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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1:3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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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7·09·01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매우 힘든 일을 당합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저의 경우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12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한 동안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꼭 어머니가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부엌으로 가봤다가, 방엘 들어가 봤다가, 창고에 가보기도 했습니다. 집안 어딘가에 어머니가 꼭 계실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한참 눈물을 흘리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나면서 차츰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까지도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큰 슬픔과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일은 아마도 사랑하는 이와 사별하는 일일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며 한계입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거나 따질 수가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난 문제입니다. 그러나 죽음 말고도 우리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난 일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고통과 실패와 아픔을 체념하고 가슴 한 구석에 담아둔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체념하고 포기한, 우리의 한계와 능력 밖에 있는 일들을 얼마든지 다루시고 해결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무덤 문을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난감해 했습니다. 죽어서 장사지낸 지 나흘이나 되어서 썩은 냄새가 나고 있는데 무덤 문을 열라고 하시는 말씀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난 일들도 얼마든지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이 능력을 힘입으려면 끝까지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마르다와 마리아는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오빠를 사별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동정하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통분히 여기시면서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으로 가시니”(38절) ‘통분히 여긴다’는 말은 ‘화가 나서 씩씩거린다’는 뜻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죄와 죽음에 대해서 분노하셨다. 그리고 마치 원수를 징벌하시려는 것처럼 무덤으로 가셨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는 스바냐를 묵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괴롭힌 모압과 암몬과 앗수르에게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큐티를 하시면서 29일자 묵상 에세이를 읽어보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통분해 하시는 주님의 심정이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대적과 원수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는 무덤 문을 열어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39상) 유대 지방에서는 바위를 파서 무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무덤은 큰 돌을 문으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사되셨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도 그런 무덤이었습니다. 돌을 옮겨놓으라는 말씀은 무덤 문을 열어 놓으라고 뜻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매장을 하는 경우라면 무덤을 파고 관 뚜껑을 열어 놓으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내실 것을 믿지 못했던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명령은 난감하고 괴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가정의 대들보였고, 그녀들이 그렇게 사랑했던 나사로가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나사로를 무덤에 장시지내고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해버렸습니다. 아직은 슬픔과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이제 세월이 흐르면서 이 충격과 슬픔도 가라앉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예수님은 그 무덤 문을 열어 놓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처 채 가라앉지도 않은 슬픔과 고통을 다시 들추어내시기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아니, 무덤 문을 열어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이미 죽어버린 오빠, 이제 장사지낸 지 나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고 있는데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인간에게 죽음은 끝이며 한계입니다. 사람이 일단 죽고 나면 우리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무덤 문을 열어 놓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며 한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주인이시며 부활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나사로의 문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가 병들어 죽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는 무덤 문을 열어 놓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마르다는 무덤 문을 열어 놓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놀라고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39하)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죽어 무덤에서 썩어가고 있는데, 무덤 문을 열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르다는 그러니 제발 그만 두시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런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40절)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덤 문을 여는 것을 매우 난감해 했습니다. 이렇게 믿지 못하는 마르다에게 주님께서는 끝까지 믿을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당신의 모든 일을 가장 선하게 인도해주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믿으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믿었다가 안 될 것 같으면 다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돌아가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고 체념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하셨던 말씀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처음에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여 함이라 하시더라”(4절)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예수님께서 오시자 마르다는 울면서 주님께서 안 계셔서 오라비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마르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23절) 이 말씀을 듣고 마지막 부활 때는 다시 살 줄로 믿는다고 대답하는 마르다에게 주님께서는 엄청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줄곧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아직도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하셨던 말씀을 상기키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믿고 따라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한 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일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중간에 실망스런 결과가 나오더라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끝까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잘 안 되는 것 같으면 재빨리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돌아가 버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75세에 받은 약속이 100세가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까? 왜 더 빨리 이루어주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분명히 드러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80세 쯤 되었을 때 이삭을 낳았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가 아직도 정력이 좋아서 아들을 낳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제대로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중간에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00세가 되어 이삭이 태어나자, 누가 보아도 이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오래 기다린 후 아브라함은 드디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만큼 해서 응답이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제대로 나타나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열심히 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일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습니까? 이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게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그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믿음으로 버티십시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보아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시는 목적
무덤 문이 열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41-42절)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목적은 그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사실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 사실은 우리의 구원과 결정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누구나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이적을 통해 입증하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 일 역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사람들이 믿고 구원 받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성령께서 마음을 여시고 믿게 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보내신 주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던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십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보내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가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내심을 받은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우리를 받아들이는 자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고, 우리를 거절하는 자는 주님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10:40) 누구든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거절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도할 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에 헌신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들을 반드시 전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 내 힘으로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문제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런데 당신은 끝까지 믿음으로 응답을 받고 있습니까? 도중에 포기하고 체념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한계점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인내하면서 끝까지 믿음으로 밀고 나가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한계점에 부딪혔다 해도 끝까지 믿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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