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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화해와 일치를 위한 염원
서울에 교회가 10여개 정도에 불과하던 1890년대의 얘기다. 한국에 첫 선교사 앨런이 들어온지 9년째 되던 1893년,현 롯데호텔 근처인 곤당골(서울 태평로 1가)에 미국인 새뮤얼 무어 선교사가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교회가 세워진지 1년쯤 됐을 때 박성춘이란 사람이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신분이 백정임이 드러나자 교회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당시 교회에는 양반과 상민들만 출석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정은 교회에 받아줄 수 없으니 내보내라는 성도도 있었다. 그러나 무어 목사는 교회는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신분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교회가 세워진지 2년째 되던 1895년,몇몇 사람이 도저히 무어 목사와는 교회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인근 홍문동(중구 삼각동 현 조흥은행 본점이 있는 광통교 옆)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웠다.
그러던 중 1898년 곤당골교회가 화재로 전소했고 이를 계기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당시 홍문동교회는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회개하고 어떻게 합칠까를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곤당골 성도들에게 자기네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합치자는 제안을 했다. 이때 이미 곤당골교회에는 백정 박성춘이 교회 지도자가 돼 있었고 그가 인도하는 구역예배에는 20∼30명이 모였다. 물론 참석자들은 주로 백정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교회는 무어 목사를 담임목사로 하여 하나가 되었다.
한편 갈라져 있는 동안 홍문동교회에는 고종 황제의 4촌인 이재선씨의 어머니가 출석하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 이재선씨도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1907년 아쉽게도 홍문동교회는 교회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해산되었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곤당골교회 후신으로 세워진 승동교회로 옮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월이 흐른 후 이 승동교회에서 이재선씨와 박성춘씨가 함께 초대 장로로 피선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왕족과 백정이 함께 장로가 된 것은 한국 교회사는 물론 한국 근대사에서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갈라진 교회가 다시 하나가 되고 왕족과 백정이 하나가 된 이 사건은 반목과 분열로 점철된 작금의 우리 교회,우리 사회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보여준다. 100여 년 전에 일어난 이 훈훈한 미담을 통해 새해에는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이 풀어지고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양승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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