에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였기 때문이었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버립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일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성도여러분!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도록, 괴로울 찌라도 목적을 향해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서 우리의 갈 길을 다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로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홍해를 건너지 않을 수 없이 하셔서 다시 돌아설 수 없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 평탄한 길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쉽고 가벼운 것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는 때로는 거칠고 괴롭고 험한 길이나 망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결단코 택한 백성인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물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 : 1 - 3).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사람마다 승리의 길, 행복의 길을 찾습니다. 가능한 한 빠른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갈 때에 블레셋 사람의 땅을 지나는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앞에 행하시되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길을 인도하시는 일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길의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천국모형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장래에 대한 소망을 주려는 것입니다(렘 29:11). 하나님은 그의 자녀 된 성도들이 영혼도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온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보전되기를 원하시니 우리를 진정 사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나그네 인생길에 완전한 안내자와 보호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실족하지 않고 승리하며 영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빠른 길보다는 안전한 길로 인도합니다(17절).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10일이면 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지중해 해안길입니다. 그 길은 군사도로로서 해적 출신인 블레셋 군대가 있는 길입니다. 그들은 싸움에 능한 자들이기 때문에 전쟁에 익숙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과 싸울 경우 피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발걸음을 돌려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빠른 길보다 안전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겸손하고 하나님 섬기는데 익숙한 자들이 되도록 40년 동안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입니다(신 8:2∼4).

셋째,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걷는 자는 항오를 지어 전진해야 합니다(18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왔습니다. 항오란 군대를 편성한 행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질서를 지킬 때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가 있습니다. 앞장서야 할 제사장과 그 뒤를 따르는 백성, 그 위에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가 있었습니다. 앞서가는 목회자, 그 뒤를 따르며 순종하는 성도, 거기에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돋는 해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1:78-79)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숲 속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강아지는 너무도 더러웠고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맸던지 굶주림에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아지 목에 달린 이름표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주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개를 붙들었습니다. 그 개의 이름은 ‘밥스’였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글자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왕의 강아지였던 것입니다. 왕의 부처가 에딘버러 성에 휴가를 왔다가 그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즉 우리가 어디를 헤매던지 우리에게 이름표만 분명하다고 한다면 즉각적인 보호가 주어지게 되며 확실하게 주인에게로 인도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인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15:13)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시48:14)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잠1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1)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48:14)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약속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해야 합니다.(잠3: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가장 지도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만심이 강하여 믿음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아의 우상이 이미 그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이 언제나 하나님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따라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 소경이 멀리 있는 장애물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를 인도하시는 분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목적지에 무사히 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이 보여주신 대로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면 하나님은 내일도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마침내 우리를 복된 길로 도달하게 하실 것입니다.

2.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잠3: 5)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한 후 그 기세를 몰아 러시아까지 진격해 들어가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출정 전날 그는 한 귀족 부인에게 승전의 확신을 갖고 자신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듣고 있던 부인은 '인간이 계획하나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껄껄 웃으며 '부인, 모든 것은 제가 계획하고 제가 이룰 것입니다'라고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대패하고 1814년 퇴위, 엘바섬에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찌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16:9)
"철학의 출발은 인간은 무엇인가?"였다면 철학의 마침은 "너 자신을 알라"였습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신의 지식을 의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솔로몬은 "지식을 인하여 번민을 더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해결 할 수 없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말할 때가 가장 모를 때이다"라는 말은 충분히 새길만한 말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명철입니다.

3.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합니다.(잠3: 6)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범사에 하나님을 앞세우며 살라"는 말입니다. 칼빈은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는다면 한계에 달했을 때나 인간적인 절망이 선언되었을 때에나 우리는 "하나님만은 해결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그에게 맡길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도로 인도할지니라"(잠23:19)

4. 말씀에 순종하고, 타인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9장 11∼20절에 보면 사울의 아버지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리고 사울에게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아오라고 지시합니다. 사울이 암나귀를 찾아 헤매다가 사환의 조언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을 찾아가게 됩니다. 도중에서 물을 길어 가는 소녀들을 만나서 사무엘이 있는 곳을 알게 되고 결국 사무엘을 만나게 됩니다. 사무엘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인도하셔서 사무엘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가게 되는 여러 사소한 사건들이 우연하게 일어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소한 사건들을 통해서 사울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는 꿈, 환상, 계시, 기적, 그리고 특별한 사건들만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복된 길로 인도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경험 환경 사건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종종 실수하고 오해할 때가 많이 있고 우리는 그러한 일로 갈등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목적 아래서 일어나는 우리의 실수는 더 이상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일어남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깊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만남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길을 가면서 타인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남은 우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중요한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변치 않고 나를 항상 인도하시는 주님, 유약한 양 같은 우리를 복된 곳으로 인도하시오니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따르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그곳에 있게 하셔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게 하소서. 제게는 제 생각과 판단으로 인한 많은 실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는 시간이 더 길어지게 하시고, 제 길을 인도하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충만케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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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0 역대하 정직한 자의 생활 대하19:1-11  김창인 목사  2010-10-29 2362
4389 사무엘상 선민의 밑천 삼상12:19-25  김창인 목사  2010-10-29 2154
4388 유다서 사랑하는 자의 일 유1:17∼23  김창인 목사  2010-10-29 2677
4387 요한계시 금 촛대 교회 계2:1∼7  김창인 목사  2010-10-29 2584
4386 누가복음 예수의 사람 눅19:28∼40  김창인 목사  2010-10-29 2917
4385 사무엘상 역경을 이긴 사람 삼상1:4-20  김창인 목사  2010-10-29 3988
4384 요한복음 일하는 사람 요9:1-12  김창인 목사  2010-10-29 3515
4383 요한복음 베데스다의 은혜 요5:1-18  김창인 목사  2010-10-29 3816
4382 에배소서 성도의 마땅한 바 엡5:1-14  김창인 목사  2010-10-29 2826
» 출애굽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출13:17∼22  한태완 목사  2010-10-28 4829
4380 로마서 코드 J를 맞춰라 롬14:8-9  강재식 목사  2010-10-28 1948
4379 마태복음 하나님 앞의 겸손 마6:14-18  김서택 목사  2010-10-28 2426
4378 룻기 베레스의 세계 룻4:18∼22  박상훈 목사  2010-10-27 2692
4377 룻기 오벳이 태어남 룻4:16∼17  박상훈 목사  2010-10-27 2954
4376 룻기 기쁨을 회복한 나오미 룻4:14∼17  박상훈 목사  2010-10-27 1957
4375 룻기 보아스가 룻을 취함 룻4:13  박상훈 목사  2010-10-27 2070
4374 룻기 백성과 장로들의 축복 룻4:11∼12  박상훈 목사  2010-10-27 2041
4373 룻기 보아스의 선포 룻4:9∼10  박상훈 목사  2010-10-27 1824
4372 룻기 기업 무를 권리를 얻은 보아스 룻4:7∼8  박상훈 목사  2010-10-27 2126
4371 룻기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하는 친족 룻4:5∼6  박상훈 목사  2010-10-27 2084
4370 룻기 네가 아니면 내가 무르리라 룻4:3∼4  박상훈 목사  2010-10-27 1986
4369 룻기 성문에 앉은 보아스 룻4:1∼2  박상훈 목사  2010-10-27 2286
4368 룻기 가만히 기다리라 룻3:16∼18  박상훈 목사  2010-10-27 2192
4367 룻기 보아스의 곡식제공 룻3:14∼15  박상훈 목사  2010-10-27 2187
4366 룻기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룻3:12∼13  박상훈 목사  2010-10-27 1597
4365 룻기 청혼수락 룻3:10∼11  박상훈 목사  2010-10-27 1832
4364 룻기 청혼 룻3:6∼9  박상훈 목사  2010-10-27 1774
4363 룻기 룻의 결혼을 위한 나오미의 작전 룻3:1∼5  박상훈 목사  2010-10-27 2588
4362 룻기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 룻2:20∼23  박상훈 목사  2010-10-27 1818
4361 룻기 일하고 돌아온 룻 룻2:17∼19  박상훈 목사  2010-10-27 1861
4360 룻기 식사 시간에 룻2:14∼16  박상훈 목사  2010-10-27 786
4359 룻기 보아스와 룻의 두번째 대화 룻2:11∼13  박상훈 목사  2010-10-27 4486
4358 룻기 보아스와 룻의 첫번째 대화 룻2:8∼10  박상훈 목사  2010-10-27 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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