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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출4: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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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포브스가 '2007년 가장 많은 돈을 번 작가'로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그녀는 작년 1초당 1만 1000원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300만파운드(약 68억원), 지난해 벌어들인 돈은 1억 6,000만 파운드(약3,628억)라고 합니다. 한 작가의 상상력으로 벌어들이는 대단한 수입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녀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한 후에 나온 인생 작품입니다. 결혼하지 2년 만에 이혼녀가 되어 어린 딸을 데리고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20세 중반의 삶이 너무 비참했고, 끝없는 추락으로 자살 충동을 느꼈답니다. 그녀는 에든버러의 허름한 임대아파트에서 우울증과 싸우며《헤리포터》시리즈 첫 작품인『헤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비참한 생활이 그녀로 하여금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였고, 방대한 분량의《헤리포터》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는 강렬한 추진력을 제공하였습니다. 위대한 창조물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집니다. 그녀가 성공한 요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이 다가 올 때 그 고난으로 쓰러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최대한 개발하여 극대화한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의 요인이 무엇이겠습니까? 동아대 학생생활연구소에서 부산지역 대학 신입생 2천 7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성공의 요인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재력이 21.3%, 인간관계(16.3%), 실력(14.7%), 노력(13.5%), 학벌(12.2%), 권력(11.2%), 가문 및 배경(5.8%) 등의 순으로 나왔습니다. 세가지로 요약한다면 주어진 재능, 인간관계, 실력(도구)입니다. 과거 모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문제를 제기합니다. 모세는 주어진 재능이 없어, 같이 일할 사람이 없어, 실력이 없어 주어진 일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모세는 세 번이나 계속 거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모세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세워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정도 되면 버려버릴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간 모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야인 생활 40년 마치 버림받은 사람 같았지만 하나님은 80세에 찾아 오셔서 모세를 다시 세워 주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족하다는 재능을 사용하여 끝까지 세워주십니다.
네 번째 모세는 무엇이라고 거절합니까?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 4:10)”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합니다. 첫째는 본래 태어날 때부터 말하는 재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어 부르신 후에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것입니다. 맡겨 주신 일을 하기에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강퍅한 바로를 설득하고 완악한 백성들을 설득하기에 태생적으로 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하신 말씀을 백성과 바로에게 전달하려면 말을 잘 하여야 하는데 선천적으로 말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후에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맡길려면 마땅히 그 만한 능력을 주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후에도 말 잘하는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원인을 자신의 부족으로 돌리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 이렇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그런 큰 일을 맡길 수 있습니까?” “맡기셨으면 마땅이 그 일을 이룰 만한 능력도 함께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식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하나님 쓰시기에 부적합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적합과 부적합의 판단을 자신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쓰시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핑계처럼 사실 모세가 말을 못하였을까요? 행7:2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그는 말과 행사가 능했습니다. 능력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애굽의 학문을 다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궁중에서 왕자 대접을 받으며 차세대 지도자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의 지도력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 났습니다. 그는 말에 뛰어났습니다. 그는 일 처리 능력에 뛰어났습니다. 그는 행정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19절). 일반적인 사람은 이 정도가 되면 그냥 포기해 버립니다. 그 사람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요하게 거부하고 회피하고 핑계 대는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선천적으로 말못한다고 하는데 너 스스로 말못한다고 하는 그 입 내가 만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게 있는 조건, 내게 있는 재능 너무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10절에 우리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유일한 걸작품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유일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재능, 우리의 주어진 조건 사용하겠다고 말씀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사명을 주신 후에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이룰 만한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확실한 보장입니까? 말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함께 계서 순간 순간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쓰임받기 위해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재능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모든 것이 다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재능 작은 것같지만 그것 하나님이 쓰시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의식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고 비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이 우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쓰시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부족하다고 그 재능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쓰시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회사의 직원이지만 어느날 대통령이 비서로 쓰면 비서실장이 될 수 있습니다. 거친 돌도 위대한 조각가가 들어 쓰면 위대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아무리 부족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쓰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오른손 불능자 왼손잡이 에훗도 쓰십니다. 당시 여인으로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드보라도 사용하십니다. 겁쟁이 기드온, 사기꾼 야곱, 아내를 내어놓은 아브라함, 배반자 베드로, 살인 방조자 바울도 하나님은 그들의 재능을 사용하십니다. 역사 속에 한 시대 위대하게 쓰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자녀를 기르면서 내 스스로 판단하기에 너무 부족하다고 절망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정치가중의 한 사람이었던 윈스턴 처칠 그는 중학교 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습니다. 영어에 늘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그는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실력이 없어 포병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릴 적에는 "열등아"였습니다. 초등학교를 3개월 다니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12살 때는 기차간에서 신문팔이도 했습니다. `전쟁와 평화'의 저자인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점수를 받았습니다. 교수들은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산업혁명의 계기를 만든 J 와트도 "얼간이"로 낙인 찍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했습니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 근대 물리학을 개척한 영국의 대과학자 뉴턴도 초등 학교시절에는 "낙제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모든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자그마한 재능을 하나님이 사용하면 그 재능이 극대화되어 그의 인생 전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자녀들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모세는 살인자로 도망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엄청난 상실의 고통에 처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요즈음 금융대란(大亂) 앞에 고난을 참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의욕을 상실하고 생을 포기하고 자살하고 있습니다. 작년 1만 2,174명이 자살하였습니다. 하루에 평균 34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위대한 창조물은 평온할 때 나온 것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 절망하거나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을 탈출하기 위해 창조에 몰두하다 보면 위대한 창조물이 나오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에 떠밀려 침몰되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야 할 거대한 과제 앞에 서있는 여호수아에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수 1:5-6)”
정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 6:14)”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이 하나님께 쓰임 받느냐 못받느냐가 문제입니다.
쓰임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모세 이외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쓸 수 있습니다. 모세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말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받아 쓰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부담으로 회피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습니다.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뒷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후렴)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수 있잖아요”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2.하나님은 우리에게 함께 일한 동역자 붙여주어 끝까지 세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도 모세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주여 보낼 만 한 자를 보내소서." 다섯 번째 또 거절합니다. "나 같은 사람 보내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자신감이 없습니다. 못합니다. 저는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민족을 구원할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과거에도 실패했지 않습니까? 저는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제 나이 지금 몇 살입니까? 이 나이에 어떻게 그 거대한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자신은 하나님의 쓰실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한 번 실패하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 버렸습니다. 자신은 이 엄청난 민족 구원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 되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 마음이 답답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완고한 모세를 향하여 의분을 발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아마 영웅전이나 인간적인 책이라면 그것 다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자신의 수치를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징계하고 포기해 버렸습니까? 끝까지 모세를 세워 주십니다. 그의 부족을 채워줄 대책을 강구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아론이 말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나로 나온다는 것입니다.(14) 그가 억지로 찾아다닌 것이 아닙니다. 우연 같은데 어느 날 보니까 돕는 사람들이 주변에 와 있는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기쁨으로 일을 함께 일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14) 큰 월급 주고 고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기쁘게 함께 일할 사람을 보내 주겠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아론에게 말하면 하나님이 아론의 입과 모세의 입에 함께 있어 모세가 행할 길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입니다. 형이 동생의 말을 듣기에는 동양 사회에서 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권위를 주어 모세가 말한 것 아론을 통해 그대로 말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16절 보세오. 그래서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처럼 권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다 늙은 아론입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주고 자신을 생명처럼 사랑해주는 한 사람만 만나도 인생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재권을 가지고 일하는 곳에서 우리는 모세처럼 아론처럼 사용하십니다. 내가 아론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모세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네게 없는 것 보완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돈 없으면 돈 있는 사람 붙여 주고, 지혜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 붙여 주고, 건강 없으면 건강 있는 사람 붙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굴하게 그 있는 사람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모세 너를 붙들고 권위를 주어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하다고 절망하고 낙심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모든 사명을 이룬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밥 한 끼 먹는 것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것으로 먹는 것입니다. 남들이 이루어 놓은 것 누리며 살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내게 없은 것 때문에 사업하면서 힘들어 하지 않습니까? 자녀를 양육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고 왜 나 홀로 이런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고 좌절하지 않습니까? 자신을 바라보면서 무능력으로 늘 실망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사명 맡겨 주신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붙들고 사명만 붙들고 나가면 돕는 천사들을 얼마든지 붙여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약속을 어겨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를 통하여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 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우리가 한 일들을 보십시오.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자신감 있게 나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룰 사람들을 붙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때는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사람을 다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내가 못한다고 주어진 사명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대 졸업생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성공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퍼센트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좋은 인간관계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 잘 만나면 됩니다. 하나님이 진정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능력있는 사람 한 사람만 붙여주어도 인생은 달라집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칠천인을 동역자로 남겨 놓았습니다(왕상19:18).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켈러를 쓰시기 위해 하나님은 설리반 선생님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바울을 홀로 사역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 수많은 사역자를 붙여 주었습니다. 바나바, 디모데, 에바브로 디도, 등 여러 동역자와 함께 일하게 하였습니다. 부족함을 보완해 주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동역자를 주십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수많은 위기를 만나지만 돕는 자를 붙여 주셔서 결국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지금 나에게 없는 것보며 거부의 조건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아론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느 날 인생이 달라집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구를 통해 끝까지 세워 주십니다.
다섯 번이나 거절하는 모세를 끝까지 세워주신 하나님은 다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200만 이라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미사일이 필요하고 전차가 필요하고 대단한 재물이 필요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팡이를 가지고 이적을 행하라고 합니다. 특별한 지팡이도 아닙니다. 지금 들고 있는 지팡이입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지팡이입니다. 익숙한 지팡이입니다. 한 번도 기적을 일으켜 보지 못한 지팡이입니다. 전쟁에는 아무 쓸모없는 지팡이 입니다. 백성들을 이끄는 데는 아무런 가치 없는 지팡이입니다. 양치는 데는 필요하지만 전쟁을 하는 데는 오히려 거침이 되는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 이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익숙한 지팡이 용도만 달리하여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쉽게 익숙한 것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것 무시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의 가치를 외면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지팡이가 하나님이 들어 쓰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지팡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볼품없는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저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것이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모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지팡이를 던질 때 뱀이 되고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도구, 익숙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으니까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됩니다.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줍니다.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니까 뱀이 됩니다(출 7:9)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까 피로 변합니다.(출7:17) 지팡이로 개구리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합니다(출 8:5)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니까 이가 됩니다(출8:16)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으니까 뇌성과 우박이 내입니다.(출9:2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으니까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들입니다(출 10:13) 강퍅한 마음을 녹이는 도구가 됩니다.
홍해 앞에서 200만 명의 백성들이 원망하며 절망합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있어 진퇴양난에 놓여 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백성들이 아우성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합니다. 차라리 애굽 사람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이 때 모세가 뭐라고 말씀합니까?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하나님이 주신 것 아무것도 아닌 지팡이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홍해를 가르게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불을 피우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 앞에 막힌 담이 무너지게 하고 큰 산이 넘어지게 하며 인생의 홍해를 가르는 도구가 됩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도구가 됩니다.
또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 광양에 왔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기갈로 죽을 지경입니다. 백성들이 모세와 다툽니다. 모세에 대하여 원망합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팡이를 들고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그대로 순종합니다. 기갈을 해소 받습니다. 광야에 서도 물이 나오게 합니다. 내게 이미 익숙한 것 붙들고 순종하면 광야 같던 가정이 오아시스로 변합니다. 메마른 마음이 옥토로 변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남을 비판하며 잃어 버렸던 사랑이 회복되어 풍성한 영적 생활이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또 보십시오. 아말렉과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 때 어떻게 합니까? 모세가 지팡이를 붙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갑니다. 지팡이를 들고 기도합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아말렉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출17:9) 아론과 훌이 붙들어 주니까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익숙하고 보잘것없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 받으면 승리의 도구가 됩니다. 붙들어 주지 않고 무너뜨리고 대롱대롱 매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입니다. 사명자를 세워서 결국 사명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의 손에 40년 동안이나 무심코 들려 있던 마른 막대기가 민족 해방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사탄에게 쓰임 받지 말고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질그릇같은 나를 하나님이 붙들어 쓰시면 "내게 능력 주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무식하고 다혈질이고 실수 잘하고 배신하고 저주하고 도망간 베드로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니까 앉은 뱅이를 일으키고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오천 명 돌아옵니다.
어린 소년의 손에 있었던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가 5천명을 먹였습니다. 아무 가치 없게 보이는 모래와 흙과 불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히게 될 때에 사파이어가 될 수 있습니다. 모래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에 오팔이 될 수 있습니다. 맨 흙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히게 될 때에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를 끝까지 세워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아무리 거절해도 끝까지 우를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워 주실 때 그냥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다.(11) 우리가 해야 할 말을 가르쳐 주십니다. 할 말을 가르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 우리의 행할 일을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5).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권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16). 우리가 일할 수 있는 도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7).
재능이 없고 무능력으로 절망하며 포기하는 성도님 계십니까? 돕는 사람이 없이 홀로 밖에 없다고 고독해 하며 포기하는 성도님 있습니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기술이 없다고 실력이 없다고 슬퍼하는 성도님이 있습니까? 주어진 조건 앞에 다가온 상황 앞에 좌절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도의 타고르는 나라를 빼앗기고 슬픔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국가적 고난의 상황 속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마저 잇달아 세상을 떠나게 되는 개인적 고통을 겪어야 만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훗날 그 고난의 용광로는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기탄잘리》를 탄생시켜 주었습니다.
템플 그랜딘 박사는 다른 사람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의 자폐인으로 어려서 따돌림과 놀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여 자폐를 극복하고 정신분석학, 동물행동학, 신경해부학 등 7개 분야를 넘나들면서 자폐인의 눈에 비친 느낌과 날카로운 분석으로《동물과의 대화》를 저술하였습니다.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14세 때는 살림을 꾸려가던 누나마저 잃었습니다. 자신은 물론 온 식구가 병을 앓았고, 아버지는 미친 사람처럼 술주정을 부렸습니다. 이러한 가정적 불행 속에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신경증을 앓기도 하였습니다. 그 고통을 타개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고 그는 고통을 통하여 화가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인생은 달라집니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피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명을 맡겨 주시고 쉽게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라 끝까지 우리를 세워주시고 맡겨준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홀로 가는 것같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스스로 인도해 가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 받아 맡겨준 사명을 다 이루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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