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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3: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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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st888 |
2010.10.31 주일오전 예배 설교
롬13:8-10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아멘.
율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이라는 차원에서 구원을 얻는 방편이 아니라 이미 구원 얻은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패턴으로 주셨습니다. 그 율법의 목적은 인생을 사랑하사 헛된 신에게 절하지 않고 헛되고 풀리지 않는 인간적인 철학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경외하며 하나님의 사랑,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이웃과 함께 살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의 그 궁극적인 완성의 목표는 무엇인가? <율법의 완성>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모든 율법의 목적은 사랑
기독교의 정신 3가지는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심대로 믿음으로 시작하여 참된 소망을 지닌 자들로 살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본문 롬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마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 예수를 받은 사랑의 빚
기독교는 교훈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도를 닦는 수준의 도교가 아닙니다. 살아서 참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죽어 지옥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멸망의 길에 서 있는 인생을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 가운데서 불러 용서와 사랑으로 구원해주신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전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우상처럼 여길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입니다. 범종교는 가상을 믿고 기독교는 사실을 믿습니다. 본문 롬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성경에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빚을 진 자로 여깁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지은 죄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전적인 사랑과 은혜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요1서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면 하나님의 죄사함과 은혜를 체험해야 할 수 있습니다.
명목적으로 교인이기 때문에 행하는 사랑은 힘겨워서 끝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사랑을 경함하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먼저 주님을 사랑하라고 늘 강조합니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 은혜를 얻고 타인을 사랑할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요13: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하셨으니 먼저 사랑 받은 일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체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을 먼저 뜨겁게 사랑하게 되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사랑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이웃이 죽어 가는데 그냥 신경 안 쓰는 것도 죄가 됩니다. 이웃에게 의도적으로 악을 행치 않아도 이기심으로 살고 너무 개인주의로 치우치면 이웃을 버리는 경우가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사는 태도가 아닙니다.
의도적인 악이든 무관심이든 모두 이웃을 해롭게 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사랑이 메마른 사회를 삽니다. 기독교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비교될만한 것이 없을 만큼 위대한 사랑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을 잘 믿고 경외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은 진실로 신앙심 없이는 할 수 없어요. 신앙 좋은 사람은 사랑이 많아야 옳습니다. 신앙은 좋다면서 사랑이 없다면 참된 신앙의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반듯한 신앙, 경건한 신앙, 순교적 신앙의 그 결국은 사람의 영혼과 삶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먼저 성도들 사이에 사랑이 얼마나 있는지 반성해봅시다. 그리고 이웃을 진정 얼마나 긍휼히 여기고 사랑합니까? 이 가을에 사랑을 품고 살아야 하는 성도의 중심을 살피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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