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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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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지난 주에 한 젊은 연예인의 죽음 기사를 보았습니다. 믿음 좋은 아내가 있습니다. 결혼한지 1년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울 대학을 나왔습니다. 37살 한 참 일할 수 있는 미래가 있는 젊은이었습니다. 사망 일 주일 전에 고민을 가지고 5번씩이나 새벽기도에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무게는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애석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고 목숨을 마감하였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사업실패와 빚 때문이라고 합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삶의 압력 앞에 젊은 날 삶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78세 노인이 집념을 불태우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과거 잘나가는 정치인이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감옥에 갔습니다. 아직 150억 원의 추징금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서 영어 성경을 읽으며 분을 삭였다고 합니다. 78살 나이에 미국에 영문학 석사를 받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는 기사였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마음이 동하였습니다. 미주리 대에 공부하며 GRE·TOEFL.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정식 영문학 석사 학위를 위해 하와이대에 진학할 것이라고 합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모세를 봅니다. 그는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살인자입니다. 수배자입니다. 도망자입니다. 애굽 왕자로 호화롭게 살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야인으로 살았습니다. 권력도, 명예도, 부도, 사람의 관심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두 아들과 아내를 먹여 살리는 초라한 노인으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나이 80세입니다. 이제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80세에 대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고목 나무에 꽃이 핀 것입니다. 9회 말 홈런을 친 것입니다. 히브리의 위대한 정치가요, 최초의 입법자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인들을 독립시켜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그를 그렇게 만든 평생 잊을 수 없은 경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어떻게 모세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잊힌 사람에서 영웅으로, 목부에서 민족 지도자로, 촌노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생이 전환되었겠습니까?
1. 실패자를 찾아오신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모세는 실패자였습니다. 40년 동안 왕궁에서 최고의 궁중 교육을 받았지만 왕이나 대신이 된 것이 아니라 초라한 목부로 전락하였습니다. 자신의 양을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 장인의 양을 돌보고 있습니다. 지금 나이 80세입니다. 인생의 2/3를 산 때입니다. 기업을 해도 무엇인가 이룰 만한 나이이고 학문을 해도 업적을 나타낼 만한 나이입니다. 애굽에 있었다면 상당한 정치적 권력을 잡았을 나이입니다. 그런데 도망자 신세가 되어 40년 동안 장인 집에서 일했는데도 여전히 처가살이를 하고 있고 자신의 양보다는 장인의 양을 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절 보십시오.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80세가 되었는데도 독립을 못할 정도로의 경제 형편입니다. 경제적으로 그렇게 넉넉한 삶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분적으로 실패자입니다. 왕자에서 목부로 전락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을 지낸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제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권력자에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자유인에서 끝없이 쫓기는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패기 넘치는 민족정신도 없어졌습니다. 40대의 젊은 패기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부를 때 여러 차례 거절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희망을 접었을 것입니다. 그저 장인 집에서 처가살이하며 평범하게 살다 죽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세상은 외면합니다. 젊음도 없고, 패기도 없습니다. 살인자이고 도망자입니다. 경제적 능력도 없고 지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80세에 모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장면입니까?
1절 2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40년 동안 늘 하던 것처럼 장인의 양무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늘 하던 것처럼 양무리를 이끌고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호렙산 주변의 미디안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키가 작은 관목류인 이 가시덤불은 여름이면 사막의 열기로 자연 발화되어 쉽게 타버리고 재만 남는 나무입니다. 어쩌면 당시 모세의 인생과 같고 이스라엘 나라의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특이합니다. 그 떨기나무 불이 살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불꽃 가운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천사를 말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하신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무엇을 하기에는 끝이 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직을 하여 이제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처절하게 실패하여 쫓기는 인생을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절망하고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편하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광야에 40년 동안 내몰린 인생이 되어 아직도 장인의 양을 돌보며 사는 모세처럼 나이 80세가 되었는데도 아직 집 한 채 없이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살고 있다고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젊은 날 큰 꿈을 꾸었는데 권력도, 돈도, 명예도 아무 것도 없이 이제 죽음만을 바라보는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혼할 때 참으로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꿈꾸었는데 가면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 인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외면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을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십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찾아오십니다. 소외된 현장에, 실패한 현장에, 낙심된 현장,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일터에 찾아오십니다. 베드로가 밤새워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 잡지 못했을 때 예수님이 찾아 왔듯이 우리에게도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에덴동산에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고 도망가 동산 나무숲에 숨어 도피한 아담과 하와를 찾아가 부르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9)” 범죄한 자를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찾아 가서 벌거벗어 부끄러워하는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만 살겠다고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살만한 가치가 없는 파렴치한 일 수도 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여 저질렀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외면하고 싶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외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실하셔서 약속을 지켜 주시고 이삭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욕심 많은 야곱이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갑니다. 작심하고 어머니와 짜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형을 속였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그를 외면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를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도망가다 벧엘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났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 그를 사용하여 성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바로 실패한 사람들, 거절당한 사람들, 잃어버린 사람들을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자신을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를 찾아가 용서해 주시고 사도로 세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추종하는 신앙인을 잡아 주리려는 바울을 회개시켜 1세기를 변화시키는 주인공으로 삼아 주었습니다. 오늘도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찾아 오셔서 새 일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실패자에게도 찾아 오셔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 오셔서 위대한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중인격자 야곱, 창녀 라합, 비겁한 요나, 광신자 사울, 변덕장이 베드로, 의심장이 도마를 찾아와 새 역사를 쓰기를 원하십니다. 찾아오시는 우리 하나님을 만나 일어서면 9회 말에도 역전승을 할 수 있습니다. 핸리 포드는 서른 아홉에 두 번의 도산으로 폭삭 망했지만 다시 일어났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네 번 패배한 후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훌훌 털고 일어나 네 번이나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80이 넘어서야 대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타티안은 98세에 그의 거작 "르판트의 전쟁"을 그렸습니다. 갈렙은 80세가 넘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2000번의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성공했습니다. 만약 1999에 멈추었다면 그는 실패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워싱턴은 12살 때 미국 독립을 꿈꾸었지만 독립 전쟁에서 단 두차례 이겼을 뿐입니다. 그가 계속 되는 실패에 포기했다면 미국 독립은 그의 손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전쟁에 이겨 미국을 독립시켰습니다. 링컨 15번 선거에서 12번 실패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선거에서 당선 되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가졌던 기대, 가졌던 꿈, 가졌던 소망이 다 사라진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 현장에 찾아 오셨습니다. 아무런 기대가 없는 늘 반복되는 삶 가운데 찾아오신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있던 불풀무 속에도 찾아오시고 베드로가 갇혀 있던 감옥 속에도 하나님은 찾아가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2. 찾아 오셔서 부르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무슨 경험을 하였습니까? 떨기나무가 타고 있습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가끔 본 평범한 경험입니다. 그런데 2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면 곧 떨기나무가 다 타버리고 사그라지어야 하는데 사그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80살 먹을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신비하여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난 불꽃을 보려고 나아갔습니다. “어찌하여”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다가 “어찌하여”라는 상황이 다가 옵니다. 어찌하여 내가 실패했는가? 어찌하여 내가 질병에 걸렸는가? 어찌하여 내가 이렇게 성공하였는가? 어찌하여 내가 이런 고독을 맛보아야 하는가? 어찌하여 내가 이런 빚에 시달려야 하는가? 어찌하여 내가 이런 꼴을 당하게 되는가?
우리는 살다 보면 어느 날 이런 순간이 다가 옵니다. 그 때 그것으로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때가 바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입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때입니다. 절망의 끝에 하나님은 손을 펴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상황이 올 때 모세는 그 큰 광경을 보려고 다가갔습니다.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4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라고 했습니다.
마치 탕자의 아버지처럼 먼저 나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고 계십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잊힌 사람인 줄 알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모세를 잊지 않고 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모세야, 모세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사무엘을 부르실 때도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시는 음성은 바로 궁 40년의 생활 속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화려하게 살 때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릴 때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광야 40년의 생활 속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식들 먹이고 장인의 양들 돌보느냐고 바쁠 때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80세에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0년의 침묵을 깨고 드디어 모세라고 하는 이름을 부르시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겠습니까? 아무도 자기의 이름을 불러 주시기 않은 잊혀진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시고 불러줍니다.
살인자입니다. 도망자입니다. 패배자입니다. 처가살이하는 사람입니다. 직업도 변변치 못하고 가진 재산도 없고 이 산 저 산 양을 몰고 다니며 실패와 좌절 속에 희망을 버린지 오래된 사람입니다. 80살로 이미 어떤 일을 하기엔 늦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건 속에서 모세를 만나기 원했습니다. 이 때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바로 응답했습니다. 직접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어찌하여”라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일생 일대 잊을 수 없는 신앙의 체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 때 우리를 부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인생은 새롭게 일어서게 됩니다. 다윗은 평범한 목동입니다. 아버지의 관심에서 제외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 나가 골리앗과 전쟁에서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나가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물매를 잘 다루어도 물맷돌이 어떻게 한 번에 그 큰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립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한 다윗은 그 후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베드로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고 도망갔으나 갈릴리에서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어찌하여 순간에 하나님 체험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순간 그저 재수 없는 사건으로, 무의미한 사건으로,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건으로 넘어가길 원치 않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자신만이 경험한 극히 주관적 경험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인생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그 속에서 힘없는 인간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파괴적인 사탄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약한 자신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잊을 수 없는 나만의 체험을 해야 합니다.
세계적 기독기업 서비스 마스터의 창업자인 메리온 웨이드는 44년 실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실명의 좌절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눈을 떠 서비스 마스터의 모태가 된 청소용역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99년 한해동안 세계 40개국에서 74억달러(8조원)의 매출을 올린 종합 용역 서비스회사로 성장, 영국에 첫 해외진출 이후 10년 만에 세계를 석권했습니다.
하나님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라고 말씀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고 경이감에서 그 큰 광경을 체험하고 부르심에 경외함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사상가 파스칼이 말한 대로, 현대인의 불행은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시간과 여유를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형편을 보면 기대가 무너져 기운이 쫙 빠지지만, 고요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노라면 어느 순간에 새 힘이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말입니다.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난다. 어떤 이는 자기 노력으로 위대해진다. 또 어떤 이는 강제로 떠밀려 위대해진다.’ 우리 하나님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활으로 우리를 강제로라도 떠밀어 하나님 체험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3. 찾아와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모세가 가까이 가려하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나눈 최초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모세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악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범죄 한 이후 인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간에 막힌 담을 십자가로 헐기 까지는 누구도 하나님께 담대히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휘장을 갈라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모세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네 발에 신을 벗으라”라고 말씀합니다. 신을 벗은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문맥으로 보면 거룩한 땅이니 오물과 먼지로 더러워진 신발을 벗어버리라는 말입니다. 당시 습관으로는 종들은 신발을 벗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당시 종들은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 이제 네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이제 완전히 벗어나 버리라는 말입니다. 신발은 신분을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신분을 포기하라는 말도 됩니다. 다만 너는 나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네 과거, 네 미래, 네 신분, 네 자존심 다 벗어버리라는 말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경외와 존경의 표시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면 살라는 것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이 회당인 모스크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올라갈 때에 신을 벗습니다. 인도인들은 간디의 무덤에서 신을 벗습니다. 이것을 경외를 뜻합니다. 6절에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지웠다는 것을 통해 얼마나 모세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신을 벗어야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5:15에는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신을 벗으라 하신 명령을 듣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발의 신이란 세속에 살면서 더러워진 인간성을 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워진 인간성을 다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5:9에는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여기서 신은 지위와 권리를 표시합니다.
룻기 4:7-8에는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신을 벗었다는 것은 권리를 양보하거나 권리를 이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에게 이제 세속적인 인간성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왕자로서, 양치기로서 모든 지위와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나님의 소명받은 자로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벗어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2)라고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히 12:1)라고 합니다.
모세는 야망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소명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소망이 야망으로 바뀔 때 추해집니다. 네 야망을 벗어 버리고 내 소명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살인자의 짐을 지고 계속 살기 원치 않았습니다.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과거로부터 탈출하라고 말씀합니다. 너를 묶어놓았던 열등감과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억울함과 불안감에서 탈출하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의 겸험을 극복하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에서 실패하고 두려움으로 도망자가 되었는데 그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서 탈출하라고 말씀합니다. 현재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말고 신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망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사42:3) 라는 말씀을 언젠가 필연코 실현하십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그릇, 성별된 그릇, 구별된 그릇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지만 하나님의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딤후 2:21)"
데이비드 배런이라는 사람이 "모세의 경영전략"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모세는 탁월한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극도로 불확실한 세대를 살았던 매우 복잡한 수만은 사람들을 지도 한 장 없이 광야를 이끌었던 모세의 지도자로의 비범함을 지도자로서의 그의 인격을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21세기의 리더인 지식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에 대해서 말하면서 리더십이란 어떤 사람의 문제이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즉 방법론보다 인격이 먼저라고 하고 있습니다. 인격의 그릇이 주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정치, 종교, 경제, 문화, 사회 지도자들이 이 문제로 쓰러지고 있습니까? 클린턴 보십시오. 그는 아버님을 잃고 어머님이 여러 번 재혼하는 바람에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는데 그는 그곳에서 신앙을 가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대통령이 되어서도 한 번도 주일을 교회에 빠지지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 경제를 부강하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할 수 만 있다면 미국 사람은 그를 네 번이라도 대통령 시켜 주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잘했는데도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람기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찾게 만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꽃 가운데 찾아 오셨습니다. 이 불꽃은 이스라엘에게는 연단의 불꽃이지만, 애굽에게는 소멸의 불꽃입니다. 언제가 우리의 고통은 소멸될 때가옵니다. 비천과 견디기 힘든 수모도 때가 되면 소멸됩니다.
지그 지글러는 [정상을 넘어서]에서 《포춘》이 선정한 기업 CEO의 52퍼센트가 중하위층이나 빈곤 출신이고, 미국 백만장자의 80퍼센트는 1세대 백만장자라고 합니다. 세계 일류 리더 300명 중 75 퍼센트가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으며, 일부는 심각한 신체장애를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찰리 웨드마이어는 입을 움직이고 눈을 깜박일 수 있을 뿐이지만 풋볼 감독으로서 고등학교 주 대항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존 포프는 두 팔이 없이 태어났지만 1993년 미국 주니어 상공회의소가 뽑은 유망한 젊은이 열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존 존슨은 노예의 자손으로서 수줍음이 많고, 불안정하고, 말을 똑똑하게 못하고, 집에서 만든 옷을 입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았지만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윈스턴 처칠은 "이 세상에 영원한 성공도, 영원한 실패도 없다. 성공이란 인생 항로에 놓인 실패와 실패 사이를 건너가는 과정일 뿐이다. 처음부터 성공하지 못했다고 좌절하는 것은 바보들의 몫이다.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마라.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라는 말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피폐하고 음울해진 영국인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었습니다.
실패의 현장에 있습니까? 평생 잊을 수 없는 부르심의 현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실패자를 찾아오신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찾아 오셔서 부르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찾아와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님께 주신 사명을 붙드는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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