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릿느릿 234】비가 내리는구나
사람들이 별로 안 반가와 하는 가을비.
비가 오는 날은 몸이 무거워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이 들고
사방이 어두워 어쩐지 하루가 늦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책방 창가에 서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무심히 바라봅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와 빗소리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낙엽이며 비이며 떨어지는 것들의 소리는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거의 군대 수준의 훈련을 받으며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달빛조차도 없는 어둠 가운데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밤 갑자기 비상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전교생은 팬티만 입고 중간운동장으로 몇 분 안에 집합하라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황토흙탕물 가득 고여있는 운동장에 벌렁 드러누워 내리는 비를 손으로 훔쳐내며 벌을 받았습니다.
살을 파고드는 차가움, 뭔지 모를 서러움, 견뎌내야 한다는 깡다구!
그날 밤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기숙사 사감선생님을 두들겨 패는 사건이 발생했고 많은 친구들이 학교를 자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생각해 보니 저에게는 그때의 훈련이 참 보약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쳐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바로 그때 생긴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리는 오늘 이 순간이 바로 그때의 용기를 다시한번 내야 할 순간인 것 같습니다.
아자~ 힘내자! 2004.915 ⓒ최용우
최신댓글