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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111】아내의 상담.
아내의 졸업식을 마치고 가족들이 모처럼 밖에서 외식을 했습니다. 집에 가서 밥을 해 먹으려면 너무 늦을 것 같고, 또 2년 동안 학교다니느라 고생한 아내를 위해 재가 한턱 내는 것입니다.
자주 가는 판암동 어느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나:"저기요. 여기 삼겹살 4인분하고 밥 4개 주세요"
아내:"밥은 조금 있다가 주세요"
나:"밥은........"
아내는 자주 고기를 먹는게 아니니 허리띠 풀고 고기를 실컷 먹으라고 주장합니다. 밥과 같이 먹으면 고기를 더 못 먹으니 고기로 먼저 배를 채운다움 그 다음에 밥을 먹으라고... 그런데 사실은 저는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중학교때까지는 고기를 안 먹는 채식주의자였고, 고등학교를 거의 군대수준인 곳에서 다니며 어쩔 수 없이 뭐든지 먹는 법을 배웠습니다.(고참들은 안 먹으면 왜 무조건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지 몰라)
상추에 삼겹살을 놓고 밥을 한숫갈 얹어서 먹으면 고기의 미끈덕거리는 느낌이 많이 사라지고 맛있습니다. 이게 저의 삼겹살 먹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 고기를 먹을때면 언제나 밥이 늦게 나왔습니다.
밥을 먼저 주문하면 아내는 밥은 조금 있다 가져오라고 단칼에 쳐버립니다. 말도 못하고 깨작거리다 밥이 나오면 그때부터 열심히 고기를 주워 먹는.... 그러다가 10년만에 용기를 내서 '오해말고 이해해 달라고 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나:"나는 고기로 배 채우는게 별로 체질에 안 맞고 조금 먹어도 좋으니 첨부터 밥이랑 같이 먹고 싶어. 누구든 자기가 가장 맛나게 먹는 법은 자기가 잘 아는게 아니겠어?" 아내가 10년만에 이해를 해 줬습니다.
저도 제가 알지 못하는 아내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기준을 가지고 10년이 넘도록 이해를 못해주고 있는 부분이 분명히 많이 있을 것입니다. 2년동안 상담공부를 마치고 졸업하는 날 아내는 남편의 한가지 고민을 잘 들어주고 훌륭하게 상담을 해 준셈입니다. 2004.2.19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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