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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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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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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 권 태초의 말씀 - 29. 태초라는 의미.
그러나 '태초에 만들었다'란 단지 '태초에 만들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은 그 '천지'에 대한 해석이 진실이기 위해서는
꼭 '천지의 질료'라는 의미로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가지적과 물체적과의 양쪽을 포함하는
전체의 질료라는 뜻으로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 그가 그것은 이미 형성된 피조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다음의 질문이 뒤따르겠지요.
'만약 하나님이 그것을 맨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부터 하나님은 무엇을 했는가?
모든 피조물이 다 만들어졌으면 뒤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셈이 될 테고
따라서 싫어도 이와 같은 반문을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뒤에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어째서 그것이 맨 처음인가 말이다"
이에 반해서 만약 그가 "하나님은 우선 최초에 무형의 질료를 만들었다.'라고
한다면 그 설은 불합리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런 경우에 그는 영원에 있어서 앞서는 것,시간에 있어서 앞서는 것,
선택에 있어서 앞서는 것, 질서에 있어서 앞서는 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영원에 있어서 앞선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물에 우선하는 경우,
시간에 있어서 앞선 다는 것은 예를 들어 꽃이 열매에 우선하는 것,
선택에 있어서 앞선 다는 것은 열매가 꽃보다도 우선하는 것,
질서에 있어서 앞선 다는 것은 예를 들어 소리가 노래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지금 든 네 가지의 예 가운데두 가지는 아주 쉽게 이해됩니다만
처음과 나중의 것은 매우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주여,스스로가 불병이면서 가변적인 것을 만들었고
따라서 보다 우선하는 당신의 영원성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무척 어렵고 드믈게밖에 얻을 수 없는 직관입니다.
다음으로 소리보다 노래가 우선한다는 은 별다른 노력없이
인식하기 위해서는 실로 날카로운 정신의 투철력이 필요합니다.
대체 누가 그토록 날카로운 투철력을 지니고 있을까요?
ㅡ즉 노래하는 것은 노래의 형태에 따라서 형성된 소리입니다.
그렇지만 뭔가 형성되지 않은 것도 실제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형성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질료는 그 질료에서 생기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보다 먼저'라고 하는 것은
질료 그 자체가 뭔가를 낳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질료는 뭔가가 되는 것입니다.
또 시기의 감격이라고 하는 점에서 '보다 먼저'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은 시간에 앞서서 노래가 아닌 무형의 소리를 내고
그런 다음에 소리에 노래에 꽃을 맞춰 대거나 노래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나무로 궤짝을 만들거나
은으로 조그만 그릇을 만들거나 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렇게 합니다.
이런 경우의 질료는 확실히 거기서부터 생기는 것의 형태에
시간적 의미에서도 앞섭니다.
그러나 노래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노래가 불려져서 그 소리가 들릴 경우,처음에는 형태가 없는 소리가 울리고
그런 다음에 노래의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는 울리자마자 지나가 버립니다.
또 한번 들음으로써 기술에 의해서 가공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노래는 바로 소리가 울리는 중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노래소리가 노래의 질료로서 바로 그 소리가 형성되어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앞서도 말한 것같이 질료로서의 소리는
형태로서의 노래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단지 물건을 만드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먼저가 아닙니다.
사실 노래의 작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정신이고 소리는 신체에 속하여
신체쪽에서 정신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은 신체를 이용하여 소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 시간적으로 먼저인 것도 아닙니다.
소리는 노래와 동시에 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이라는 점에서 먼저도 아닙니다.
사실 노래는 단순한 소리만이 아니고 거기에 덧붙여서
아름다운 형태를 가진 소리를 말하는 것이므로 소리가 노래보다 나을 것은 없습니다.
소리가 노래보다 먼저라고 하는 것은 기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노래가 형태를 받아서 소리가 되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소리가 형태를 받아 노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나열한 것에 의해서 알 만한 사람은 다음의 것을 이해함이 좋을 것입니다.
"물건의 질료가 우선 최초에 만들어졌고 '천지'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천지가 만들어졌으니까." 라고 말하지만
이 경우 '최초'라 함은 시간적으로 맨 먼저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물건의 형상에 의해서 비로소 생긴 것이므로
질료 그 자체는 형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것을 지금 우리들이 인정할 때엔 시간이 있어서
시간과 함께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료에 대해서 뭔가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마치 시간적으로 보다 우선하는 것인 듯이 얘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기야 가치라는 점에서 말한다면 최저의 것이기는 하지만.
왜냐하면 무형의 것보다도 형상을 가진 쪽이 가치에 있어서 낫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ㅡ 더구나 창조주의 영원한 쪽이 질료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물건은 질료에서 생기지만
그 질료 자신은 창조주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초에 만들었다'란 단지 '태초에 만들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은 그 '천지'에 대한 해석이 진실이기 위해서는
꼭 '천지의 질료'라는 의미로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가지적과 물체적과의 양쪽을 포함하는
전체의 질료라는 뜻으로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 그가 그것은 이미 형성된 피조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다음의 질문이 뒤따르겠지요.
'만약 하나님이 그것을 맨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부터 하나님은 무엇을 했는가?
모든 피조물이 다 만들어졌으면 뒤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셈이 될 테고
따라서 싫어도 이와 같은 반문을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뒤에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어째서 그것이 맨 처음인가 말이다"
이에 반해서 만약 그가 "하나님은 우선 최초에 무형의 질료를 만들었다.'라고
한다면 그 설은 불합리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런 경우에 그는 영원에 있어서 앞서는 것,시간에 있어서 앞서는 것,
선택에 있어서 앞서는 것, 질서에 있어서 앞서는 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영원에 있어서 앞선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물에 우선하는 경우,
시간에 있어서 앞선 다는 것은 예를 들어 꽃이 열매에 우선하는 것,
선택에 있어서 앞선 다는 것은 열매가 꽃보다도 우선하는 것,
질서에 있어서 앞선 다는 것은 예를 들어 소리가 노래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지금 든 네 가지의 예 가운데두 가지는 아주 쉽게 이해됩니다만
처음과 나중의 것은 매우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주여,스스로가 불병이면서 가변적인 것을 만들었고
따라서 보다 우선하는 당신의 영원성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무척 어렵고 드믈게밖에 얻을 수 없는 직관입니다.
다음으로 소리보다 노래가 우선한다는 은 별다른 노력없이
인식하기 위해서는 실로 날카로운 정신의 투철력이 필요합니다.
대체 누가 그토록 날카로운 투철력을 지니고 있을까요?
ㅡ즉 노래하는 것은 노래의 형태에 따라서 형성된 소리입니다.
그렇지만 뭔가 형성되지 않은 것도 실제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형성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질료는 그 질료에서 생기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보다 먼저'라고 하는 것은
질료 그 자체가 뭔가를 낳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질료는 뭔가가 되는 것입니다.
또 시기의 감격이라고 하는 점에서 '보다 먼저'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은 시간에 앞서서 노래가 아닌 무형의 소리를 내고
그런 다음에 소리에 노래에 꽃을 맞춰 대거나 노래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나무로 궤짝을 만들거나
은으로 조그만 그릇을 만들거나 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렇게 합니다.
이런 경우의 질료는 확실히 거기서부터 생기는 것의 형태에
시간적 의미에서도 앞섭니다.
그러나 노래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노래가 불려져서 그 소리가 들릴 경우,처음에는 형태가 없는 소리가 울리고
그런 다음에 노래의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는 울리자마자 지나가 버립니다.
또 한번 들음으로써 기술에 의해서 가공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노래는 바로 소리가 울리는 중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노래소리가 노래의 질료로서 바로 그 소리가 형성되어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앞서도 말한 것같이 질료로서의 소리는
형태로서의 노래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단지 물건을 만드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먼저가 아닙니다.
사실 노래의 작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정신이고 소리는 신체에 속하여
신체쪽에서 정신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은 신체를 이용하여 소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 시간적으로 먼저인 것도 아닙니다.
소리는 노래와 동시에 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이라는 점에서 먼저도 아닙니다.
사실 노래는 단순한 소리만이 아니고 거기에 덧붙여서
아름다운 형태를 가진 소리를 말하는 것이므로 소리가 노래보다 나을 것은 없습니다.
소리가 노래보다 먼저라고 하는 것은 기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노래가 형태를 받아서 소리가 되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소리가 형태를 받아 노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나열한 것에 의해서 알 만한 사람은 다음의 것을 이해함이 좋을 것입니다.
"물건의 질료가 우선 최초에 만들어졌고 '천지'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천지가 만들어졌으니까." 라고 말하지만
이 경우 '최초'라 함은 시간적으로 맨 먼저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물건의 형상에 의해서 비로소 생긴 것이므로
질료 그 자체는 형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것을 지금 우리들이 인정할 때엔 시간이 있어서
시간과 함께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료에 대해서 뭔가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마치 시간적으로 보다 우선하는 것인 듯이 얘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기야 가치라는 점에서 말한다면 최저의 것이기는 하지만.
왜냐하면 무형의 것보다도 형상을 가진 쪽이 가치에 있어서 낫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ㅡ 더구나 창조주의 영원한 쪽이 질료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물건은 질료에서 생기지만
그 질료 자신은 창조주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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