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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경배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187 추천 수 0 2010.11.09 12: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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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2:1-11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7·09·30

당신은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성경을 요약한다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는 불행한 이웃을 도와주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불행한 이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독교의 모든 것일까요? 이것이 과연 기독교의 본질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나사로의 동네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내신 나사로도 참석했으며, 마르다와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마리아는 갑자기 매우 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향유는 값이 300데나리온이나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이라면 노동자의 일 년 임금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 중에 가룟 유다가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5절) 가룟 유다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옳은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을 두둔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7-8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기독교의 본질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베다니에서 열린 잔치
  

베다니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내신 나사로의 동네였습니다. 그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를 준비한 사람은 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막14:3)
  ‘문둥이 시몬’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본래 문둥병자였는데 예수님께서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신 것이 감사해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내신 나사로와 그의 두 누이도 함께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신 예수님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가 지금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을 고침 받은 시몬도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장면입니까?
  그런데 그 은혜롭고 즐거운 잔치 자리에서 갑자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값비싼 나드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겼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3절)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
  

마리아는 왜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을까요?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마리아의 이 행동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마리아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 문제를 푸는 데 달려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오빠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셨을 때 말할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오빠를 다시 살려주셨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이를 데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감사한 마음만으로도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을 만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렇게 한 데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오빠를 다시 살려주신 일을 통해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마리아는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님께서 보내신 능력 많은 선지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마리아는 오빠가 병들었을 때 급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즉시 오셔서 병든 오라버니를 살려주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고 오라버니는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라버니가 죽어서 장사된 지 나흘이나 지난 후에야 오셨습니다. 마리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녀는 예수님께 대해 야속하고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은 뒤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셨을 때 맞이하러 나가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녀를 부르셨을 때 주님께 와서 자기의 비통하고 섭섭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요11:32)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은 오빠를 살려주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기쁘고 감사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능력 많은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을 대하는 마리아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더 이상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오셔서 자기들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지극히 사랑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죽은 자기의 오빠를 살려주셨습니다. 마리아는 감사와 감격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대한 경외감으로 충만했습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지극히 값진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신 그분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은 단순한 감사의 표시가 아니라 예수님께 대한 그녀의 신앙고백이었고 믿음의 표현이었으며 경배였습니다. 지금까지 마리아는 이 향유를 자신의 보물 1호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향유는 결혼을 위해 준비해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향유는 오늘로 치면 비상금에 해당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향유는 마리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리아에게는 더 이상 그것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죽음과 미래에 대한 모든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그녀의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동안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향유를 단번에 예수님께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이 행위는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신앙고백이었고 예배였습니다.

가룟 유다의 비난
  

그러나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이러한 마리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리아가 왜 그처럼 이상한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중에 가룟 유다는 분노하면서 미라아의 이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4-5절)
  가룟 유다의 말은 당연하고 타당성이 있어서 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일 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를 한순간에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얼마나 허망한 일이고 큰 낭비입니까?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굶주린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께서도 틀림없이 그것을 더 기뻐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나 가룟 유다의 비난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가룟 유다의 본심을 이렇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6절)
  가룟 유다는 제자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교양 있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매우 이기적이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제자 공동체는 그에게 재정을 맡겼습니다.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는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성도들의 후원금으로 필요를 충당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바로 그러한 헌금을 관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재정에서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버린 향유는 시가가 300데나리온 이상 나간다는 것을 금방 알았습니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자기에게 준다면, 가룟 유다는 거기서 상당한 금액을 가로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계산이 빠른 가룟 유다는 금방 이 모든 것을 계산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탐욕은 깊숙이 숨긴 채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를 명분으로 내세워 마리아의 행동을 강하게 비난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는 마리아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땅히 그러한 경배를 받으셔야 할 분이시라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그런 어리석고 무모한 마리아의 행동을 내버려 두신 것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드리는 마리아의 경배도 알지 못했습니다. 늘 그분을 곁에 모시고 다니면서도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오늘 우리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하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교회에 열심히 나올 수는 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점잖고 교양 있게 처신할 수 있습니다. 앞장서서 봉사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배 시간에 나와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진실된 믿음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가지고 고민하며 괴로워해본 적이 없습니다.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예배가 무엇인지, 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마리아를 변호해주심
  

가룟 유다가 화를 내면서 마리아를 비난하자,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가룟 유다의 비난에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뜨겁게 경배를 드린 마리아가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변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7절)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뜨겁게 헌신된 마음으로 예배한 것을 아셨고, 그것을 기쁘게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나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던 가룟 유다는 이러한 마리아의 예배하는 마음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이 헌신된 행동에 복된 의미를 부여해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값비싼 향유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행동이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사건이 가진 의미를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준비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날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의 잔치와 마리아가 향유를 주님께 부은 일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전야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시신에 향유를 발랐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계신 예수님께 그녀의 값진 향유를 부어드림으로써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배 - 기독교의 본질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일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과 가룟 유다의 생각을 당신은 어떻게 보십니까?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둘 중에 과연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요? 어떤 것이 기독교의 본질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8절)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 돕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 주라는 명령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예수님께서는 늘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하는 자들은 누구보다 가난한 자들을 잘 돕게 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예배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사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탐욕을 숨기고서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를 구실 삼아 마리아의 아름다운 행동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사람의 본분이요 목적이며,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란 하나님께 나의 최상의 것,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거룩하시고 높으신 분이시며, 나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셨고 구원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으며, 나를 무한히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셔서 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려 예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배란 이렇게 나의 모든 것, 나의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은 예배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나 뵙고 모든 은혜를 풍족하게 힘입게 됩니다.
  가장 아름다운 예배의 예를 든다면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서 먼 나라에서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경우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멀고 험한 길을 목숨을 걸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왕, 하나님의 아들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감격과 기쁨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이 한 번의 예배는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 최고의 것, 목숨까지 바쳐서 예배함으로써 최고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배는 그 무엇보다 우선적이고 중요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백성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를 만나주시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마리아의 예배를 기억하십시오. 마리아가 분명히 보여준 것은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이런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예배, 목숨까지도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성도는 하나님 만나는 감격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되고,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만나 뵙는 감격과 영광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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